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리장’은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곳이다. 세계 최초의 무역로인 차마고도의 기착지이자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호도협 트레킹 코스가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리장 고성이 있는 도시.
중국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여행지 10위 안에 항상 드는 곳이고, 매년 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오는 곳이다. 여행지로서 손색이 없는 곳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 살기로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동네 뒷산 때문이다
해발 5,596m 옥룡설산(玉龙雪山), 옥빛 용이 날아가는 모습을 닮은 설산이라…
한참을 바라보다가 옥룡설산에 오른 이후 갑자기 든 생각, 여행 와서 한번 오르고 사진으로 담아 가는 그런 곳이 아니라 이 산이 '우리 동네' 뒷산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도 모습도 심지어 숫자까지도 왠지 마음에 들었다. 저 산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내 안으로 들어왔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산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특히 암벽 등반에 입문한 이후로는 매주 북한산과 도봉산을 찾곤 했다. 외국 산악인들이 부러워한다는 도시 서울.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기도 하지만 산에 빠진 이들에게는 지하철 타고 갈 수 있는 산이 많아서 더 신나는 도시이기도 했다.
그런데 리장에 와보니 아니 이런!
여기는 무려 버스 타고 '설산'에 갈 수 있는 동네였던 것이다. 이 도시가 정말 신기했다.
건축물 고도 제한이 있는 리장에서는 설산의 조망을 가리는 높은 건물이 없기 때문에 고개만 돌리면 항상 산을 볼 수 있다. 시내 어디서든 돌아보면 성산(圣山, 옥룡설산은 현지 소수민족인 나시족의 성산이다)이 든든히 뒤를 지켜주고 있는 동네.
아침에 산책 나가다가, 시장에서 고기 값을 흥정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이른 저녁 길 위에서 꼬치에 맥주를 마시다가 무심코 쳐다보면 늘 설산이 버티고 있다.
날씨는 또 어떠한가. 리장의 기후를 물으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에어컨과 난방시설이 없는 동네라고. 따뜻한 실내에서 살아온 한국 사람들은 겨울을 지내려면 히터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웬만해서는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 곳이라서, 원한다면 온도를 높이거나 낮추기 위해 인공의 기술을 쓰지 않고 지낼 수 있다. (현지인들은 겨울에 작은 화로를 놓고 불을 쬐기도 한다). 즉, 일년 내내 따뜻하고 일년 내내 시원하다.
한편 리장 일기 예보를 보면 ‘구름 많음’인 경우가 많은데, '구름 많음'이란 한국의 일기예보에서는 ‘흐림’을 뜻하지만, 리장에서는 ‘맑은 하늘에 흰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진 환상적인 날씨’라는 뜻이다. 리장에는 공장 등의 산업시설이 없기 때문에 항상 공기가 맑고, 구름의 남쪽이라는 운남(윈난, 云南) 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의 사시사철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만날 수 있다.
또 리장에서 차로 두 시간여만 달리면 호랑이가 뛰어넘은 협곡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호도협(虎跳峡)에 도착한다. 전에 BBC에서 세계 3대 트레킹 코스의 하나로 소개되었다고 하여 지금도 호도협 여행 상품에는 십 년 넘게 그 타이틀이 큼지막하게 들어가 있다. 하지만 굳이 그런 미디어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호도협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곳이다.
그밖에도 하바설산, 메리설산, 노군산 등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곳이 리장 주변에 가득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리장은 차마고도 중에서도 험하기로 소문난 전장공로(滇藏公路)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말에 차를 싣고 해발 4천-5천 미터를 넘나들며 티베트로 오가던 마방들의 길, 그리고 온 마음을 담아 경전을 외우며 성산의 코라를 돌던 티베트인들의 길인 것이다.
처음 리장에 정착한 이후 내가 한 일은 산멍, 구름멍이었다. 이는 불멍, 물멍만큼이나 매력적이다.
특히 설산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갑자기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낼 때, 그 주변으로 파란 하늘에 펼쳐진 구름이 바람을 따라 조금씩 움직이며 다양한 모습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보고 있을 때, 나 리장 주민이라고 동네방네 크게 자랑하고 싶은 으쓱함과 자부심도 느껴진다 (하지만 곁에 있는 모두가 리장 주민이라서 실제로 자랑은 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어디에서 살아가든 그 속을 들여다보면 크게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리장에서의 삶은 어떠한지, 왜 하필 리장에서 살고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처음으로 하고 싶은 말은 바로
동네 뒷산이 5,596m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