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

희망 고문

by 이도연 꽃노을









희망 고문은 나빠!



지연의 머리에서 열이 펄펄 끊는다. 룸메이트 주나와 내과에서 진료를 받아보니 38.7도였다. 왜 열은 밤에만 더 심하게 오르는지... 지연의 옆에서 물수건을 해 주던 주나의 눈에 지연의 핸드폰의 문자 알림이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 지연아, 문자 왔나 봐. 벌써 3통째야. "


" 그래? 누군데? "


" 승빈오빠라고 쓰여있는데? 네가 저번에 고백했다던 그 오빠 아냐? "


" 야! 지금 아픈데 그 얘기는 왜 또 꺼네. 그렇게 급하면 전화를 했겠지 문자를 남겼겠어? 난 관심 없어. 그냥 내버려 둬" 지연은 다 귀찮은 듯 손사래를 치며 그만두라고 했다. 주나는 약을 먹고 잠든 지연을 보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도 새벽 2시까지 문자는 두통정도 더 왔었다. 온몸이 쑤시고 열이 나는 지연은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아니 고백했다 차인 흑역사를 지금 생각했다가는 더 열받아서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지연이 아침 늦게 일어나 보니 문자는 어느새 11통이 와있었다.


' 지연아 너 학교 오늘 안 왔던데 무슨 일 있어? '

' 은영이가 그러던데 너 아파서 못 왔다며? 병원은 다녀왔어? '

' 내일은 학교 올 수 있는 거니? '

' 많이 아프면 병원에 같이 가줄까? '

' 걱정되게 왜 아무런 대답이 없어? '

' 내가 너희 집에 약사다 줄까?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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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급하면 전화를 하던가? ' 지연은 승빈의 이것도 저것도 행동이 못 마땅했다. ' 내가 아프건 말건 지가 무슨 상관이야. 내 남자친구라도 돼?' 추진력도 없고 질질 끌며 희망고문을 하는 것만 같았다. 지연은 문자를 확인하고도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열이 어느 정도 좀 내려가서 지연은 학교에 갔다. 아직 식은땀도 나고 몸은 아프지만 계속 수업을 빠질 수는 없었다. 강의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출석만 겨우 체크하고 멍하게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12월도 되기 전인 11월에 춥지도 않은데 지연은 오한을 느끼며 전기장판을 켜고 누웠다. 식탁 위에 놓고 온 전화기에서 벨 소리가 들렸지만 침대 밖으로 나갈 힘은 없었다. TV도 없고 컴퓨터도 없는 방 지연은 무심코 CD플레이어를 틀었다.


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두근 거리는 마음은 아파도 이젠 그대를 몰라요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그렇게 보고 싶던 그 얼굴을 그저 스쳐 지나면

그대의 허탈한 모습 속에 나 이젠 후회 없으니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그렇게 보고 싶던 그 얼굴을 그저 스쳐 지나면

그대의 허탈한 모습 속에 나 이젠 후회 없으니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사랑이 지나가면


하필이면 이문세의 < 사랑이 지나가면 >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연은 사랑의 시작은커녕 연애도 못했다고 푸념하며 돌아 누워서 신경질 적으로 이어폰을 뺐다. 잠시 후 식탁 위에서 핸드폰이 또 울렸지만 지연은 받지 않았다. 10분 정도 있으니 주나가 지연의 방에 들어왔다.


" 야. 채지연, 자? 전화 계속 와서 내가 받았는데 그 오승빈인지 이승빈인지 너네 과 오빠가 우리 집으로 온다더라? "

" 뭐? 왜 네가 전화를 받아? 그리고 왜 여자 둘이 사는 집에 들어오라고 그래?

" 아니... 그 오빠 되게 걱정하는 것 같고 내가 너 열이 펄펄 나서 누워만 있다고 했더니 온다던데.. 왜 괜히 나한테 성질이야! "


지연은 주나한테 괜스레 불똥이 튀긴 것 같아서 미안했다. 일어나 앉으니 침대 맞은편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입술은 하얗게 거스럼이 다 일어나고 피죽도 못 얻어먹은 것처럼 창백한 얼굴에 열 때문에 두 뺨은 촌년병에 걸린 것처럼 발그스레했다. 지연이 승빈에게 오지 말라고 전화를 거는데 승빈은 받지 않았고 30분 정도 만에 승빈이 전화를 걸어왔다.


" 어... 나 너희 집 앞인데 좀 나와. 룸메이트도 있고 여자들 둘이 사는데 들아가기 좀 그래서... "

" 난 오라고 한 적 없는데? " 지연은 보기 좋게 차인 것에 대한 보복을 하듯 쏘아붙였다.

" 아... 약만 주고 갈게."

" 약은 이미 병원에서 받아서 먹었어. 그러니까 그냥 가 "

" 나 너 나올 때까지 집 앞에서 기다린다." 뚜뚜뚜뚜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 지연은 귀찮고 짜증 난다는 듯 대충 청바지를 입고 집밖으로 나갔다. 집 앞 골목 끝에 승빈이 보였다. 자기도 조금 쌀쌀한지 두 팔을 감싸고 있었다.


" 왜 아픈 사람은 와라 마라야? 약 같은 거 필요 없다니까? " 승빈은 말없이 자신의 점퍼지퍼를 열더니 자신의 품에서 두 팔로 감싸 쥐었던 쌍화탕을 내밀었다.


" 네가 늦게 나올까 봐... 그럼 식을까 봐. 약국에서부터 이렇게 체온으로 감싸고 왔어." 지연은 그 말을 듣고 약간 감동받았으나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한테 왜 이런 걸 해주나 싶었다. 승빈의 이도 저도 아닌 태도에 지연은 화가 나서 쌍화탕만 채가지고 집에 들어왔다. 고구마를 백만게 먹은 것 마냥 답답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한테 쌍화탕이 식지 않게 품에 넣어오는 승빈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자꾸 희망 고문하는 것 같아서 나쁜 놈 같았다.


' 내가 어리다고 지가 맘대로 해도 되나 보다 생각했나? 먼저 고백하니 우습게 보였나? ' 지연은 자격지심에 절었다. 뭔가 모를 애매함에 답답한 지연은 쌍화탕 뚜껑을 열어서 먹고 잠을 청했다. 한 숨자고 나니 몸이 가벼워졌다. 밀린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갔다 버리러 지연이 집 밖에 나가는데 아까 헤어졌던 그 자리에 승빈이 그대로 서있는 것이다. 지연은 모본 척 뒤돌아 서는데 지연의 뒤통수에 대고 승빈이 말을 했다.


" 채지연. 너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거야? " 돌아서서 그냥 걸어가려는 지연에게 달려가 승빈은 백허그를 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너무 놀라 움직 일 수 없었다. 그리고 지연의 외쪽 귓가에 승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 나도 너 좋아해. 근데 기다리고 있는 거야. 내가 왜 너 홈페이지 디자인 해 줬는지 진짜 모르겠어? 나 그렇게 아무한테나 전화해서 과제해 주고 그런 호구 아니야. 네가 만 19살이 될 때까지 기다린 거야."


지연은 뒤돌아서 승빈을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승빈이 지연의 볼을 잡고 얼굴 쪽으로 다가왔다. 지연은 찔끔 눈을 감고 기다렸다.

' 드디어 귀에서 환의의 종소리가 들린다는 첫 키스의 순간이구나 ' 그러나 승빈의 입술은 지연의 이마에 살짝 닿았다. 눈을 질끈 감은 것이 창피해서 얼른 눈을 뜨자 승빈은 웃으며 " 그건 너무 빠르지. 아껴두자." 정말 이불킥을 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나도 어른인데 너무 어린애 취급하는 것 같은 승빈이 지연은 맘에 들지 않는다. 나도 거칠게 막 대해 줬으면 하는 발칙한 생각을 하면서 둘은 지연의 집 앞서 헤어졌다.



" 야! 쓰레기 버리고 오라 했더니 쓰레기 장을 만들어 버리고 왔니? 아프다는 애가 어디 갔나 했어." 주나의 외침을 뒤로하고 지연은 방문을 닫고 기대어 섰다. 가슴이 콩닥콩닥 했다.






< 다음 편에서 계속 >








이미지 출처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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