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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잔치

by 수수 Nov 28. 2024

   환갑날, 제주도 바람이 거세다. 11월 28일, 음력 10월 28일이다. 교사연수로 제주 꿈바당어린이도서관에 갔다. 제주도 도지사 저택이었던 곳을 어린이도서관으로 바꾼 곳이다. 어린이 도서가 대부분이다. 도서관 밖은 강한 바람으로 몹시 추웠다. 어린이 동화책을 펼쳐 읽는 동안 몸이 따스해졌다. 창밖은 알록달록한 나뭇잎이 가을을 뽐내는 듯한 풍경이다. 도서관이라 음악도 없이 조용한데, 마치 분위기 좋은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 온듯한 느낌이었다. 다른 동료 선생님들은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이곳에서 시간을 더 보내고 가겠다고 하였다. 

  칼바람 맞으며 돌아갈 시간. 승용차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동료선생님 승용차를 같이 타고 왔는데, 모두 일찍 가버렸다. 빌린 책 다섯 권을 가방에 넣으니, 무거운 힘이 어깨를 더 눌러 내린다. 내가 미련 맞은 걸까? 굳이 이 날에 책을 빌리다니, 그것도 다섯 권이나! 

  버스정류장까지 3분, 걸었다. 머리카락이 360도 회전한다. 공중에서 춤을 춘다. 제주도 바람은 휘오리바람이다. 방향이 없다. 다행히 오던 비가 잠깐 멈추었다. 정류장에 도착하였다. 버스가 도착하려면 10여분이 남았다. 더군다나, 이 버스를 타면 한번 갈아타야 한다. 나는 다시 걸었다.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그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15분 걸린다. 목적지는 제주오일장 주차장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 그곳에 승용차를 주차하였다. 학교 주차장이 좁다. 겹겹이 이중 주차를 하여, 중간에 연수를 나가야 하는 날에는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제주오일장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그곳부터는 학교까지 걸어서 간다. 제주오일장 주차장은 집과 학교 중간 지점이다. 오늘 연수로 온 도서관에서 그곳까지는 걸어서 50분 거리다. 나는 오늘 그 거리를 걸었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정류장까지 도착하였다. 버스가 언제 도착할까? 버스를 기다릴까? 걸어갈까? 잠시 생각하다가 걸었다. 걸어서 30분 거리다. 도서관에서 4시 30분쯤 출발했으니, 5시 20분쯤에 목적지에 도착할 거다. 제주도 사람들은 웬만한 비는 우산 없이 다닌단다. 우산을 펼쳐 비를 막으려 해도, 이리저리 불어대는 바람이 방해한다. 오늘 바람이 그랬다. 칼바람이 난동을 부리는 듯하다. 겨울 롱코트를 입어서 몸은 추위를 견딜만하였다. 긴 목도리로 목을 감쌌다. 후려치는 듯한 바람을 막지 못하는 부위는 얼굴과 머리다. 주차장까지 15분 정도 남았을 때, 마치 쓰러질 것 같았다. 택시라도 탈까? 아니다. 천천히 걷자. 다시 걸었다. 

  오늘은 내 환갑. 도두항 근처 단골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기로 마음먹었다. 미역국, 고등어구이, 맛깔난 반찬을 생각하며 걸었다. 이제, 주차장까지 5분 정도 남았을 때, 단골 음식점을 포기하였다. 세찬 바람으로 머리가 어리어리하니, 쓰러질 것 같았다. 잠시 쉬어야 하는 상황, 전복돌솥밥집으로 들어갔다. 이 음식점에서 두 번 먹어 본 경험으로 맛이 괜찮았기에, 고집부리지 않았다. 음식을 주문하고 어지러운 머리칼과 몸을 진정시켜야 했다.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정리하고, 테이블에 엎드렸다. 곤히 잠이 밀려왔다. 그대로 엎드려서 쉬고 싶었다. 10여분 뒤, 반찬과 밥, 미역국이 나올 때까지 엎드린 채로 몸을 진정시켰다. 어지럽던 기운이 사라져 갔다. 따스한 식당, 단골음식점으로 고집부리지 않고, 이곳으로 들어와 쉬기를 잘하였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문 앞에 소포 박스가 놓여 있었다. 강릉에서 아들이 보낸 선물이다. 어젯밤에 아들, 딸과 줌으로 만났다. 셋이 가정예배를 마치고 나서, 아들은 카톡방에 사진과 영상을 올렸다. 나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는 아들 모습이 담긴 영상과 사진이다. 강아지 미소와 내가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 그 사진대로 아들이 그림으로 그렸다. 그리는 모습을 빠른 영상으로 담았다. 정성껏 그리는 모습, 완성된 그림을 보여 주었다. 그 선물이, 오늘 생일날 아침에 정확하게 도착하였다. 감동, 미소가 늘 그리웠기에 놀라웠다. 또 신기한 것은, 오늘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니 다이어리가 생각났다. 왜 생각났을까? 출근 전, 핸드폰을 열어 카톡을 보았다. 딸이 내 생일 선물로 다이어리를 보내 준 메시지. 

  전복돌솥밥과 미역국, 내 생일밥이다. 따뜻한 밥을 먹고 나니 든든하였다. 다시 일어서 음식점을 나왔다. 바람이 더 세게 불고, 비까지 강하게 내렸다. 우산을 펼쳤는데, 바로 뒤집혔다. 우산 살이 다 보이고, 비로부터 나를 막아줘야 할 비닐은 우산 살로 가려졌다. 비를 맞으며 다시 우산살을 정리하였다. 5분 정도 비바람과 사투를 벌이며 걸었다. 내 승용차가 보였다. 피할 곳,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은 밖에 나가지 않기로 하였다. 방에 매트를 깔고, 그 위에 방석도 놓았다. 뛰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였다. 더워지면서 땀이 났다. 30분 정도 운동을 한 후, 샤워를 하였다. 따스한 물이 오늘의 피로를 다 녹여 주었다. 

  여동생이 선물을 보내주었다. 카톡으로. 카페 이용권이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언니, 오빠, 남편 환갑 다 챙겨주었는데, 나에게는 아무 반응이 없다. 살짝 기대감이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 세상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든 일인지 알기에, 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도 경험하기에, 나는 괜찮다. 

  내 자녀 둘이 나를 사랑해 주니, 그 이상 무엇이 부러우랴! 설령 자녀들이 잊고 지나쳤다 해도 괜찮았으리라. 이제, 인생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환갑이기에. 다 괜찮다. 

  "엄마, 요즘 누가 환갑을 챙겨, 환갑 이후에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엄마 혼자 생각하는 시간 가지면 어떨까?" 어젯밤에, 누군가로부터 축하받기를 기대하는 나에게, 딸이 말하였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나 혼자, 어린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비바람을 맞으며 거리를 걸었다. 그 시간, 환갑 이후의 내 인생을 생각하였다. 이제는 어느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말자.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말자. 내 삶을 먼저 챙기자. 인생은 내가 성숙해 가는 과정. 남을 탓하지도, 원망하지도, 서운해하지도 말자. 그들은 그들 삶을 사느라 얼마나 버거운가! 살살, 조심조심, 천천히, 평안하게, 인내하며, 될 것을 기다리자. 포기하지 말자. 기죽지 말자.  내 자녀와 모든 일들에 대해서, 마음 다해 기도하자. 

내 환갑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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