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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Oct 18. 2022

어쩌면 네가 언니이지 않을까

치앙마이를 즐기는 색다른 방법 : ATV 체험


어릴 적의 일이다. 서영이가 피 뽑을 일이 있어 엄마와 병원을 가던 날. 교통사고로 인해 피를 뽑아본 경험이 있던 나는, 정말이지 내 생에 이렇게 아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우습겠지만,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가 부러졌던 것보단 그것 때문에 피를 뽑을 때가 더 아팠다고 말하는 나다. 그런 끔찍한 일이 동생에게 벌어진다니, 불쌍하기도 하면서 철이 안 든 나로서는 놀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었다. 어떻게 놀릴까 집에서 동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철없던 언니. 그런데 웬걸, 피 뽑고 돌아온 서영이가 하는 말이 ‘별로 안 아프던데’ 였다는 사실. 게다가 엄마의 말론 울지도 않았다더라. 놀리고 싶던 철없던 언니의 마음이 이렇게 식을 수도 없었더랬다.


같은 엄마 뱃속에서 나왔는데, 이렇게 서로가 다른 건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다. 엄살이란 엄살은 다 부리는 언니와 주사 맞는 게 무섭지 않은 동생. 어렸을 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주사 맞기 직전에 벌벌 떨던 나는, 지금 여기 ATV 위에서도 떨고 있다. 힘이 센 ATV의 모터 진동 탓이라고 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뒤에 앉은 서영이는 평온하다.


사실 ATV 타기는 나의 로망이었다. 비포장도로를 먼지를 뒤집어써가며 오토바이로 달리는 것. 내게 젊은 청춘들의 여행을 떠올리면 가장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거친 길을 신나게 내달리는 모습이란, 나의 심장을 뜨겁고도 설레게 만들기 충분한 액티비티였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온몸이 뜨겁고 땀이 난다. 그렇게 타고 싶어 했으면서 나는 지금 왜 이모양일까.


사실 ATV에 올라탔을 때만 해도 나는 의기양양했다. 청춘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는데, ATV 체험 코스를 타는 순간, 그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본격적인 드라이브에 앞서, ATV 체험 코스를 운전하며 작동법을 익혀야 했는데, 분명 가이드가 시범을 보일 땐 쉬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자신감이 샘솟아, 나름 골프카트도 많이 운전해봤다며, 서영이에게 큰 소리를 치고 출발하던 그 순간이었다. 나의 생각이 180도 바뀌던 것은.


- 스톱 스톱!!!!!!

다급한 안전요원의 외침. 저도 멈추고 싶은데 쉽게 멈춰지지가 않아요. 넘치는 자신감을 무기 삼아, 액셀을 세게 밟고 출발을 해버린 나는,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흔들거리는 ATV의 브레이크를 좀처럼 잡지 못 했고,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무 코 앞에 멈춰 섰다. 다행히 서영이도 나도, 나무도 무사했다.


안내요원이 영어로 뭐라 뭐라 하는데, 그것보단 내 심장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시작 전부터 사고를 낼 뻔하다니. 이것이 바로 내가 몸을 벌벌 떤 이유다. 우리나라도 아니고 다른 나라 와서 다치면 정말 낭팬데, 방금 내가 그 비운의 주인공이 될 뻔했다. 게다가 서영이도 뒤에 타고 있지 않은가. 청춘영화의 주인공은 무슨.


아무튼 이런 이유로, 운전을 포기하고 싶었던 난데, 체험을 신청할 때, 운전자 1명 탑승자 1명으로 신청을 한 터라, 끝까지 내가 운전대를 붙잡아야 한다.


그래, 바퀴가 두 개 달린 것도 아니고 네 개나 달렸는데, 천천히 하면 문제없겠지.

“헬멧 제대로 써라”

서영이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곤, 비장하게 출발을 한다.


같이 온 외국인 언니 두 명과 함께 출발. 가이드와 외국 언니 둘, 그리고 우리. 이렇게 다섯 명이 줄지어 드라이브에 나섰다. 근데 점점 언니들이 멀어진다. 곧 있으면 눈앞에서 사라질 기세다. 때마침 서영이도 몇 마디 보탠다.


“언니 좀 빨리 가봐. 여기는 안전하다. 그냥 도로잖아”

“흐어어어 서영아,, 나도 빨리 가고 싶다. 근데 아까 혼나서 무서워”

“언니 그러다 앞팀 놓치겠다. 그게 더 문제임. 아무도 없으니깐 좀 달려봐”

“알겠다 한 번 해볼게”


여간해선 서영이가 나한테 잔소리하지 않는데, 서영이가 잔소리할 정도면 내가 많이 느리긴 한가보다. 그런데 어떡해! 아까 사고 낼 뻔해서 나는 무섭다고. 서영이는 아무도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우리 옆에는 쌩쌩 달리는 차들이 지나다닌다. 너 눈에는 안 보이는 거니? 그렇지만 서영이 말대로 앞팀을 놓쳐 도로 위의 미아가 되느니, 조금 속도를 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 팀 언니들만 따라잡아야 한다는 필사적인 마음으로 운전을 하다 보니, 어느새 첫 번째 포토스폿에 도착했다. 내리고 보니 손에 땀이 흥건하다. 긴장을 잔뜩 하고 운전을 한 탓이다. 내리자마자 서영이에게 바로 찡찡대는 여전히 철이 없는 언니.


“서영아 언니 손 봐. 완전 빨갛제. 너무 아프다 진짜 너무 꽉 잡았음. 너무 긴장해서 목도 아프다 앞으로 어떻게 더 가노. 나 운전할 자신이 없다.”

“괜찮다 언니 그래도 잘했다.”


서영이가 달래줬지만, 나에게는 부족한 리액션이었고 엄살쟁이 언니는 또 말을 한다.

“아니 언니 진짜 힘들었다. 니 목숨을 위해서 내가 열심히 달렸다”


그러더니 서영이가 피식 웃으며 자신의 새빨간 종아리를 보여준다.


“언니 나는 엔진이 딱 종아리 위치에 있어서 완전 뜨거웠다. 근데 언니한테 말 안 함. 말하면 언니 또 신경 쓴다고 정신없어질 것 같아서”


와 역시. 뭐든지 잘 참는 서영이다. 언니를 위해서 고통을 참다니.. 나라면 분명 뒤에서 찡찡거렸을 게 뻔하다. 배려라곤 못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언니를 배려하다니. 새삼 감격스럽다. 그리고 놀라울 뿐이다. 사실 알고 보면 이렇게 놀랍도록 묵묵한 모습을 보이는 서영이가 언니가 아닐까.


“언니 나도 이렇게 뜨거운 거 참았으니깐, 언니도 잘 참고 운전해봐. 하다 보면 무뎌진다“


의젓한 ‘서영이 언니‘의 말을 위로 삼아, 최종 목적지로 향하기로 한다. 아까까지는 서영이의 말이 잔소리 같았는데, 뜨거운 엔진 열을 참고 여기까지 온 서영이의 속사정을 듣고 나니, 서영이의 말이 응원의 말로 들린다. 그래 하다 보면 무뎌지겠지. 마음을 가다듬고 청춘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남기러 출발.  

 

사진으로 남길 우리의 청춘영화 한 장면은 꽤 긴장되어있고 어딘가 고장 난 자세겠지만, 그 순간 내가 서영이를 의지했다는 것은 확실히 남아있을 테다.   

긴장한 모습을 감추기엔 선글라스가 제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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