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의 어린이날

D-43일

by 이도연 꽃노을





문방구와 놀이 공원




학기말 과제 마감이 코 앞에 있어도 승빈과 지연은 이제 함께 할 수 있는 43일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이틀 후면 어린이날이다. 평소라면 승빈과 지연에게 아무 날도 아닌 그런 평범한 날이었겠지만 서로 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어린이날도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졌다.


지연은 버스를 타고 자신이 낯선 도시를 가고 있다. 손에는 갈아탈 버스 번호와 어딘지 모를 주소가 적혀 있는 쪽지를 들고 승빈 없이 혼자 버스를 탔다. 하늘도 맑고 열린 버스 창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지연이 좋아하는 뭉게구름이 파란 하늘에 뭉게뭉게 떠있지만 지연의 마음속에는 슬픈 구름 몇 점들이 떠다는 듯했다. 그렇게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그녀는 전농동에 도착했다. 지연이 8살 정도쯤에 살던 집이 있던 위치에는 새로운 빌라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 위치가 예전의 지연이 살던 집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표식처럼 빌라 옆에는 여전히 쌀 게와 오락실이 있었다. 물론 오락기 게임은 모두 지연이가 하던 때와는 다른 것들이었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오락을 하려고 모여들어 있었다. 잠시 둘러본 후 지연은 기억을 더듬어 예전에 살던 집에서부터 지연이 다녔던 국민학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예전에는 그리 넓던 횡단보도가 다 큰 성인이 되어서 가보니 그냥 작은 건널목처럼 느껴졌다. 길을 건너 시장길을 지나 언덕길을 한번 넘으면 지연이 다녔던 학교가 아직 있다. 문제는 지연이 다니던 학교 앞 문방구가 아직 까지 있느냐였다. 지연은 궁금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모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길도 넓혀졌지만 유독 교문 앞 길은 좁고 정겨웠다. 설레는 마음으로 우회전을 했다. 지연이의 목적지가 멀리서 보였다. 알록달록 플라스틱 돼지 저금통이랑 훌라후프가 걸려 있던 풍경 그대로였다. 전국에 많은 문방구와 팬시점 등 살 곳은 넘쳐 나지만 지연이 찾던 곳은 바로 이곳이었다. 지연이 1학년 때 보았던 그 조그맣고 정겹던 문방구 말이다. 휘경 문구사였던 이름이 여전히 쓰여있었다. 지연은 반가웠다. 빈티지 에트로 바람이 불면서 예전 80~90년대 제품을 팔던 물건을 다시 떼다 판다는 소문이 있었던 지연의 옛 국민학교 앞 문방구에는 동그란 딱지, 꼭꼭 찍어서 불던 비눗방울 놀이 목걸이 등 여러 가지 물건이 타이머신을 타고 온 것 진열되어 있었다. 지연은 불면 삑 하고 얇은 비닐이 말려 있다가 쭉 펴지는 호루라기 하나를 짚어 들었다. 친구들과 서로 얼굴에 크게 불려고 하다가 뜯어진 그 호루라기를 보자 옛 추억들이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그렇다 지연은 이번 어린이날에 승빈이에게 자신이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구하기 힘든 추억 돋는 물건들을 사기로 했던 것이었다. 지연의 손은 호루라기 한 자루, 흔들어 쓰는 샤프팬슬, 비눗방울 목걸이 등을 들고 문방구 주인이 계산 계산대에 올려놓고 다시 다른 매대들에 있는 것들을 둘러보았다. 그때 지연이 즐겨 먹었던 불량 식품인 아폴로와 문어 다리가 보였다. 지연은 그것들도 사려고 짚어 들었다. 뒤를 돌다가 지연은 어렸을 적 자신이 좋아했던 종이 인형놀이를 발견했다. 종이인형 놀이도 사고 스머프가 그려진 동그란 딱지도 샀다. 마지막으로 지연이 고른 것은 보석 사탕반지 그리고 공기였다. 지연은 같은 종류를 모두 두 개씩 사서 계산을 하고 나왔다. 마치 보물이라도 손에 넣은 듯 지연은 다시 버스를 타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선물 박스에 데코페이퍼들을 깔고 하나씩 하나씩 채워 넣었다. 누가 봐도 7~8살 아이에게 줄 선물 같은 상자를 끌어안고 지연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승빈의 문자가 왔다.

'뭐야? 오늘 하루 종일 연락도 안 되고. 어디야? 정말 수상해...' 지연은 천연덕스럽게 승빈에게 문자를 보냈다. ' 아. 나 오늘 엄마 만나러 집에 갔다 오는 길이야. ' 늘 그렇듯 승빈은 의심 없이 지연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다. 지연은 이틀 뒤인 어린이날에 만나자고 문자를 보냈다.





이틀 후, 지연과 승빈은 지연의 집 앞에서 만났다. 지연은 승빈에 줄 선물을 들키지 않게 백팩에 넣었다. 승빈은 갈 때가 있다면서 백팩을 놓고 오라고 하는 것이다. 지연은 안 무겁다며 괜찮다면서 승빈에게 들킬 위기를 넘기고 둘이 도착한 곳은 롯데 월드였다. 지연은 어안이 벙벙했다.


" 뭐야.. 고소 공포증 있다면서. 웬 롯데월드? "


" 너 놀이 기구 타는 거 좋아한다면서. 저번에 네 친구 커플이랑 같이 가자고 했는데 내가 고소공포증 있다고 못 갔잖아. 그래서 오늘은 고소 공포증을 이겨 보려고."


" 그러다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냐? 안 그래도 돼 "


" 아냐, 도전해 보지 뭐. 엄청 오랜만이긴 하지만 죽기야 하겠어? 기절하면 나 병원은 데려다줄 거잖아 " 승빈은 지연을 안심시키려고 농담까지 섞어서 말을 했지만 손에는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지연과 승빈은 승빈이 미리 예매해둔 표 덕분에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지연은 메고 온 백팩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지만 끝까지 백팩을 사수하고 놀이 기구를 탔다. 바이킹을 시시하게 맨 가운데 자리로 앉는 승빈을 보니 재미있기도 했고 고소공포증에도 지연이 하고 싶었던 일을 까먹지 않고 도전해 주는 것 같아서 고마웠다. 바이킹, 열기구 등 몇 개의 놀이 기구를 타자 승빈은 웃고 있었지만 얼굴은 멀미라도 하듯 헬슥해졌다. 그런 지연은 승빈이 안쓰러워서 더 이상 놀이 기구는 타지 않고 풍경과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때 장난기가 발동한 지연은 미키와 미니 마우스 귀 모양으로 된 머리띠를 샀다. 승빈은 기겁했지만 지연을 이길 수는 없었다. 둘은 머리띠를 하고 스티커를 찍었다. 쑥스러워하고 민망해하는 승빈이 웃기기도 했지만 너무 사랑스러웠다.







롯데 월드를 나와 민들레 영토에 갔다. 민들레 영토에 푹신한 소파가 있는 창가에 둘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음료를 시켰다. 그제야 지연은 백팩을 내려놓고 열어서 승빈에게 어린이날 선물을 주었다. 약간은 묵직한 상자에 들어 있는 물건이 궁금했던 승빈은 얼른 개봉을 했다. 승빈은 동그란 딱지를 다 뜯어서 고무줄로 묶은 것을 발견하고 웃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듯 지연은 상자 이곳저곳을 뒤져서 보물찾기 하듯 예전 자기가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을 꺼내서 보여 주었다. 나이차이는 있지만 승빈은 대번에 그 물건들이 무엇인지 알아맞췄다.


" 이런 거 아직도 팔아? "


" 어, 잘 찾아보면 있어, 이거 찾으려고 나 어렸을 때 다니던 학교 앞 문방구에 갔었어. 다행히 아직도 문방구가 있더라고... "

지연은 자신이 제일 좋아했던 자두맛 보석반지 사탕을 개봉했다. 그러자 승빈이 똑같은 보석 반지 하나를 더 꺼내 들고 까서 지연의 손에 끼워 주었다. 둘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옛 어렸을 때 추억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그 둘은 재미난 어린이날을 보냈다.







< 다음 편에 계속 >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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