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또래 친구들은 아마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 가정에서는 가장으로, 직장에서는 선배와 후배를 잇는 변화의 가교로 여러 고민이 많을 것이다. 특히 나와 같은 1990년대 학번 출신은 세계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맛본 세대로서 한때는 X세대라는 왠지 모를 우쭐함에 신세대로 살았다. 연이은 IMF 사태, 2002년 웓드컵 이후 금
융위기를 겪으며 참으로 다이내믹한 환경을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삶에 대한 강인함이 있으면서 왠지 모를 외로움과 서러움이 가슴 깊이 팬 세대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나의 지난 인생도 다 이런 외부적 환경을 헤쳐 나온 흔적들이다. IMF 전후의 사회생활, 2000년 밀레니엄 시대에 시작한 서울 생활, 금융위기 가운데 영업의 한복판에서 살아남으면서 참으로 많은 내성이 생겼다. 그 내성은 살아남기, 생존의 의미뿐만 아니라 어떠한 위기나 어려움도 이겨 낼 수 있을 거라는 용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40대 초반에 나는 내 인생의 변화를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아무것도 없이 서울로 와서 일궈 낸 삶을 돌아보니 ‘또다시 변화하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다’는 걸 깨치게 되었다. 당시 근무하던 회사(대우자동차판매)가 부도나는 사태를 겪으면서 영원한 회사도, 영원한 뒷배도 없는 차가운 현실을 맛보았다. ‘더는 정년으로 퇴임하
는 회사란 없다’는 냉혹한 현실 앞에 섰다. 지금껏 열정과 충성으로 일관된 직장생활이 인생의 정답이 아닌 현실 앞에서 무척이나 괴롭고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왜 회사는 부도가 나고 내 삶까지도 피폐해져야 하는가. 왜 경영자의 잘못으로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피해를 봐야 하는
지 그때는 몰랐다. 결국 돌아오는 것은 ‘너무 열심히 일만 했고 내 주위의 변화에 너무 둔했다’는 자책이었다.어찌 보면 나는 너무 꽃길만 걸어왔는지도 모른다. 대기업에만 다니다 보니 항상 주는 혜택이 당연시 여겨졌고 온실에서만 자란 화초처럼 그렇게 스스로 외부 노출에 금방 시들어지는 꽃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당시 내게 필요한 것은 변화였고, 그 변화를 위해 나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외부 요인으로 비참하게 회사를 그
만두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준비가 필요했다.
당시 ‘경영지도사’라는 자격증이 있었다. 업체로 가는 길에 걸려 있던 현수막에서 ‘경영컨설턴트’라는 매력적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쉽게 말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게 여러 가지 경영 솔루션을 제공하고 재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국가 자격증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오랜 영업으로 다
져진 마인드와 언변은 남들에게 뒤질 게 없다고 생각한 나에게 매력적인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자격증을 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지면서 알아보았다. 자격증의 실체에 접근하면서 나는 큰 도전에 직면했다. 바로 1차 시험과 2차 논술시험까지 있는 시험, 즉 만만한 시험이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 경영학이라는 과목은 내가 처음 접해 보는 분야여서 남보다 배 이상 노력해야 했다. 마케팅관리론, 시장조사론, 소비자행동 총 3과목 15문제를 푸는 데 주어진 시간 안에 A4 용지로 최소 10장씩을 써내야 하는, 대단한 내공이 필요한 시험이었다. 마침 사당역 근처 OO아카데미라는 학원에서 주말에 이론수업과 기출문제 분석 등을 전문적으로 가르쳐 준다고 해서 주저 없이 등록했다. 처음 그 학원을 찾아갔을 때 놀란 것은 수강생이 10명밖에 안 된다는 것과 내가 제일 젊다는 것이었다. 자격증의 특성상 대부분 직장생활 20년 이상 한 선배이거나 현역 컨설턴트가 대부분이었고, 은행·증권회사·세무사 등 전문 분야의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고수들까지 있었다. 하나를 얻으려 하면 하나를 잃을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경영지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거의 5개월간 나의 일주일에는 일요일이 없었다.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저녁 6시까지 이어지는 긴 강의를 들으며 경영학을 맛보았다. 공대 출신인 내가 경영 마인드에 심취해 가는 게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 1차 시험을 가까스로 통과했다. 법령 관련 문제로 전 과목이 객관식으로 출제되는데, 운전면허시험처럼 7일 정도 벼락치기를 해서 통과했던 걸로 기억한다. 2차 논술시험을 대비해서는 휴가까지 반납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지금도 느끼지만 무엇인가에 심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내 속에 있는 공부 DNA가 아직 녹슬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내가 원래부터 공부를 좋아했는지는 모르지만 경영학 공부는 정말 재미있었다. 실제 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마케팅 이론들, 영업 현장에서 와닿는 소비자의 행동에 대한 분석들, 시장조사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할수 있는지 등 하나하나의 과목들이 회사 정책과 전략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다이내믹했다. 물론 그런 이론적 바탕을 경영자나 실무자들이 현실에 맞춰 잘 조율해 나간다면 좋은 제품, 좋은 회사를 만들 수 있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너무 틀에 박혀 있거나 프로세스와 룰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나름 최선을 다하고 치른 2차 논술시험에서는 낙방했다. 총 3과목 40점 이상, 평균 60점 이상 절대평가로 뽑는다고 하는데 한 해에 평균 20퍼센트만 합격하는 시험이다 보니 상대평가 성격이 강했다. 논술은 심사관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부분 점수가 주어지기 때문에 얼마나 정확한 논리로 서술하는가가 관건이었다. 참으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내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1년을 재수해서 다음 해인 2013년에 합격을 했다. 한 해에 한 번 치르는 시험이어서 끈기가 조금 필요하다.
시험에 합격하고 목표했던 자격증을 따고 나니 조금은 허탈하면서도 다음 단계에 대한 도전이 생겼다. 그때 인연으로 만난 스승님(OO아카데미의 강사)의 추천으로 대학원에 경영컨설팅학과가 개설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그런 과정을 이수한 인재들이 경영컨설팅의 주역이 될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내친김에 대
학원까지 가 보자 싶어서 그해 가을 한양대학교 일반대학원의 경영컨설팅학과에 지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