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로 들이대는 선배
K 선배
학기말 과제로 목업을 만들어 내는 과제 때문에 지연의 과 전체는 밤샘 작업을 실기실에서 하고 있었다. 밤 10시가 되면 디자인과 건물이 모두 통제가 되기에 아침 6시가 되어야 다시 건물 밖으로 나 살 수 있었다. 밤샘 작업 한다더니 삼삼오오 이야기 꽃만 피는 동기들도 있었고 너무 졸려서 목업을 만들다가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도 있었다. 지연과 승빈은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지연은 지속된 작업으로 어깨가 아파오고 눈이 침침해 과 베란다로 나가서 잠시 찬 바람을 쏘였다. 1층 현관이 통제되었으니 우리 모두 거대한 배에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지연이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잠시 쉬고 있을 때 인기척이 나서 뒤돌아 보았다. 한 학년 선배인 K였다.
" 안녕하세요. 선배 "
" 어. 안녕? 여기서 혼자 뭐 해? "
" 아... 목업 만들다가 졸리기도 하고 팔이 아파서 찬바람을 좀 쐐려고 나왔어요. 선배도 오늘 야간작업 하세요?"
" 응, 군대 갔다 와서 복학했더니 배워야 할 디자인 프로그램도 있고 모든 게 많이 변해있네. 그래도 목업 만드는 것은 변함이 없어. 손으로 하는 거니까. 목업 만들 때 힘든 거 없어? "
" 포맥스나 아이소핑크 갈아낼 때 그 가루 견디는 게 젤 힘들죠. 보니까 그 가루 묻으면 피부도 붉게 되는 것 같고 별로 좋은 성분 같지는 않네요." 지연은 베란다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K선배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더니 담배에 불을 붙이며 지연에게 묻는다.
" 담배 필래? "
" 아. 저는 담배 안 피워요."
" 그럼 연기 싫어하겠네?" 하면서 지연의 곁에서 멀리 떨어져서 담배를 피운다. 지연은 이제 들어가서 작업을 마저 해야겠다는 생각에 들어가려다가 과 동기들이 락카 작업을 하려고 쌓아 놓은 벽돌에 걸려서 넘어졌다. 밤이라서 달빛에만 의존해야 해서 지연은 미쳐 돌무더기를 못 봤던 것이다. 그때 K는 얼른 뛰어와서 지연을 부축한다. 지연은 괜찮다면서 얼른 일어나 보지만 발목이 시큰거린다. 다시 앉았던 의자를 찾아서 청바지를 걷어보니 복숭아 뼈 근처가 벌겋다. 일어서서 걸으면 찌릿찌릿 아파왔다. 그런 지연을 보고 K는 성큼성큼 걸어와서 지연을 번쩍 들고 빈 강의 실에 앉혔다. 지연은 묻지도 않고 번쩍 자기를 들어 올려 옮기는 선배의 행동에 당황했다.
" 여기 앉아있어 봐."
"아... 괜찮아요. 선배 "
" 아냐 내 사물함에 뿌리는 파스 있어 "
그리고는 빈강의 실을 나간 후 잠시 후에 파스를 들고 나타났다.
지연의 발 앞에 멈춰 앉더니 자기 무릎에 지연의 발을 올려놓고 지연의 양말을 벗긴다. 그리고 부을 것 같은 부위에 파스를 슥슥 뿌려댔다. 지연은 굳어 버린 것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 상황을 승빈이가 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빨리 일어나서 양말을 들고 실기실로 향하려고 하는데 K선배가 지연의 팔을 잡았다.
" 너 사귀는 사람 있어? " K선배의 기습 질문에 지연은 무척 당황했지만 승빈을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 네 저 사귀는 사람 있어요."
" 우리 과야? "
" 아뇨 " 승빈과 지연이 6개월 이상 사귀고 있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둘은 여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어서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방법들로 몰래 만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이제 가도 되죠? 지연은 강의실 밖으로 절뚝이며 나온다.
' 우리 과에서 제일 무섭다는 저 선배가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 K는 해병대를 막 제대해서 복학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말투도 아직 군인 같았다. 그리고 뭐든지 절도 있고 일차 천리였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스타일이었다. 지연은 승빈이 저렇게 박력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실기실로 돌아오니 승빈은 아직 목업 만들기에 열중이다. 지연은 자리에 앉아서 양말 한쪽을 마저 신었다. 파스 냄새가 나기 시작하니 옆에 동기들이 몰려들면서 다쳤냐고 물어본다. 그러나 승빈은 모르는 척 작품 만들기에 열중한다.
난 그냥 내 마음대로 할 건데?
이틀째 야간작업이 이어졌다. 어제 새벽에 K 선배와의 일이 생각나서 지연은 K를 또 마주칠까 실기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10시쯤 1학년 실기실에 부스럭부스럭 과자가 들은 큰 봉지 하나를 들고 들어온다.
" 애들아 먹고 해 " K선배였다. 애들은 하던 작업을 멈추고 과자랑 1.5리터 페트병이 있는 테이블로 모여들었고 잠시 과자 파티를 즐겼다. 승빈과 지연은 괜찮다면서 계속 작업을 했고 몇몇 동기들도 생각이 없다면서 하던 작업에 열중했다. 30분쯤 후 1학년 실기실을 나가려다가 지연에게 다가와서 밖에서 잠시 보자고 한다.
" 너 어제 내가 물어본 것 때문에 나 피하니? "
" 아뇨... 그냥 과자 좋아하지 않아서요. "
" 난 그냥 내 마음대로 더 좋아할 건데? 남자친구가 있어도 상관없어."
"......" 지연은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방귀인가? 남자친구가 있다는데 그냥 돌진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K가 이해도 안 됐지만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 자기가 선배라고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 지연은 말대꾸가 필요 없다는 듯 다시 실기실로 돌아왔다. 지연은 잘 못 한 것도 없는데 괜스레 승빈에게 미안하고 승빈의 눈치가 보였다.
' 오빠한테 K선배 이야기를 해야 하나? 아냐. 괜히 신경 쓸 거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승빈오빠니까 상관없지.' 지연은 얼른 동이 터서 집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싶었다. 기분도 별로고 9시에 또 다른 강의가 있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다. 6시 땡 하고 건물에 문이 열리고 집으로 가는데 승빈이 지연에게 전화를 했다.
" K선배가 너 왜 부른 거야? " 지연은 빠르게 다른 구실을 머릿속에서 생각했다.
" 아... 다른 게 아니라 우리 층 베란다에 거기 1학년들이 어지른 거 있는데 좀 치우라고 해서."
" 뭐 그런 걸 너한테 혼자 시키냐. 다 같이 하면 될 걸."
" 그 선배 약간 아직도 군대에 있는 것 마냥 힘이 팍 들어가 있잖아. 신경 쓰지 마 많지도 않았어... "
지연은 승빈에게 거짓말로 둘러 됐다. 그럴수록 왠지 승빈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지만 말하기도 그랬다. 80%가량이 남자들이 있기 때문에 지연이네 과는 군기를 잡았다. 승빈은 26살이었음에도 나이가 더 어린 2학년 선배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 괜스레 이야기를 꺼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지연은 자기만 K에게 넘어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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