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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olli Aug 11. 2022

서른아홉, 퇴사하기 딱 좋은 나이


결정을 하고 나니 모든 것이 쉬웠다. 사직서를 내고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캐리어 하나에 가볍게 짐을 챙겼다. 마음을 정한 지 단 일주일 만에 나는 중국 서부의 어느 작은 동네로 향하는 항공기를 타고 있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39년간 살았던 한국을 떠나 이제부터는 낯선 곳에서 생활해보기로 했다.


 왜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 이 모든 것이 회사 때문이었다.


라고 이야기하기에 다니던 회사는  안정적이었다. 연봉도 복지도 동종업계에 비해서 훌륭했고, 회사는 사업 다각화, 성장 모멘텀 등의 이슈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곳이었다.나는 ‘멀쩡한 회사때려치운 이해할  없는 사람이 되었고, 스스로 또한  결정을 주변에 확신을 가지고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 그렇다면 사직서를 던지기 한 달 전에 다녀온 여행 때문이었을까?


여행을 이유로 들기에 나는 너무 자주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었다. 산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떠났다금요일 퇴근 후에는 황급히 집으로 돌아와 서류 가방을 던져 놓고 배낭을 메고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주로 지리산에서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늦은 저녁에 돌아와 등산복을 벗으며, 내일 입어야 하는 사무용 정장과 구두를 걱정했다.


일 년에 두 번 있는 정기 휴가는 설날과 추석을 연결해서 무조건 해외로 나갔다(이런 식으로 휴가를 쓰는 나를 회사에서는 달갑게 느끼지 않았을 것. 생각해보면 사직서를 낼 때까지 잘리지 않은 것이 용하다).

여행이 곧 일상과도 같은 삶이었으며, 이번 여행이 기존의 여행과 다른 특이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정착 일년차, 윈난성을 구석구석 다닐 무렵. 본인 몸뚱이만한 배낭을 메고도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 사실 이 모든 것은 나이 때문이었다.


퇴사할 당시 내 나이는 서른아홉. 마흔이 되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숫자는 안정감이 느껴졌고, 이제 비로소 뭔가를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레었다.

다만 ‘이대로’ 마흔 살을 맞는다는 것이 두려웠다. 불혹의 나이가 되면 흔들림 없이 살던 대로 계속 살게 될 것 같아서 마흔이 되기 전에 크게 나를 한번 흔들어보고 싶었다.


머리로 고민하고 이성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니 답이 나오지 않았다. 퇴직금으로 치킨집을 열기에 아직은(?) 나이가 어린것 같고, 무작정 세계 여행을 떠나볼까? 까지 생각이 닿으며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던 차에 다시 다가온 휴가 시즌.


당시 나는 매우 기특하게도 적립률이 굉장히 좋은(연회비가 굉장히 비싼) 마일리지 카드를 가지고 있었고, 그동안 이틀이 멀다 하고 마일리지를 부지런히 적립했다(**주점, @@호프 등이 주된 마일리지 적립처였다).

그리고 항공사의 마일리지 차감 포인트를 확인해본 결과 ‘중국 서부’ 지역이 가장 합리적인 거리라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그간 같이 술을 마셔준 친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끼며 3만 마일리지로 갈 수 있는 한국에서 가장 먼 곳, 중국 윈난성으로 휴가를 떠났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갈 무렵 깨닫게 되었다. 본디 인생의 크고 중요한 변화는 머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점을. 그동안 힘들게 고민하던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는 느낌,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사직서는 이미 쓰이고 있었다.


내가 결정한 것은 '이민'이었지만 당시 나는 그 단어가 '이직' 정도의 무게, 그러니까 감당하기 그리 어렵지 않고 서른아홉이 경험하기에 딱 좋은 난이도의 테스크로 느껴졌다.

게다가 마치 첫 연애가 그러하듯 다소 무모하고 맹목적이었다. 남들은 한국에서 ‘사람 남자’를 찾을 때, 나는 머나먼 중국에서 ‘지역 리장’과 사랑에 빠졌고, 내 눈꺼풀에는 콩깍지가 씌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고, 이곳이 바로 내가 39년간 찾아 헤매던 샹그릴라(이상향)이었다.


그렇게 삼십 대 후반의 끓는 마음 하나로 찾아온 이곳은 차마고도 ‘리장(丽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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