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벤트
알림 설정 이벤트
학기가 거의 끝나고 모두 기말과제를 제출하고 여름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던 날 승빈과 지연은 승빈의 집에서 한 가로 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 둘은 떡볶이를 할 재료를 잔뜩 사들고 집으로 갔다. 승빈은 지연이 해준 떡볶이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 페루로 떠나기 전 한 번이라도 승빈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고 싶었던 지연은 떡볶이 재료들을 손질해서 뚝딱 떡볶이를 만들었다. 맛있게 먹어주는 승빈을 보니 지연은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것 같았다. 다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후에 조용한 승빈의 방에 들어가니 승빈은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어있었다. 아침형 인간인 지연과 달리 승빈은 낮과 밤이 바뀌어 생활하는 게 익숙해서 가끔 그렇게 낮에 잠이 들 때가 있었다. 밤을 꼴딱 새우고 학교에 강의를 듣고 집에 와서 종종 승빈은 잠을 잤다.
가만히 앉아서 물끄러미 자는 승빈의 얼굴을 바라보니 이제 페루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떠올랐다. 옅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지연은 승빈이 일어나길 기다려 주기로 했다. 승빈은 핸드폰은 승빈의 책상 위에 있었다. 핸드폰을 보자 지연의 눈빛이 반짝였다. 지연은 승빈의 핸드폰을 가지고 거실로 나왔다.
비밀번호 설정이 없던 승빈의 핸드폰은 지연의 손에 넘어가고 지연은 자신이 페루로 떠나는 날 밤 12시에 알람 설정을 한다. 알림 설정을 하면서 지연이 남긴 문구는 ' 잘 다녀올게. 바람피우면 죽어.'였다. 그리고 그 뒤를 있는 알람은 승빈의 생일인 8월 8일이었다. ' 생일 축하해. 보고 싶다 ' 그리고 지연은 자신의 생일인 9월도 잊지 않고 알람 설정을 해두었다. ' 내 생일인데 선물 없어? I LOVE YOU ' 그렇게 지연은 자신이 한국으로 돌아올 날까지 승빈의 핸드폰에 알람 설정을 했다. 얼추 세어 보니 이벤트는 21개 정도였다. 자신이 없을 때에도 승빈과 지연의 기념일과 크리스마스에도 지연은 미리 하고 싶은 말들을 알림 설정으로 메모해 두었다. 맞혀둔 날짜와 시간에 자기 대신 울려줄 휴대폰 알림 설정을 다하니 뭔가 진짜 헤어져 있어야 한다는 느낌이 왔다. 지연이 승빈의 휴대폰 알림 설정을 다 마친 후에도 한동안 승빈은 잠에 취해서 지연이 무슨 일을 꾸몄는지 알지 못했다. 지연은 승빈이 깨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승빈의 집을 나섰다. 승빈이네 아파트 마을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지연은 청승맞게 눈물이 흘렀다. 그 사이 승빈은 잠에서 깨고 지연이 그냥 갔다는 것을 알았다.
" 야. 갈 거면 말하고 가지..."
" 뭐, 자기가 계속 자놓고선..." 지연은 울어버린 티를 내지 않고 승빈에게 타박하듯 말했다.
" 미안해. 과제 마감하려고 매일 밤을 새웠더니... 지금 어디쯤 가고 있어? "
" 나 마을버스 타고 아파트에서 내려와서 이제 우리 집 가는 버스 타려고 기다려 "
" 그래, 조심이 들어가."
"응"
첫 키스
지연은 터덜터덜 자신의 자취방 앞 골목을 올라오고 있었다. 저 멀리 가로등 밑에 승빈이 손을 힘차게 흔들어 보였다. 지연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승빈이 반가웠다. 지연은 얼른 승빈에게 달려갔다.
" 뭐야? 어떻게 온 거야? "
" 너보다 빨리 오려고 택시 타고 북악스카이웨이 넘어왔지. 너보다 늦을 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고..."
" 치.. " 지연은 승빈의 향해 눈을 흘겼지만 먼저 와서 자길 기다려준 승빈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둘은 지연의 자취방에 들어갔다. 옆방에 자취하던 주나는 혼자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다. 지연은 승빈도 같이 왔다는 눈빛을 주나에게 보내고 승빈과 방으로 들어갔다.
승빈은 지연이 방이 신기했다. " 예전에 너희 집에 이상한 침입자 때문에 와 보적은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다시 보니 신기하다." 이거 다 네가 손수 만든 거야? 승빈은 커튼이 드리워진 하얀색 앵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어... 그거 누가 재활용 쓰레기에 새것 같은 거 버렸더라 그래서 내가 리폼한 거야. "
승빈은 아무 대답 없이 리폼했다는 지연의 흰색 앵글 위에 놓인 탁상 달력을 보았다. 탁상 달력에는 지연이 페루로 떠나는 날이 굵은 매직으로 표시해 있었다. 승빈도 지연에게 기다릴 수 있다고 호기롭게 말은 했지만 지연이 그리 울 것 같았다. 지연은 책상 의자에 앉고 승빈은 지연이 거실에서 가져온 식탁의자에 앉았다. 여느 때와는 달리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서로 먼저 페루로 떠나는 것에 대해 말하기 싫은 사람들처럼. 말하지 않아도 둘은 느끼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헤어짐의 시간이 돌아온다는 것을.
승빈은 지연에게 다가가 키스를 했다. 지연은 당황했지만 드디어 승빈의 첫 키스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키스를 나눌 동안 승빈의 향수향이 지연을 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늘 같은 향수를 뿌리는 승빈의 체취에 익숙해 있을 만도 한데 그날은 달랐다. 둘은 그렇게 뜨겁게 사랑을 나누었다. 지연에게는 생애 첫 경험들이었다. 설레기도 했지만 헤어져야 하는 그 얄궂은 운명이 그 둘을 더 애틋한 감정 속으로 빨려 들게 했다.
< 다음 편에 계속 >
이미지 출처: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