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맘러브스유 Sep 03. 2023

이혼은 연좌제?

현대판 연좌제




이혼의 죄명이 뭐지?






우리 부모님은 이혼했어요.



가끔 부모님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 우리 가족 본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 우리 부모님이 이혼할 줄 모르고 있어서 물어보는 지인 분들도 더러 있다. 난 그럴 때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말하곤 한다.


" 엄마 아빠는 이제 같이 안 사세요. 이혼하셨습니다. "


돌아오는 대답은 분류하자면 3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 나보다 우리 부모의 이혼은 안타깝게 생각하는 유형


우리 부모의 이혼 소식에 나보다 더 안타깝게 생각하는 유형들은 그때 그 시절들을 추억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 어머, 진짜? 언제? 너희 엄마가 힘들게 일해서 아빠 대학교 보내고 너 공부시키고 그렇게 힘들었는데 그 공은 다 어디 가고 이혼을 했다니? "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의 반응들이다. 그 이유는 지금 와서 그때 그 좋았던 시절을 의논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미 부부가 알아서 정리를 했다는데 본인들이 더 아쉬워하고 속상해하더라. 지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은 이혼한 사람의 자녀인데... 자녀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부부의 일은 부부만 안다. 아무리 내가 부모의 자식이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런 아이를 붙잡고 계속 이야기를 한다. 나름 위로한다고 한 마디는 한다. 


" 그래서, 너 많이 힘들었겠네? 엄마 아빠는 그래서 어떻게 지내셔? "


위로를 가장한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목적이 더 커 보인다. 난 이럴 때면 어느 시점부터 잘못된 것이고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리포트라도 써야 하는 것인가? 하는 거부감이 든다. 







두 번째, 위로로 위로를 가장한 불쌍한 아이 취급하는 유형


부모님이 이혼하셨다고 하면 내가 무슨 드라마에 나오는 불행의 주인공인 양 상상을 하는 것 같은 유형이다. 과도한 상황 이입과 수위 넘은 위로를 전한다. 때로는 그 수위 넘은 위로가 부모의 이혼보다 더 재수 없고 힘들 때가 있다.


" 집에 쌀은 있냐? 밥 먹고 가라. 내가 사줄게. "

" 밥은 먹고 다니냐? 네가 그럴수록 힘내야지 쯧쯧" 

" 내가 이거 특별히 너만 더 주는 거야! 힘내라 "

" 누구랑 사니? 혼자? 빨리 너도 시집가라 "

.

.

.


우리 부모님도 안 하는 걱정과 과도한 관심을 주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 들었을 당시 나는 성인이 되어서 내 앞가림도 다하고 대기업에 다니고 잘 살고 있을 때다. 이혼한 사람의 자녀는 다 불쌍한가? 다 가난한가? 나는 이런 유형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 본인 결혼생활이나 잘하세요. '


때로는 이혼만 하지 않았지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도 나를 보며 위로를 할 때 나는 이혼이 이렇게 대단하고 무섭고 낙인찍힐 일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모든 부부가 결혼할 때는 잘 살 마음으로 결혼은 한다. 이혼은 예상하면서 결혼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이혼의 사유는 각 부부마다 다른데 말이다. 부모가 이혼한 자녀를 지나가는 유기견처럼 보는 건가 싶어서 기분이 멍멍이 같을 때도 많다. 

심지어 친척들도 위로라고 내뱉은 말이 거의 거지 취급하는 수준이다. 생각해 주는 건 알겠지만 과도한 안타까움의 표현은 필요 이상의 관심이라 느껴진다.






세 번째,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유형


부모님이 이혼하셨다고 말하면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꼭 물리적으로 끌어안아야 안아주는 것은 아니다. 따뜻한 눈빛과 배려와 존중이 섞인 행동들은 정서적으로 나를 안아준다. 우리 부모님은 이혼하셨다는데 무슨 말이 그리 많이 필요한가? 이혼의 사유가 알고 싶은 것인가? 나의 감정은 어떤지 궁금한 것일까? 내가 스스로 숨기지 않고 부모의 이혼을 이야기했으면 그다음 예의는 더 파고들지 않는 것이 예의라 생각한다. 난 그래서 세 번째 유형을 가장 좋아한다. 대화 중에 부모님의 이혼 이야기가 나왔다면 '아, 이야기는 내가 더 하면 실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어설픈 위로, 과도한 위로가 사람 기분을 이상하게 한다. 


' 부부의 이혼이 죄인가? '

' 부모의 이혼이 내 탓인가? '

' 차라리 잘 자라 주어서 고맙다고 하라 '

'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참 밝다고 하라  '

' 그랬구나 그런지 몰랐네. 미안하다고 하라 '









미련은 아이를 정서적 학대를 하는 것이다




아이가 있는데 이혼까지 결심한 부부에게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은 각자 지는데 왜 다른 사람들이 맘대로 상상하고 평가하고 관심을 보이는지 참 예의가 없는 것 같다. 난 우리 부모님이 이혼한 것이 창피하지 않다. 둘이 있는 것보다 따로 있는 게 진심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부부의 이혼이 마치 죄인 것처럼 취급하지 말라. 이혼이 죄라면 죄 명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 사랑이 식은 죄? '

' 마음이 변한 죄? '

' 자식한테 상처 준 죄?'


이혼은 부부가 서로에게 미안하게 안타깝고 속상한 일이지,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이 아니다. 죄는 더더욱 아니다. 나는 이혼을 원하면서 아이핑계되면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게 부부 본인들의 인생을 위해서나 아이의 정서를 위해서나 더 안 좋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이혼이  뭔지 몰라도 본능적으로 안다. 자신의 무모가 사이가 좋은지 아니면 죽지 못해서 같이 사는지. 이미 이혼 도장을 찍기 전에도 아이에게 이러한 메시지들이 정서적으로 전달이 됐다면 이혼하는 게 맞다. 몸만 같이 붙어있는 그런 살얼음판 같은 울타리와 하늘에서 아이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들의 정서는 불안하다. 같이 살면서 불안한 거보다 따로 살면서 서로 정서적 상처를 안 받는 편이 더 낫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너무 길고 너무
유감스럽게도 닫힌 문을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


                                                       -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이전 10화 이혼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80년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