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짜인 이야기가 주는 서늘한 긴장감

<여우누이, 다경>을 읽고

by 뚱이


반전 없이 촘촘히 잘 짜인 스릴러를 읽었다.

오랜만에 읽은 우리나라 작가의 스릴러 "여우누이, 다경"

사고로 부모를 잃은 다경.

"저 아저씨네 집에서 좀 지내면 안 돼요?" (p.114)

어릴 때부터 머리 좋고 영민했던 다경의 이름은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바람으로 지어졌다. 주변을 관찰하고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을 가진 다경은 부모의 사고 이면에 숨은 진실 역시 알아채고 만다.

정환이 다경을 집으로 데려간 건 과연 선의였을까? 불안감이었을까?

작품을 읽는 내내 강경옥 작가의 "두 사람이다"를 읽었을 때의 서늘함이 느껴졌다. "두 사람이다"에서 내 주변에 있는 나를 죽일 두 사람을 추리하며 추적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긴장감이 역으로 "여우누이, 다경"에서는 과연 다경이 이들을 어떻게 파국으로 이끌 것인가 하는 스릴로 이어졌다.

열여섯, 홀로 남은 생존자 다경.

다경의 허락받은 침입으로 정환의 가족은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과 긴장감을 느낀다. 항상 그 자리에 있던 듯, 정환의 아내에게는 딸처럼 굴고, 동갑내기 선규에게는 시험 준비도 도와가며 서서히 스며든다.

다경이 함께하면서 집안에 서서히 늘어가는 균열.

의심의 대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차가운 눈으로 관찰하고, 그와 가족에게는 의심의 씨앗을 심어 단단한 신뢰에 균열을 가한다. 그로써 그의 가정은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다.

가장 통쾌한 복수라는 건 없는 것 같다. 복수의 끝에 따라오는 공허는 분명 있을 것이다. "세상의 온갖 아름답고 더럽고 비참하고 외로운 모습들이 서서히 어둠 속에 잠기는" 모습을 바라보는 다경의 마음도 그렇지 않았을까.

하지만 가능한 관련된 많은 이에게 불안을 심으며 고통을 안겨주고, 벌을 받아야 할 대상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건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복수가 아닐까.

다경은 폭주하는 대신 철저한 심리전을 벌인다. 관찰하고, 계산하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이 작품이 모티브로 삼은 여우누이 설화에서 여우누이는 가족을 하나씩 잡아먹는 괴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여행 중 어린아이의 치마 속을 탐하는 '파파'의 뒤통수를 후려치던 과거의 다경은, 이제 한발 물러나 응징할 정도로 자라났다.

민규, 선규, 세라, 정환, 다경의 시점을 오가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두 아들의 엄마, 어쩌면 조금은 이기적인 큰 아들, 항상 치여 사는 작은아들, 성장의 속도가 다른 아이들 간의 사소한 오해, 중독에 빠진 이의 후회와 잘못된 선택까지 세세하고 현실적인 묘사 덕에 각 인물의 감정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한 손에 착 들어오는 247쪽의 분량의 책은 짜임새 있는 구성과 속도감으로 단숨에 읽어낼 수 있다. 반전을 위한 반전이 넘쳐나는 스릴러 판에 보기 드문. 잘 짜인 이야기만으로 긴장감을 주는 아주 반가운 책이다.

억지스러운 반전에 지친 스릴러 팬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서미애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찾아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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