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먼저 고백하면 어때?!
콩닥콩닥 설렘
지연은 자꾸 핸드폰을 본다. 승빈의 깜짝 선물을 받고 열흘이 지나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지연과 승빈은 만나도 별반 다른 반응이나 지난 일에 대해 서로 말하지 않았다. 어느덧 10월 가을 축제 기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연네 과도 주점을 열었다. 축제가 처음인 1학년들이 2학년 선배들과 함께 주점을 운영했다. 3~4학년 선배들은 후배들에 이끌려서 주점에서 많이 영업실적을 올려주고 가곤 했다. 지연도 동기들과 주점을 도와주고 있었다.
' 승빈오빠는 안 보이네?... '
지연은 하루종일 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머릿속이 승빈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깜짝 선물을 주고 문자 한 통 남겨 놓고 내린 승빈은 어쩐지 연락이 없었다. 지연도 승빈을 강의 시간에 봐도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 그럴수록 지연은 승빈이 어떤 의도였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 교통사고를 당한 게 자신 때문이라 생각해서 미안해서 선물을 사준 건가? 아니면 정말 내 생일을 챙겨 주려고 선물을 주었을까? '
지연은 통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승빈을 생각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설레었다. 하지만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생활하는 승빈에게 먼저 말하기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중간고사기간이 오고 중간고사 공부로 바쁜 어느 날이었다. 지연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승빈이었다. 지연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 침착하게 받았다.
" 여보세요? "
" 어. 나 승빈인데 혹시 수요일에 시험 보는 과목 노트 정리 한 거 좀 빌릴 수 있을까? "
" < 인문학의 이해 > 요? 오빠도 그 과목 들어요? "
" 나 그거 목요일에 듣거든. 넌 수요일에 강의 듣지? 빌려주면 복사하고 돌려줄게. "
지연과 승빈은 그날 저녁 지연네 집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연은 공부하던 초췌한 몰골을 승빈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급히 화장을 하고 집 앞에 나갔다. 승빈은 해가 거의 진 골목 끝 가로등 밑에서 서있었다. 가로등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지 그리 밝지는 않았지만 그의 얼굴 옆 실루엣이 만화 속 테리우스 같았다. 점점 다가가자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 소리가 점점 커져서 지연의 귀에까지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다가가서 승빈에게 노트를 내밀었다. 승빈은 고맙다면서 노트를 받았고 둘은 그렇게 돌담이 쌓여있는 성복동 뒷 길을 걸으며 이야기했다.
" 이문세 노래 들어봤어? "
" 아.. 네."
지연의 취향은 아니었기에 좋았었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 오빠는 축제 때 학교에 안 왔어요? 우리 과 주점 나름 인기 있었는데..."
" 어. 축제 1~2학년이나 즐겁지. 난 축제는 시끄럽고 별로라서..."
" 공부는 많이 했어? 인문학의 이해 시험범위가 길던데. 너 필기여왕이라면서 애들이 그러더라?"
" 아.. 전 한 번씩 써봐야 이해가 돼서요. "
그렇게 서로 몇 마디 주고받고 15분 정도 산책을 끝내고 승빈이 지연을 집 앞에 데려다주었다.
" 지연아, 노트 내가 내일 학교에서 돌려줄게. 공부 열심히 하고 잘 들어가 "
그렇게 싱겁게 서로 물어보고 싶은 핵심은 못 물어본 것처럼 뜨뜨 미지근한 산책이 끝나고 승빈과 지연은 헤어졌다. 지연은 짧은 산책이 아쉬웠지만 장학금을 타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했다.
지연의 고백
지연은 점점 승빈에게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뺏기고 있었다. 강의실이나 실기실에서 승빈을 봐도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듯 딴짓을 했지만 지연은 자꾸 승빈이 의식됐다. 그럴 때면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강의실 밖으로 나와있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도 지연의 향한 승빈의 태도는 변한 것이 없었다. 여고 출신인 지연이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럴수록 지연은 ' 그 오빠랑 나랑 나이 차이가 몇인데? 6살 차이나 나잖아. ' 하면서 승빈을 향한 마음을 감추려 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을 깨는 일이 일어났다. 전공과목 조작업을 하게 됐는데 지연과 승빈이 같은 조가 된 것이다. 지연은 조모임을 하면 할수록 승빈을 의식하게 됐고 공부도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가량을 짝사랑 아닌 짝사랑을 하다가 지연은 이 아무것도 아닌 관계를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지연은 핸드폰으로 승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오빠 나 지연인데... 오빠..."
" 어. 무슨 일이야? "
" 음... 제가 오빠 좋아하거든요. 오빠는 어때요? "
"......"
승빈이 대답이 없이 침묵이 흐르자 지연은 긴장을 했다. 억색한 침묵을 깨고 승빈이 말했다.
" 난… 네가 여자로 생각된 적 없는데? 그냥 동생 같을 뿐이야. "
그 말 듣고 지연은 창피해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괜찮은척 알겠다면서 얼른 전화를 끊었다. 어쨌든 소원대로 승빈의 마음을 알아냈으니 지연의 마음은 후련은 했지만 적잖은 상처를 받았다. 다음 날 바로 조 모임이 있었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골똘히 생각하면 지연은 결석을 하기로 한다.
햄버거를 혼자 먹는 남자
지연이 용감하게 고백을 하고 차인 다음날 지연은 수업도 조모임에도 가지 않았다. 조에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친한 친구한테만 문자를 보내서 몸이 안 좋아서 오늘 조모임에는 못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누워서 이불킥을 하면서 누워있으니 지연은 정말 몸이 아픈 것 같기도 했다. 오후 4시가 넘으니 승빈에게 전화가 왔다. 지연은 당황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러자 바로 승빈의 문자가 왔다. ' 5시까지 대학로에 있는 햄버거 집으로 나올 수 있니? 올 때까지 기다릴 거다.' 문자를 보고 지연은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차이고 다음날인데 학교도 안가 놓고서는 바로 오란다고 햄버거 집으로 가긴 좀 그랬다. 하지만 승빈이 마음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한 줄기 희망을 가지고 5시까지 햄버거 집으로 갔다.
햄버거 집에 도착하니 승빈은 미리 와서 있었다. 눈도 안 마주치고 앉는 지연에게 어떤 햄버거를 먹겠느냐고 승빈은 물어 봤다. 지연은 ' 지금 햄버거가 먹히기나 할까? ' 생각하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승빈은 유유히 걸어서 햄버거 세트 하나를 사 왔다. 지연은 승빈의 행동에 크게 당황했다.
' 안 먹는다는데 왜 사 오는 거지? ' 그 다음에는 더 충격이었다. 사온 햄버거를 승빈은 말없이 먹었다. 지연은 승빈이 햄버거를 혼자 먹기 시작하자 어쩔 줄 몰랐다. 그 자리에서 박차고 나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기다렸다가 무슨 말이라도 듣고 가야 하는 건지... 하지만 확실 한 것은 완전 굴욕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둘은 햄버거 가게를 나오고 승빈은 걸어서 지연의 집에 데려다주려고 하자 황당해하던 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승빈에게 화를 낸다.
" 집에 혼자 찾아갈 수 있거든요. 어린애 아니에요! "
창피하고 왠지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지연은 버스도 타지 않고 무작정 빠르게 학교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돌아서 가는데도 승빈은 따라오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 거리로 여섯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를 지연은 울면서 돌아왔다. 생각해 보니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혼자 먹으란다고 혼자 햄버거를 먹은 남자를 어떻게 이해 해야 할지 몰랐다. 승빈의 그런 무례한 행동이 승빈에 대한 지연의 마음을 깨끗하게 단념시키려고 하는 것인지 어떤 것인지 승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어서 지연은 더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고 지연은 며칠 동안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승빈도 별다른 전화나 연락이 없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승빈에 대한 지연의 설레었던 마음은 분노로 바뀌었다.
' 내가 저딴 남자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다니...' 채지연 인생에 굴욕적이고 정말 흑역사로 남을 일이었다.
‘ 두고 보자 오승빈!’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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