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생 승빈과 80년생 지연

99학번입니다

by 이도연 꽃노을







첫인상





디자인과 신입생 된 지연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과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다. 처음 해보는 서툰 솜씨로 얼굴에 화장도 하고 눈썹과 아이라인을 그렸다. 고등학생 때 몰래 엄마 화장품을 쓰던 처지에서 이젠 아무도 눈치 보지 않고 내 화장품을 맘껏 사용하게 된 지연은 마치 미스코리아 대회라도 나갈 듯이 얼굴에 과한 화장을 하고 번쩍이는 큐빅 핀을 꽂고 학교로 향했다. 불과 두 달 전에 졸업한 고등학생의 티를 벗어 버리고 더 이상 애송이가 아니라는 듯 신나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오리엔테이션이 열릴 강의실로 향했다.



아직 시작 전이었지만 서로 서먹해서 그런지 오리엔테이션 장소는 애매한 분위기가 흘렸다. 벌써 많은 학생이 와서 있었다. 얼핏 보아도 남학생이 두 배이상 많아 보였다. 여고를 졸업한 지연은 어색했지만 핫핑크색 롱 점퍼가 버석버석 소리가 날 정도로 성큼성큼 걸어서 비어있던 맨 앞자리에 가서 앉았다. 곧 오리엔테이션 시작됐고 늘 그렇듯 틀에 박이고 재미없는 자기소개들이 이어졌다. 외쪽 끝부터 한 명씩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저는 예고를 나왔고요. 창조의 아침 출신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점점 심장이 두근 거리며 지연은 뭐라 말할지 속으로 생각했다. 마침내 지연의 차례가 되자 쑥스러운 듯 엉거주춤 일어나서 소개를 했다.


“저는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연은 출신고나 출신학원에 대한 정보 없이 짧게 소개를 끝냈다. 그렇게 지루한 자기소개 레퍼토리들이 끝나갈 때쯤 지연의 눈에 띄는 한 남자가 있었다. 강의실에서 유독 눈에 띈 그 남자는 딱 봐도 신입생의 비주얼에서 벗어나 제일 나이가 있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오승빈입니다. 저는 이 대학이 세 번째 대학입니다. 첫 번째는 공대에 갔었고, 두 번째는 K대 미대를 다니다가 자퇴를 하고 제품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어서 이 학교에 왔습니다. 군대도 다녀왔으니 제가 제일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잘 부탁합니다.”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지만 승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승빈에 이어 서녀명의 학생들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과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됐다. 강의 시간, 교수님 소개, 강의실 위치 그리고 수강 시청에 대한 전반적인 학사 일정 소개를 받고 세 시간 만에 오리엔테이션은 끝이 났다. 벌써 친해지거나 원래 앞면이 있는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어디론가 가고 지연은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뜻밖에 도움




지연을 포함한 99학번 신입생들은 <컴퓨터의 이해>라는 교양을 필수 교양으로 들어야 했다. 모뎀으로 인터넷을 해야 했던 시절이어서 지방에서 홀로 상경해 자취를 하는 지연에게 컴퓨터는 없었다. 학교 교양 수업 때나 구경하는 신문물이었다. 교양수업 때 처음으로 컴퓨터 키보드를 처음 눌러볼 정도로 지연은 컴퓨터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다. 교양 수업 덕분에 포털 사이트에 지연은 본인 계정의 이메일을 생성하는 방법을 처음 배웠다. 수포자였던 지연에게는 컴퓨터란 제2의 수학처럼 느껴졌다. 미대에 오면 수학과 비슷한 과목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컴퓨터 수업은 지연에게 넘기 힘든 과목이었다.



학기가 끝나갈 때쯤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어마어마한 과제를 내주셨다. 바로 여름 방학 시작 전까지 개인 홈페이지 첫 페이지를 디자인해서 제출하는 것이었다. 그 학기말 과제를 듣고 학생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일단 컴퓨터를 집에 보유하고 있으며 컴퓨터를 어느 정도 다룰 줄 아는 사람과 지연이처럼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지 않던지 있더라도 사용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지연은 당연히 후자의 그룹에 속하게 됐고 후자에 속한 학생은 그 과 학생의 70퍼센트 되었다. 학점이 걸려있고 꼭 내야 점수를 받는 과제였기에 컴퓨터를 잘 다룰 줄 아는 동기를 찾아 부탁할 동기가 없는지 눈치 게임이 시작됐다. 딱 봐도 컴퓨터를 잘하는 학생은 여유롭게 믹스커피를 들이켜고 여유로웠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홈페이지를 만들어 제출해야 하는 컴맹들은 자동으로 컴퓨터를 할 줄 아는 동기들을 포섭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컴퓨터를 잘하는 2~3명에게 각 각 6~7명 정도씩 줄을 서서 홈페이지 만드는 방법을 알려달라며 아부를 하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밥을 사주네 소개팅을 주선해 주네 온갖 대가를 걸고 컴퓨터를 할 줄 아는 학생은 인기가 많았다.

지연은 부탁이 죽어도 목구멍에 나오지 않아 급하게 서점으로 향해 홈페이지 만드는 법에 대한 책을 사고 PC방이나 도서관 컴퓨터에서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2주 정도만에 홈페이지 첫 페이지 디자인을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아무에게도 부탁도 못하고 PC방과 자취방으로 며칠 오가던 지연은 거의 포기 상태에 이르게 된다.


밤 11시쯤 지연의 PCS폰이 울렸다. 초저녁 잠이 많은 지연은 자다가 무심결에 전화를 손을 뻗어서 전화를 받았다.

" 어.. 나 승빈인데.. 혹시 자고 있었어? "

" 네? 누구요?..... "

" 어... 나 99학번 오승빈."

지연이는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고 얼른 침대에서 일어났다.

" 아.. 안녕하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 아니.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혹시 너 홈페이지 만드는 과제 했어? "

" 저는.. 아직요."

" 만드는 법은 아는 거야?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

" 네?"

과제를 포기해야 하나 걱정하던 지연은 잠이 확 달아났다.


" 오빠 거도 만들기 힘드신데.... 제 거도 부탁해도 돼요? "

" 무슨 스타일 좋아하는데? 어떤 콘셉트로 하고 싶은지 말해줘. 최대한 네가 한 것처럼 만들어 볼게"

" 아.. 콘셉트이요. 부탁하는 처지에 염치없이 콘셉트를 어떻게 말해요. 그냥 오빠 과제하는 시간 피해 안 줄 만큼 알아서 해주세요."

" 그래? 그럼 알았어. 잘 자라." 뚜뚜뚜 전화가 끊어졌다.

지연은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다. 솟아날 구멍이 생긴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잠에 들었다.



어느덧 여름 방학은 시작하게 됐고 첫 학기 성적을 확인했다. 거의 포기하고 있었던 <컴퓨터와 이해> 과목의 점수도 A가 나왔다. 지연은 승빈이에게 전화를 해서 고맙다고 말해야 하나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홈페이지를 만드는 동안에도 미안해서 지연은 승빈이에게 전화나 문자를 하지 못 했다. 그런데 A학점이 나오자 이제야 전화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은 생각에 그만두었다. 나중에 개학을 하면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고 밥이라도 거하게 살 생각이었다. 그렇게 지연은 토익공부에 열중하면서 2달 남짓한 여름 방학을 보냈고 승빈도 별 다른 연락은 없었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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