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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콩 Nov 08. 2022

6. 펫로스 증후군

솔직해지자면 난 20살이 됐을 때부터 토토와의 이별을 생각했다. 당연히 토토의 수명이 짧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언젠가는 예기치 않은 이별이 찾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진을 많이 찍어놨다. 나중에 이 정도면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눈, 귀, 코, 발... 정말 여기저기 찍어놨다.

하지만 그게 이별의 아픔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영상이나 많이 찍어놓을걸. 사진에 비해 영상은 현저히 적었고 생동감 있는 영상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후회가 들었다.

어차피 늦은 건 늦은 일. 나와 쌍둥이는 토토를 보내고 온 다음날부터 핸드폰에 있는 토토 사진을 고르고 골라 인쇄를 맡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우리를 몰아세운 게 아닐까 싶다. 조금은 쉬어도 됐을 텐데. 괜찮아질 시간도 주지 않고 토토의 사진을 하루 종일 봤으니 절대 괜찮아질 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 시간들이 독이었을지도 모른다.

인쇄를 한 사진이 올 때까지 우린 토토의 물건을 정리했다. 옷이며 장난감, 밥그릇, 집에서 미용한 털, 하네스 등등. 17년을 같이 살았으니 물건은 큰 상자 하나를 다 채우고도 남았다.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아직도 그 상자는 집에 있지만 자주 열지는 못한다. 아무리 괜찮아진 것 같아도 토토가 남기고 간 흔적을 보면 우울해지고는 하니까.

토토가 떠난 후 나는 작가로서 계약한 작품이 있었기에 밤까지 새워가며 노트북만 붙잡고 있었다. 토토가 이제 곁에 없다는 생각에 계약을 무를 수만 있다면 무르고 싶었다. 정말 그 정도로 삶의 의욕도 잃고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울기만 했다. 주인공 커플의 달달한 연애 과정을 쓰면서도 난 울고 있었다. 단편이었기에 망정이지. 장편이었다면 난 아예 키보드를 놔버렸을지도 모른다.

계약된 원고를 보내고 난 후에는 미친 듯이 드라마를 찾아봤다. 원래 드라마를 잘 보지도 않으면서 장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봤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긴 드라마만 찾았다. 그걸 보면서 웃으면서도 울었고, 울면서도 웃었다.

그렇게 펫로스 증후군이 시작되었다.

청소년기에도 우울감이 많았던 나이기에 토토가 떠난 후에는 그 우울함이 심했다. 세상을 등져버릴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다. 쌍둥이와 항상 하는 말은 살고 싶지 않다는 말뿐이었다.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던 존재가 없으니 부모님과의 대화는 단절되었고, 무기력함과 우울감에 빠져 나쁜 생각만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옆에 있었는데 없다는 허탈함과 상실감. 피폐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 기분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공감하기 힘들 거다. 유난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우울해할 때면 항상 옆을 지켜주던 토토기에 그런 감정이 눈덩이처럼 불어 나에게 더 큰 타격감을 줬다. 눈치가 빨라서 누나의 감정을 바로 알아차리던 토토의 존재가 그 당시의 나에겐 너무 간절했다. 이미 장례식장까지 가서 보내줬지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못 버틸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여자는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면 자식 잃은 기분이고, 남자는 친한 친구를 잃은 기분이라고. 우리 집에는 여자가 셋, 남자는 하나다. 엄마와 우리 자매가 우울해하고 있으니 집은 암울함 그 자체였다.

잠을 자면 꿈에선 토토가 나왔고 난 꿈에 매달려 토토를 보고, 일어나면 또 한없이 들이차는 상실감에 토토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거의 일기 같은 독백이나 다름없는 글이지만 토토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고 우울하든 힘이 들든 나는 필사적으로 편지에 매달렸다. 한동안은 그 좋아하던 글에서도 손을 뗀 채 말이다.

말로만 듣던 펫로스. 그걸 경험하면서 토토는 그만큼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큰 존재라는 걸 실감했다.

펫로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조금 무뎌질 뿐이지. 그 무뎌짐은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하지만, 또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다.

지금도 여전히 펫로스와 토토로 인해 난 시한폭탄을 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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