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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로드 Oct 19. 2023

부모, 가족과 절연 이후 얻은 것들


한 달 넘게 친정과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단톡방에서 뭔가 얘기가 오가도 열어보지 않으며, 한 번씩 '이래도 되나'싶은 생각이 떠오를 때에도 막상 또 그 목소리를 듣게 되면, 내 안에서 일어날 격한 감정들을 알기에 그냥 '이대로가 좋다.' 여기고 있다.


엄마의 시선, '쟤는 문제다.'라는 그 오래된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나를 '문제아', '걱정스러운 존재'라고 보는 그 시선을 벗어나게 되면서 미간 사이에 고질적으로 올라오던 여드름이 없어졌다.


여드름 등 피부질환은 무의식적으로 보면 '수치심'이라는 감정이라던데 그 감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된 것이다.


아빠의 문자를 받고 가위에 눌린 적이 있다. 불과 몇 달 전이다. 한 번씩 연락 올 때마다 불편했는데, 더 이상 그런 불편한 상황이 없다.


언니들은 때로 시누이들처럼 느껴졌다. 지나치게 간섭하고 강요하고 통제하는 느낌.  통제가 필요했던 미성숙한 나도 있었으니, 의존성 성격장애라 여겨진 내 탓도 있다.(그걸 더 파고들면 어린 시절 애정결핍이니 내 탓만 하기는 어렵다.) 몇 년 전에 언니에게서 느꼈던 '도대체 넌 뭐야?' 싶은 눈빛과 표정있었다. 어릴 때부터 가족문화가 그러했듯,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골든 차일드였던 둘째 언니는 자기의 얘기들을 하고, 그에 맞장구 쳐주고, 인정해 주는 패턴이 있었는데, 이제는  패턴에서 벗어났다.  번씩 전화해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거나 힘든 얘기들을 털어놓을 때가 있었는데, 이제 뜬금없이 걸려오는 그런 전화에 응답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 나를 생각해서 희생했다던 언니들의 행동이 가스라이팅이라는 걸 인정하고 난  후,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더불어 한 번씩 "나한테 가져간 다 갚아"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 마음에 늘 빚진 자의 죄책감이 있었는데, 마음이 떠오를 때면, 마음속으로 '그러면 언니들은 내 21살을 돌려놓으라'며 외친다. '언니가 편입하라고 꼬시지만 않았어도 이단교회의  가스라이팅 이후, 그 혼란스러운 순간에 내 진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그토록 하고 싶던 수능 공부를 했을 거라며, '나라고 장학생으로 못 들어갔겠느냐'며 나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 자아가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다. 책감과 자괴감, 자책하는 마음들로 힘들었던 시간들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 비치면, "네 기억이 잘 못된 거야.", "너 너무 예민해", "내가 언제 그랬어? 네가 그랬기 때문이야."라는 식의 가스라이팅 화법으로 응답하던 언니들이었다. 그에 합세하여 엄마는 목소리 큰 사람말만 옳다고 믿는지 눈총을 주며 고개를 저어댔다. 4명이 합세하여 나를 몰아세웠다. 그게 20대부터 지속되었으니 거의 10년인가? 오은영 박사님 방송에서 힘의 불균형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내가 그 정도로 힘든지조차 스스로도 정확히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자책감이 없어지면서 날이 갈수록 얼굴에 붉은기가 사라진다.


늘 친정이 불편해 이민을 가고 싶었는데, 이 정도 정서적 거리면 한국도 괜찮은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여태 그다지 행복하지 않게 살아온 이곳을 벗어나고 싶기는 하다.


원가정에서 보고 배운 버릇도 없어졌다. 예를 들자면, 현재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려고 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남편은 장거리 출장도 많다. 그래도 여태까지 그럭저럭 다닐만하다고 했으나 최근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2 주째 지나치게 업무량이 많고, 야근이 잦다. 간수치도 높 나왔다. 다가 좀 편한 곳으로 옮기려는 그를 보며 안타까우면서도 걱정되는 마음이 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불안하고, 감정이 격해진 엄마처럼 땍땍거리는 말투로 "언제는 ~~ 지 않았느냐?"며 따지는 투로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 수도 있다. 배려와 이해가 없는 그 말투는 나를 지치게 했으나, 더 힘든 건 내가 나도 모르게 그러고 있는 거였다. 그러나 지금 나는 "도움이 못돼 미안하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남편의 배려 섞인 말투를 배우고 있는 거 같다. 걱정이 되지만 잘할 거라는 믿음도 있다. 변해가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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