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과 반려동물

by 난티

90년대는, 지금과 달리 애완동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친구 중에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는 거의 없었고, 거리에서 애완동물을 마주하는 경우도 아주 흔하지는 않았다. 명절에 시골 할머니 댁에 갔을 때 정도만, (개집에 있는) 개를 가까이 봤을 뿐이다.


동물과 가깝게 지내지 않은 탓인지,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갑자기 공격성을 보이거나 아무 곳에서나 볼 일을 볼 수 있는 동물을 좋아할 이유가 없었다. 당연히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생각은 가져본 적이 없다. 심지어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에도 관심이 없었다. 병아리가 크면, 무시무시한 닭이 되는데, 그것을 왜 키운다는 말인가.


90년대와 달리, 지금은 거리에서 쉽게 애완동물, 아니 반려동물을 볼 수 있다. 단순히 귀여워서 키우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의지하고 교감하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이다.


최근 여러 통계자료를 종합해보면, 최소 300만에서 최대 600만 이상의 가구가 동물을 키우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소 15%, 최대 20~30% 이상의 가구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것이다. 자연스레 과거에 없던 반려동물 상품과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고, 미디어에도 반려동물 관련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자꾸 보다 보니 마음이 가는 걸까? 언젠가부터 산책 나온 반려견에 눈길이 가고,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주인만 바라보는 눈빛, 주위를 돌아보는 호기심, 해맑게 뛰어다니는 발걸음, 자연의 냄새를 맡고 흔적을 남기려는 몸짓까지. 그 꾸밈없고 순수한 모습에, 동물을 싫어했던 마음이 어느새 해제되었다.


마음이 바뀐 더 근본적인 이유는, 동물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은 높아졌기 때문이다. 동물이 화를 내고, 도망가고, 아무 곳에서나 볼일을 보는 등의 돌발행위에는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연스레 동물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할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반려동물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한 생명체를 키운다는, 그 엄청난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저, 지나가는 댕댕이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고, 감사하다.


“안녕? 넌 네가 귀여운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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