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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노을 May 18. 2023

부모의 이혼을 문제 삼는 남자

딴 데 가서 알아보세요





부모의 이혼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놈들은 꺼져주세요






엄마의 걱정


엄마는 부모가 이혼하고 나면 결혼할 때 책 잡히거나 걸림돌이 될까 봐 많이 걱정하셨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줬다. " 엄마 아빠의 이혼을 문제 삼고 걸고넘어지는 놈이랑은 결혼 안 하면 되지! " 그때 나는 진심이었다. 부모의 이혼 문제를 결혼도 하기 전에 꺼림칙하게 생각한다면 어떻게 결혼해서 살 수 있겠나 싶었다. 결혼 이후에도 불 보듯 뻔했다. 나를 먼저 보지 않고 부모의 이혼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집안 배경을 중시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마다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난 그런 놈들에게는 당당히 이별을 선언했다.






첫사랑 내 남편


나는 첫사랑과 결혼했다. 첫사랑과 결혼을 했다고 해서 남자를 한 번만 만나보고 결혼한 것은 아니다. 남편은 내 첫사랑이었지만 내가 휴학을 하고 어학연수를 가 있는 동안 헤어졌다. 처음 사랑한 사람이었기에 첫 이별이 그리 쓰라리고 아픈 건지 몰랐다. 화상통화나 카톡이 있던 시대라면 충분히 이야기해 보고 헤어졌을 것을 우린 PC통신 시대의 연인이었고 심지어 PC통신 마저 열악한 상황에 있던 남미에 있었기에 더 힘들었다. 헤어지자는 남자친구의 말에 나는 헤어져 줄 테니 지금은 안된다고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헤어지자고 했다. 그때 내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떠나는 남자친구를 잡고 싶은 생각보다 부모님이 막 이혼을 결정하고 엄마가 한국으로 떠난 뒤 얼마 안 있다가 헤어지자는 이메일을 받았으므로 나는 이별을 늦추고 싶었다. 두 가지 큰 이별을 한꺼번에 겪기에는 내게 남은 힘은 별로 없었다. 부모님의 이혼이 다 정리가 되면 그때 헤어져도 늦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억지로 그 말을 마음속 깊은 곳으로 삼켜버렸다.










스치듯 안녕 J


몇 달 후 나는 페루에서 나보다 한 살 많은 J를 알게 됐다. 페루의 한국 노래방에 어학원 친구들과 같이 놀러 갔다가 남은 방이 없어서 합석을 했었다. 어학원 친구는 일본인 한국인이 섞여 있었고 더럽게 음치인 나는 노래를 하나도 부르지 않고 잠자코 감상만 했다.  우리 팀이 한곡 부르고 그다음 J가 전람회의 <취중진담>을 불렀다. 나는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멍하니 노래 부르는 J를 바라봤을 때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였다. 잘 못 본 것 인지 모르겠지만 눈물도 글썽였던 것 같다. 그 후 몇 번의 더 만남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J는 내가 노래도 부르지 않고 말도 안 하고 있어서 일본인인 줄 알았다고 내 첫인상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두 달 전에 J는 나를 어느 레스토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그의 인생사를 듣게 됐다. 어렸을 때 불의의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J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여동생에게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 타국에서 자동차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지 몰랐는데 나도 모르게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만 들어주고 있었는데 J는 금반지 하나를 꺼냈다. 엄마가 나중에 여자친구 생기면 주라고 주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곤 내손에 그 반지를 쥐어줬다. 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충 얼버무리고 다시 J에게 어머니 물건 잘 챙기라고 말하고 돌려주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고백 아닌 고백을 들었지만 난 다시 한국으로 귀국 준비를 해야 했다.






 


리더십 있고 살갑던 K


다시 학교에 복학을 하고 1년 정도 된 시점에 난 과대를 맞고 있던 4살 연상의 K와 CC가 됐다. 한번 CC를 한터라 캠퍼스 커플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인연은 그렇게 맺어졌다. 나는 K가 사귀자고 할 때부터 부모의 이혼한 사실을 알렸다. 더 감정이 서로 깊어지기 전에 우리 부모님의 이혼이 문제가 된다면 시작도 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K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많은 위로를 해주고 우리 엄마가 가끔 나를 만나러 오실 때면 엄청 살갑게 우리 엄마를 대했다. 그렇게 2년 남짓 사귀고 K의 가족들과 첫 식사를 하게 됐다. 부모님 그리고 여동생 둘 정 말 단란한 가족이었다. K부모님이 우리 부모님에 대해 물어봤을 때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K는 자기가 대답을 해버리고 내게는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난 그날 K와 엄청 관계가 틀어졌다. 자신은 우리 부모님의 이혼을 이해해도 자기 부모님은 이해 못 할지 모르니 천천히 말하고 설득해 보겠다는 말에 나는 K에게 미련 없이 이별을 고했다. 아무리 K가 좋다고 해도 우리 부모님의 이혼을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랑은 엮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난 당당했다. 이혼이 범죄나 살인도 아닌데 문제 삼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지도 않았다.



 





돌아온 첫사랑 


부모님 이혼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을 때 이별을 고했던 첫사랑을 원망을 많이 했다. 제일 힘들 때 곁에 있어만 주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K를 만나고 있던 중간중간 첫사랑은 내게 연락을 해왔다. 다시 만나자고. 그럴 때마다 나의 부모님 이혼이 그 사람 때문인 것처럼 불같이 화를 냈다. 이별의 시기를 조금만 늦춰 달라고 말할 때는 듣지도 않고 떠나더니 지금 와서 뭐 하자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새로운 남자 친구가 있으니 연락을 하지 말라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기를 2년 정도 반복 했다.


K와 이별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휴면 계정에 들어가 있던 예전 이메일을 복구를 하고 난 눈물이 났다. 내가 읽지 않는 동안 많은 이메일이 첫사랑에게 와있었다. 부모님 이혼을 왜 말하지 않았냐며 안타까움과 자기 자책을 많이 하는 내용의 이메일이 쌓여있었다. 마지막 메일은 기다릴게로 시작했다. 클릭해 보니 이미 그 사람은 기다리다가 혼자 미국으로 여행을 떠난 상태였다. 비행기 표를 사놓고 나는 기다린 것이다. 함께 유학을 떠나자고. 그런데 그 편지는 내게 전해지지 못하고 내 이메일 속에 잠들어 있었다. 내가 발견한 시점은 이미 그 편지가 도착한 지 1년이 다되어가고 있었다.


첫사랑의 느낌 때문이었을까? 나는 다시 심장이 뜀을 느꼈고 예전 메신저 아이디와 비번을 누르고 메신저에 접속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 지금의 남편이 된 내 첫사랑이 접속해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난 말을 걸었고 그렇게 우리의 롱디 연애가 시작됐다. 시차 때문에 밤을 새워야 했고 회사에서 몰래 채팅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다시 19살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풋풋함과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6개월 후 상견례를 하고  바로 결혼을 하고 우린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유학을 떠났다. 남편과 남편 부모님은 우리 부모님의 이혼에 대해 말했을 때 제일 먼저 나를 위로해 주셨다. 얼마나 힘들었겠느냐고 본인들 까지도 엄마 아빠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난 그렇게 내 부모의 이혼을 문제 삼거나 꺼려하는 사람들을 내가 먼저 걸러냈고 그렇지 않은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17년째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이쁨 받는 막내며느리


엄마는 내가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고 할 때도 상견례를 할 때도 시댁 쪽에서 책 잡힐까 노심초사하셨다. 하지만 그 걱정은 상견계에서 시부모님이 멋지게 해소시켜 주셨다. " 이쁘고 어질게 키운 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죠? 이제 아이는 걱정 말고 우리한테 맡겨주세요. 친 딸처럼 생각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약속은 17년째 한결같이 지켜주셨다. 어린 시절 받아 보지 못한 사랑과 관심은 시부모님이 내게 다시 채워 주셨고 나는 그 덕분에 귀여운 막내딸 역할에만 충실하면 됐다.








이혼은 죄가 아닙니다.
그들도 노력했고 애썼지만 끝까지 함께 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엄마 내가 말했지? 부모의 이혼을 문제 삼는
놈들이랑은 상종도 안 할 거라고...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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