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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pmage Sep 10. 2016

제주 여행, 사람 그리고 풍경

프롤로그

Ready to go  /  Aug, 2016


작년 10월, 혼자서 제주를 다녀왔었다. 회사에서 고생스러워하는 나를 안쓰럽게 여긴 아내가 보내준 제주 여행이었다. 참으로 고맙고도 미안스러웠다. 그래서일까? 작년 제주 여행에 대한 기억과 감각들은 고된 나의 도시생활에 오랫동안 버티게 해 준 힘, 그 자체였다. 그리고 딸이 태어났다. 딸은 나와 아내에게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미소와 갓 맑은 눈빛을 종일 선사했다. 물론, 울음을 동반한 엄청난 양의 분유와 기저귀도 거부할 수 없었다. 대나무 키 크듯이 딸과 아내에 대한 내리사랑과 책임감이 커져갔다. 딸이 몸을 자주 구무럭거리기 시작하자 나는 괭이잠을 자는 횟수가 늘어났고 그만큼 피곤에 찌든 하루의 연속들이 이어져 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주는 잊혀갔다.




On my way home / Aug, 2016


잊었다 여겼는데 실은 잊은 적이 없었다. 잊었다는 사실조차도 잊었을 만큼의 고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대중없이 여행의 잔상들이 내 안을 순식간에 들이닥쳐 마음을 흔들어댔다. 그렇게 제주 여행의 순간들이 그저 예사롭고 심상한 도시의 일상 위로 오버랩될 때면, 내게 주어진 책무를 벗어던지고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순간이어라.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찾으면, 방금 전까지의 애타 하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심드렁하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through a window / Aug, 2016


그렇다고 일상이 궁상스럽다는 것도 아니며, 고상해야 한다고 힘주는 것도 아니다. 일상이 선사하는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이 날마다 반복된다는 이유만으로 지겨워하는 나의 유난스러움에 혀를 차는 것이다. 내 왼쪽 팔뚝에 앉은 채 온몸을 나의 왼쪽 가슴에 그대로 포개어 잠을 자는 딸을 볼 때, 과거에 어느 누구에게도 느껴본 적 없는 감사함을 느낀다. 엄마를 안정형 기지로 생각하고 형성된 엄마와의 애착 덕분에 엄마 껌딱지가 되어 나를 떠밀어버리는 딸을 볼 때, 세상에 모든 것을 다 뺏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일상의 감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주에 가고 싶다. 다만, 떼쟁이처럼 굴지 않을 뿐이다.




만개한 꽃처럼 가지런한 치아를 한 껏 보이며 웃고 있는 이 사진 속의 소녀들은 아내와 그녀들의 친구들의 우정은 16년째 진행 중이다. 오랜 시간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하며 지내온 만큼, 자신들의 우정을 한껏 기념하기 위해 그녀들은 제주여행을 가기로 한다. 이번에도 아내는 혼자 남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또다시 제주 여행을 허락했다. 단, 조건이 몇 개 따라붙었는데, 거의 일어나지 않을 조건들이었다. 물론, 나는 그 모든 조건을 철저히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In the air / Aug, 2016


탑승게이트 뒷 켠의 벽면에 몸을 기대어 비행기 탑승을 기다릴 때도 실감 나지 않았다. 비행기가 힘차게 줄달음질을 치고 코를 하늘로 높게 치켜세우고 날아오르기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비행기가 성층권으로 올라가 파랗디 파아란 하늘을 내 눈에 안겨주었을 때야 비로소 늦은 미소가 번졌다.


다시, 제주를 가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 지난주에 글을 발행하고 하루 만에 글을 내렸지요. 저는 남들과 다르게 글 쓰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초안을 쓰고 나면 글의 맥락과 흐름을 살피고, 문장의 길이나 단어의 선택 등을 고민하고, 수사적 표현이나 사실적 표현을 두고 갈등하고, 순우리말을 찾아 쓰려는 수 번의 작업을 거칩니다. 그렇게 고치고 또 고쳐 제 맘에 들고 아내 맘에 들면 발행을 합니다. 그런데 지난번에는 이 모든 과정을 깡그리 무시한 채 다른 작가분들의 전개 방식을 흉내내기 바빴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방식이 새로운 접근이라 생각했는데, 왠 걸요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글을 다시 엎고 새로 썼습니다. 저만의 글쓰기 방식으로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특히 문성훈 님에게도 심심한 사과를 전합니다. 글을 좋다고 해주셨는데 황급히 글을 내린 꼴이 되었네요. 또한, 발행이 남들처럼 많지 않아도 이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글과 사진의 상업적인 용도 사용 및 무단 편집 이후 게시를 하면 법적 처벌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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