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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Nov 17. 2024

내 통장 잔액

  동료 선생님 중에 한 분이 귤을 재배한다. 출근하면 책상 위에 귤이 놓여 있다. 크고 작은 귤 다섯여섯 개다. 노란 귤이 아침 인사라도 하는 듯하다. 귤맛이 달콤 새콤하다. 어느 귤맛은 달콤도 새콤도 아닌 그저 밋밋하다. 아무 맛없는 무를 씹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주신 정성이 들어 있어 그런지 그 맛도 특별한 귤맛이다.

  오늘, 귤 10박스를 주문했다. 형제와 친척, 지인 몇 분에게 귤 한 박스씩 보내려고 주소를 물었다. 동료선생님 덕분이다. 매일 아침마다 갖다 주신 귤, 그 귤을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보내고 싶은 귤이다. 한 사람에게 한 박스, 보내고 싶은 마음은 30박스도 더 넘는다. 10박스만 부탁했다. 내 통장 잔액은 마이너스다.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한다. 어쩌다 보니 마이너스, 플러스로 만들고 싶다. 그러면 30박스도 보낼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

  내 재정이 다 채워진 다음에 무언가 나누어야지 하는 생각, 이 생각으로 살아왔다면 나는 지금까지 어느 것도 내 손에서 내보내지 못했을 거다. 살다 보면, 내 작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난다. 내가 챙기지 않아도 살아가겠지만,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덜어주는 기회를 선택한다. 그렇게 했어도, 지금까지 돈이 없어서 굶지는 않았다. 물론 절박한 상황을 맞닥뜨린 때도 몇 번 있다. 그중 한 가지 이야기다. 올해, 얼마 전에 대학 친구가 제주도에 놀러 왔다. 월급이 통장에 들어오기 며칠전날이다. 36년 만에 만나는 친구다. 대학 졸업 후, 처음 얼굴을 본다. 오랜 세월 서로 연락을 하지 않다가, 최근에 연결이 됐다. 서로 궁금했던 거다. 그 친구의 일주일제주도 여행 계획 중, 일부가 나다. 제주도에 오는 친구, 나는 기간제 교사로 돈을 벌고 있다. 내가 먼저 식사하자고 하고 싶은데, 통장에 돈이 없다. 다행인지, 창피한 일인지, 전화통화하면서 내 사정을 말하고 말았다. 빨리 만나고 싶어 하는 그 친구에게 거짓말을 못했다. 그 친구는 시원스럽게 말했다. 돈이 없으면 자신이 사면되는데 걱정하냐고. 나는 그 친구랑 저녁도 먹고 카페에서 커피도 마셨다. 36년 만에 만난 그 친구가 값을 지불했다. 함덕해수욕장에서 사진도 찍었다. 그 친구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나에게 선물이 되었다. 만나자마자 잠깐은 어색했지만, 대학시절 그 분위기가 그대로였다. 사람은 변하지 않나 보다. 나도 그렇고. 카페에서 밤늦게까지 이야기했다. 서로 놀라워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늘 만나온 듯해서다. 그 친구가 제주도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밥을 같이 먹었다. 그때는 내 통장에 월급이 들어왔으니, 신났다. 내 집 근처 맛집과 바다가 보이는 커다란 카페에 갔다.  

  이제, 내 통장을 플러스로 만들기 위해 좀 더 세밀한 계획을 세웠다. 운동은 달리기와 집에서 혼자 스트레칭으로, 외식은 만남이 있을 때만, 만남도 일부러 만들지 않기, 책은 도서관에서 대출받아서 읽기다. 서울에 다니는 횟수도 줄인다. 10개월 만에 플러스로 만들자. 혼자 다짐한다. 하루 앞일도 모르니 어찌 장담하랴마는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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