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이별은 오는 것인가?

몸이 멀어지니 마음이 멀어진 걸까?

by 이도연 꽃노을





리마에서 온 손 편지




지연이 페루로 어학연수를 떠난 지 3개월이 지났다. 지연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국제 우편으로 편지를 승민이에게 보냈다. 승민은 지연의 손 편지가 오면 읽어보고 이메일로 답장을 보내왔다. 지연의 리마 카토릭대학교 부설 어학원에 다녔고 승빈은 2학기 개강을 해서 한 참 바쁘게 지냈다.


승빈은 지연이 없는 일상이 허전했다. 그래서 안 하던 운동도 시작하고 영어 학원에 다녔다. 바쁘게 살아야 시간이 빨리 갈 것 같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보내는 지연의 편지 속에는 리마의 사진과 지연이가 먹었던 생소한 음식 사진들이 있었다. 3주 정도 한 번에 약속한 시간에 스카이프 인터넷 전화로 통화를 했다. 한국 보다 인터넷 상황이 좋지 않았던 페루 상황에 전화를 하다가 끊기는 일도 많았고 연결이 안 된 적도 많았다. 전화선을 이용해 인터넷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지연이 오랫동안 통화를 하면 집에 오는 전화가 오지 않기 때문에 지연은 부모님 눈치를 보면서 통화를 해야 했다.






난 남자친구가 있는데...



페루의 치안은 한국하고는 딴판이었다. 일본인 출신 대통령이 연이어 당선되면서 동양인 사람들을 향한 묻지 마 폭행이나 사건이 급증했다. 그러면서 회사일로 페루에 파견되어서 생활하던 지연의 아빠는 그런 페루의 치안 상황에 지연을 위해 운전기사를 고용했다. 지연의 아빠 회사에서 통역을 도와주는 학생 태민이었다. 나이 또래도 비슷하고 스페인어도 잘 알고 페루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태정을 지연의 운전기사 및 친구로 소개해 주었다. 지연은 웬만으면 태정과 말을 섞지 않았다. 운전을 하지 못하는 지연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지만 남자친구가 있는 지연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메일에도 미연에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승빈에게 한국인 운전기사를 소개했다. 승빈은 지연의 치안 문제 때문이라는 말에 별 토를 달지 않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 운전사라는 사람이 맘에 들지 않았다. 나이도 지연과 불과 2살밖에 많지 않았기에 더 불안하기도 했다. 가끔은 지연으로 그런 오해로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국이었다면 달려가서 해명을 하고 서로 대화를 했을 테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지연과 승빈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쌓여 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미 페루에 온 지 5개월이 다 되어갔기에 지연은 7개월만 인내하고 기다리면 승빈을 만나서 오해도 풀고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스페인어 배우기에 열중했다.







지연의 어학원은 매월 말에 그 달에 배운 스페인어 불량을 시험을 보았다. 시험에 70점 이상을 맞아야 다름 레벨로 통과된다. 1 레벨부터 12 레벨까지 통과를 해야 수료증이 나오기에 지연은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다. 5 레벨 까지는 잘 통과했지만 6 레벨의 수업은 난이도가 갑자기 올라갔다. 공부를 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자연스레 스페인어와 한국어 모두를 모국어만큼 하는 태민에게 묻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지연은 태민이에게 일부러 한국에 있는 승빈이에 대해 대해 묻지도 않았는데 필요 이상으로 많이 이야기를 했다. 난 임자가 있으니 혹시라도 이상한 감정 같은 건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을 넌저시 태민에게 알렸다.


6 레벨 시험을 마치고 72점으로 간신히 그 레벨을 통과한 지연은 태정의 덕분에 다음레벨로 올라갈 수 있었다고 생각해서 태민에게 탁상 알람 시계를 선물했다. 사람 얼굴 만한 탁상시계 양쪽에는 시끄럽게 울려 댈 수 있는 종이 달려있어서 아무리 못 일어 나는 사람도 시끄러워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그런 생김새의 시계였다. 가끔 지연과 약속한 시간에 못 올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연을 지연의 집에까지 태워다 주었다.


" 선물 고마워."

" 저기.. 죄송한데. 제가 어린 건 맞는데 서로 말 안 놓았으면 좋겠습니다. 김태민 씨..." 지연은 매일매일 자기에게 친근하게 말을 놓는 태정에게 선을 그었다. 태정은 알지 못할 미소를 지으며 퇴근을 했다. 지연의 집을 떠났다.


그날 저녁 집에 들어가니 집안 분위기를 뭔가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엄마 아빠가 심하게 싸운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연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컴퓨터로 달려가 승빈의 이메일이 와 있는 건 아닌지 체크부터 했다. 그러나 승빈의 편지는 없었다. ' 바쁜가? ' 요즘 연락이 뜸한 것 같은데... ' 지연의 손 편지가 한국에 도착하고 남을 시간이었기에 지연은 승빈의 소식을 기다렸다. 이상하게 승빈의 연락이 없자 지연은 승빈에게 국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지연은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지연은 승빈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제목은 제목 없음이었다. 한 번도 제목을 쓰지 않고 보낸 적이 없는데 왠지 불안했다. 얼른 클릭을 해서 이메일을 읽어보니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지연에게 보낸 승빈의 이메일이었다. 그 이메일에는 지연에게 일방적으로 헤어지자는 승빈의 이별 통보가 적혀 있었다. 지연은 재빨리 국제 전화를 걸었지만 승빈은 받지 않았다. 이메일 답신으로 스카이프 인터넷 전화를 할 시간과 날짜를 정하자고 했지만 그 후 승빈은 아무런 소식도 없었고 연락도 받지 않았다. 지연은 승빈의 책임 없고 황당한 태도에 처음엔 화가 났다. 며칠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승빈의 연락이 없자 지연은 더 이상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지연은 답답하고 우울했다. 한국에 있는 승빈의 존재를 모르는 부모님께 상의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지연의 집에 태민이 아빠와 같이 들어왔다. 점심시간에 아빠가 집에 오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일단 다 같이 점심을 먹었다. 먹는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지연은 정신이 없는데 지연의 아빠는 뜻밖의 말을 했다.


" 지연아, 너 연애 몇 번 해봤니? 남자 친구 이야기 하는 거 한 번도 아빠는 못 들어 봤는데..." 지연은 눈을 굴리다가 " 아.. 사궈 본 적은 있지만 지금은 없지. " 지연은 태민에게 승빈의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듯 눈빛을 주었다. 지연의 아빠는 다시 회사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태민에게 우리 집에서 놀다 가라고 한다. 엄마도 외출하고 태민과 지연만 남게 되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뭘 할지 몰랐던 지연에게 태민은 이야기했다.

" 사실 나, 너희 아버지께 너 만나게 해달라고 이야기드렸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지연은 태정에게 말했다. " 김태민 씨가 왜요? 전 남자 친구 있는데요? 그리고 난 6개월 후면 한국에 돌아갑니다." 남자친구가 있는 거랑 한국에 돌아가는 거랑 내가 지연 씨를 좋아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 그렇지 않아도 승민과의 일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던 지연은 태민에게 나가자고 했다. 뭔가 둘이 이 집에 단둘이 있는 것부터 승빈에게 죄스러웠다.







지연을 살린 태민과 태민의 알람시계



둘은 말없이 차를 타고 리마 시내에 있는 라 르꼬마르 쇼핑몰에 있는 카페에 갔다. 바닷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경치 좋은 카페였다. 목적지는 태민이 정했지만 지연은 한국에 있는 승빈과의 일을 솔직히 이야기하기로 했다.


" 저기요, 김태민 씨 제가 남자 친구 있는 거 아시죠? 지금 남자 친구랑 연락도 안 돼서 나 머리가 복잡하고 가슴이 고구마 백만 개 먹은 것처럼 답답하거든요. 김태민 씨까지 끼어들지 않아도 난 매우 정신없고 힘든 상태라고요. 아시겠어요? "


" 아무것도 하지 마요. 지연 씨한테 뭘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잖아요. 그냥 만나보고 싶다고 아버님께 말씀드렸을 뿐이라고요..." 태민의 어이없는 발언에 지연은 할 말을 잃었다.


" 태민 씨 혼자 맘대로 하시라고요. 난 그럴 여유도 생각도 없으니까. " 지연은 자리를 박차고 잃어나서 쇼핑몰 입구에서 택시를 잡아 타려고 흥정을 했다. 어학원서 배운 더듬 더듬한 말로 택시 기사와 흥정을 하고 주소를 알려주었다. 지연은 처음 타는 택시가 무섭고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기로 했던 것이다. 이곳에 올 때는 분명 이렇게 먼 길이 아니었는데 택시는 가도 가도 내가 사는 동네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쯤 택시 운전사는 기름이 떨어졌다며 기름을 사 온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택시에서 기다리라고 말하고 기름통을 들고 기름을 사러 갔다. 주변을 둘러보니 숲길로 연결이 될 뿐 인적이 매우 드물고 주변에 주유소가 보이지 않았다. 뭔지 무섭고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택시 운전사가 지연이 타고 있던 쪽 문을 열고 지연을 끌어내렸다. 지연은 무서웠다. 말도 통하지 않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지연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하는 수 없이 숲으로 나있는 길로 달아나기 시작했고 그 운전사는 지연을 맹렬히 쫓아왔다. 운전사는 지연을 잡아서 넘어트렸고 두 손목을 못 움직이게 무언가로 묶으려 했다. 그때 지연에게 아주 큰 알람 소리가 났다. 큰 알람 소리를 듣고 택시 운전사는 황급히 자리를 떴고 그 자리에는 태민이 지연이 선물해 준 알람 시계를 들고 서있었다. 심하게 떨고 있는 지연을 데리고 태민은 차로 데려갔다. 지연은 택시 운전사도 태민도 무서웠다. 넋이 나간 지연에게 태민이 안전벨트를 채워 주려 했지만 지연은 꽥하고 소리를 질렀다. 태민은 안전벨트를 채워주는 것을 멈추고 말했다.


"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닙니다. 여기가 아딘 줄 알고 그렇게 겁도 없이 막 돌아다니는 겁니까? 안전벨트 매세요. 집에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지연과 태민은 지연의 집 주차장에 도착했고 지연은 아무 말 없이 차에서 내려 집으로 올라갔다.







< 다음 편에 계속 >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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