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를 만든 것들
‘썩어 문드러진‘
‘곪고, 또 곪아버린’
조금 전 세달만의 상담을 하며 문득 나의 상처받은 모습에 대해 이런 표현들이 떠올랐다.
상담을 하며 돌아본 나의 약 20년은, 곪아 터진 상처를 동여매고, 그 상처를 계속 더 조이고, 후벼 파며 그 힘으로 이미 무거워 움직이기 힘든 몸둥아리를 끌어온 시간이었던 것만 같다. 말보다도, 그런 나의 모습이 머리에 먼저 사진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상담을 시작하고, 20분 넘게 나 혼자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간단히 이야기를 하고, 최근에 어떤 고미들을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했다.
내가 지금 이직이라는 도전 과제에 얼마나 긴장과 불안을 느끼고 있는지 특히 열심히 설명했다. 내가 보아도 이 정도의 긴장과 불안은 정상 수준을 넘었으며, 이후의 내 삶에 어려움을 가져올 것임이 너무나 분명했기에 난 이걸 꼭 해결해야만 했다.
이 불안은 오래 전부터 시작되어, 내 학업과 취직에 방해가 되었다고, 나는 성공경험이 없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실패만을 반복한 나는 이제는 그 불안이 너무나 커 두렵다고.
내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은 마치 내가 절벽에 이어진 외나무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 길이 아니면 다 끝이 나버리는 것처럼 여기며, 강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수능을 볼 때 스카이가 아닌 삶은 선택지에 없었다. 삼수를 하고 싶어서, 할 수 있어서, 할만해서 선택을 한 게 아니라, 정말 그게 아니면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삼수를 했다. 가고 싶어하던 회사에 면접을 볼 때에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나에게 서울대가, 이 회사가 왜 그렇게 증요하냐고.
나는 답을 알았다. 조금 부끄러웠기에 3초정도 망설이다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 제게 중요한 것 같아요.”
서울대를 가고, 이 회사를 다니면, 남들이 나를 무시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나를 부러워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할 것만 같았다.
선생님은 또 내게 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 중요한지 물었다.
이번엔 확실한 답은 모르겠고, 추측되는 건 있었다. 이전에도 다른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나는 학창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중학생 때, 일진, 날라리 아이들에게 무시 받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억울하고 화가 난다. 길을 지나가면 불러 세워서 돈을 빼았고, 준비물을 빼았고, 무거운 짐을 날라 달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그때 우리 학교는 다른 주변 학교들과 달리 체육시간에 체육복이 아닌 사복을 입었는데, 그때 입으려고 부모님을 졸라 산 아디다스 트레이닝 세트는 학교에서 개시한 날 뺏겼다.
새로 산 게스 티셔츠도 마찬가지였다. 사자마자 뺏어 가서는, 열심히 입고 돌아 다니며 사진도 찍어 싸이월드에 올리고는, 우리 엄마가 그 일진 아이의 엄마도 아닌, 그 엄마와 알고 지내는 다른 아이의 엄마와 전화해 이이야기하자 그제서야 돌려 줬다. 보풀이 다닥다닥 붙은 티셔츠를 내게 던지며, 마마걸 년 어쩌고 욕을 하던 그 아이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수학 여행 날에는 옷 좀 좋아하고, 노는 애들 사이에서는 유명했던 mlb 브랜드의 옷을 부모님을 졸라 사입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집 문을 나서자마자 일진 한명에게 ‘미친년’이라고 욕을 얻어 먹었다. 그때 꽤나 고가인 옷이었는데 디자인이 상당히 화려했다.
이 일 말고도, 너무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일들을 참 많이 겪었다. 대부분 중학교 1학년때의 일들이었다. 자존심이 꽤나 세고, 가뜩이나 남들보다 잘나길 좋아했더 나에게, 그때의 일들은 너무나 치욕적이었다.
일진들의 무시와 괴롭힘 속에, 중학교 1학년 같은 반 친구들도 나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항상 같이 다니던 네다섯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그중 나와 가장 친하던 아이가 주도해 나를 왕따시켰다.
그 주도자 아이는 나와 친하게 지내던 남자 아이와 사귀기 시작했는데, 그 시점부터 그 남자 아이는 태도가 돌변하더니 나를 ‘똥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에게서 똥냄새가 난다고 나를 볼때마다 소리쳤다.
비참했고, 처참했고, 참담하게도 혼자였다.
내 존재 자체가 창피했고, 숨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매년 학급 임원을 했고, 인기투표를 하면 1위를 줄곧 차지했던 내가 이런 무시를 당하는 걸 보고 초등학교 때 친구는 지나가다 망가졌다고 놀라며 탄식을 했다.
내게 원인이 있는 것 같았고, 그 아이들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에쁘지 않아서, 세련되지 않아서, 쿨하지 않아서 내가 싫었다.
초등학교 때 올백을 맞고 전교 1등으로 졸업을 했던 내가 공부보다는 친구, 외모, 이성 관계에 관심을 더 가지자 부모님도 나를 나무라곤 했다.
다 내 잘못같았다. 그냥 얌전히 공부나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괜히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가졌다가 이런 일진들의 부정적인 관심(?)과 괴롭힘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것들에 관심을 다 접고, 그냥 공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니까.
그리고 또, 공부를 열심히 하면, 지금의 원통함을 풀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나를 무시했던 이들이 더는 나를 무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가 그들을 무시할 수 있는 자리에 있게 되리라. 공부로써 이 마음을 해소하는 게 정답이고, 그게 내 정해진 본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때부터는 그냥 공부를 했다. 외로워도 슬퍼도 공부를 했다. 외모, 이성친구, 친구에 대한 관심은 모두 뒤로 했다. 그것만이 정답이고, 이전의 내 괴로움은 내가 그 정답에서 벗어나 생긴 일들에 따른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선생님들은 모두 놀랐다. 수업 시간에 떠들고, 까불대던 아이가 하루 아침에 바뀌어 한마디도 없이 열심히 수업을 듣고, 미친 듯이 필기를 하는 내 모습에 아이들도 다 있는 데에서 나를 칭찬했다. 그런 선생님들이 한두분이 아니었다. 뿌듯했다.
중학교 2학년, 3학년. 모두 그렇게 보냈다. 눈에 띄지도 않으니 일진들에게 점차 덜 불려 갔다. 친구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었지만, 역시나 친구는 내게 어려운 존재였다. 중학교 2학년 때쯤, 서로 예쁘다고 외모를 칭찬하더니, 날더러는 정형돈을 닮았다는 둥, 그래도 목소리는 예쁘다는 둥 칭찬아닌 칭찬을 했다. 중학생 여자인 내게, 정형돈을 닮았다니. 어느날은 내 얼굴을 들여다 보다, 얘는 어떻게 하면 예쁠까 하며 비웃었다. 그게 사무치게 자존심이 상해 지금도 이가 바득바득 갈린다. 그때쯔음부터 외모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던 것 같다.
또, 어떤 때는 한명이 없을 때 그 애 뒷담을 그렇게나 까길래 나도 한번 거들었더니, 며칠 뒤 내가 뒷담을 깠다며 그 아이는 나만 따돌렸다. 전화로 미안하다 사과하며 울자, 찌질하게 왜 울고 지랄이냐고, 이런 애들 진짜 싫다고 나를 무시했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때는 그냥 정말 공부만했다. 친구 사귀려는 노력도 더는 하지 않았다. 서러웠던 기억이 몇가지 있는데, 하나는 시험 전날 시험 대형으로 자리 배치를 마쳤는데 내 자리가 너무 문 바로 앞이라 앞에 자리 아이에게 조금 움직여 달라고 부탁한 날이었다. 평소에 가끔 농담도 주고 받고, 친한 친구까지는 아니었어도 괜찮게 지내던 아이였는데 내 부탁에 화가 나서는 내게 화를 냈던 것 같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아이는 친구가 많고, 내게는 단 하나도 없어서 억울한 그 상황에도 그저 억울하기만 할 뿐, 화도 못내고, 혼자 분해하고, 서러워했다.
또 어느날은, 내 앞 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 아이가 내 자존심을 긁었다. 그 아이는 일진 무리에 속해 있던 아이였다. 매일 열심히 화장을 하고, 수업은 하나도 안 듣고, 공부도 안하면서 외모 치장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당시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가 있었다. 사실 그 남자아이는 내가 중학교 1학년때 잠깐 사귀었던 아인데, 사귀기로 해놓고 내가 뭔가 부끄럽기도 하고, 감당이 안되어서 잠수를 타버렸었다. 그런데 이 여자아이가 괜히 내게 말을 걸었다. “xx이가 너랑 1학년떄 사겼었다며? 걔는 자기가 미쳤었던 것 같데. 너랑 왜 사겼지? 이해가 안되네” 가만히 있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1학년 때 사귄 또 다른 약간 노는 남자애도 거론하며 그 애도 나랑 왜 사귄 건지 이해가 안 간다고 이야기하며 공연히 내 속을 긁었다.
나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는 이런 대화와 대우를 견뎌내며, 내가 의지한 건 가족도, 친구도, 선생님도 아닌 단 한가지, 공부였다.
중학교 3학년 떄, 꿈꾸는 다락방을 읽었다. r=vd.
한동안 그 단어들을 가슴에 새기고 다녔다. 여느날처럼 터덜터덜, 외롭게 길을 걸으며 했던 생각이 있다.
‘지금 이 길을 내가 이렇게 걸어도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먼훗날 똑같은 이 길을 내가 걸을 때에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 하고, 아는 체 하리라’
일부러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 길을 걷는 내게,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반기며 부러움과 존경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그렇게 버텼다.
더럽고 치사했던 중학교 3년.
도망치고 싶었고, 학교 생활을 포기하고 싶었고, 때로는 그냥 삶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않고,
더 나은 날을 내 노력으로 어떻게든 만들어 보겠다고, 그 유일한 방법은 공부뿐이라고 되새기며
버텼다.
고등학교 3년도, 일진의 괴롭힘은 없었지만 별반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나의 모습은 하나다. 아무도 없는 텅빈 점심시간의 교실에서 차가운 샌드위치를 손에 들고, 문제집 한 페이지를 펴놓고는 넘기질 못하던 나.
그 곪은 상처를 붙들어 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거의 20년이 되는 시간이 지나 여기까지 왔다.
지금의 나는 스스로가 못미덥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외모나 집안 등 타고나는 건 못 바꿔도, 공부는 내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거였으니까, 대학과 직업, 직장은 내 힘으로 보란듯이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걸로 가져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것만이 스스로를 지킬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그렇게 모든 걸 다 걸고, 외나무 다리를 건너 듯 입시와 취직에 임했던 것 같다.
아직도 그때의 상처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선샹님은 당분간 이 상처들을 더 치유하고, 스스로 위로해 주자고 했다.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자, 선생님은 만약에 내가 아끼는 동생이 학교에서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무슨 말늘 해주고 싶냐고 되물었다.
한참을 고민해도 뭐라고 해야할지 생각이 니지 않았다. 공부를 하면서 그 시간을 버티다 보면, 시간은 반드시 지나가고, 언젠가 그들은 후회하고, 너를 부러워할 날이 올 거라는 말 밖에 해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동생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에 내가 동생에게 위로를 해줄 때를 떠올려 보니 내가 그때 가장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동생에게 가장 와닿길 바랬던 진심어린 말을 두가지였다.
“잘못된 건 그 아이들이야 너에게서 자꾸 잘못을 찾지마”
“이 힘든 일들때문에 네가 정말 힘들었겠다“
아끼는 사람이 힘들어할 때는, 누구 잘못이 더 크고 작고 시시비비를 떠나, 무조건 편들어 주고 싶다. 그리고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공감해 주고 싶다.
아마 그게 내가 간절히 바랬던 것들인 것 같다. 내가 가장 필요했던 것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많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기억을 떠올리니 오늘 또 다시 눈물이 났다.
자칫하면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을만큼 펑펑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아이들은 여전히 더 빛나게도 행복해 보인다. 그게 화가 나고, 억울하다.
그 친구들이 좀, 불행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