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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한 Dec 28. 2022

45일 프로젝트Ⅰ

차갑지만 치열했던 영업 이야기

영업하면서 탁월한 개인 능력으로 성과를 내는 것 이상 짜릿하고 즐거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극한의 시간이나 공간속에서 해내야 하는 미션과 같은 절박함과의 다툼을 경험했다면 말이 달라진다. 내가 특판팀에서 해 왔던 이십여 년간의 활동중에서 이런 다이내믹하고 절박한 경험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아마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하거나 실행해야 하는 단계에서 사례가 없거나 경험이 없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일을 진행해야 할 지 막막한 처지에 놓인 영업맨에게는 ‘어쩌면 나한테 꼭 필요한 얘기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앞서 언급한 2015년 한국국토정보공사의 907대 업무용 차량 입찰 에 낙찰된 후 계약부터 납품까지 있었던 다이내믹한 이야기를 써 볼까 한다. 2015년 7월, 근 1년여 간에 걸친 기나긴 노력을 바탕으 로 낙찰된 기쁨도 잠시였다. 45일 이내에 계약부터 해당 지사로 납차까지 완료하지 않으면 지체보상금(차량이 제조사의 사정이나 형편으로 납차 시기가 지연될 때 물리는 일종의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순간 ‘멘붕’이 왔다. 자동차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차량을 신규 생산하는 단계가 생산 오더부터 자재 준비, 시퀀스 배정(생산계획), 생산 공정(프레스부터 조립, 검사)까지 최소 4~5주가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45일이라는 시간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조건이었다. 특히나 그 당시에 우리 회사에서는 해당 차량을 만들기 위해서 특별히 디콘텐츠(옵션을 줄여  단가를 낮추는 것)까지 요청한 사양이라 생산부터 물류, 품질, 부품  파트 어느 한 곳에서라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더더욱  불가능한 시간이었다.  낙찰한 기쁨도 잠시, 바로 다음 날 관련 부서 소집을 요청했다. 파트별 실무 담당부터 해당 팀장까지 30여 분간 진행할 프레젠테 이션을 준비하면서 손에 흥건하게 땀이 찼다. 이름하여 ‘45일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긴장감 있게 회의를 진행해 나가면서 안 되는 게 무엇인지부터 짚어 갔다. 긴박한 일일수록 놓치는 부분이 생 길 수 있기에 항상 리스크가 무엇인지부터 짚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을 먼저 해결하면 다른 일은 쉽게 진행할 수 있다고 믿었다. 먼저 생산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시트벨트 장치의 자재 부족’이었다. 베트남에서 들어오는 부품인데, 생산부장님은 긴급하게 요청해서 들여와도 최소 일주일이 소요된다고 했다. 요새 자동차부품은 저단가를 추구하느라 글로벌 소싱으로 핵심 부품만 우리나라에서 생산하고, 공용 부품은 대부분 단가가 낮은 동남아나 멕시코 등에서 생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 보니 작은 부품 하나가 결품이 되면 전체 라인이 설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부품 결품으로 전 세계 자동차회사에서 공장이 멈추는 사례가 이러한 예이다. 베트남에서 들어오는 부품을 비행기로 배송하면 1~2일 단축할 수 있다는 답을 얻었고, 품질 검사를 우선으로 진행하면 오더 투입부터 생산까지 24일 만에 가능하다고 했다. 907대 생산이 24일 만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제 2차로 완성 이후부터 물류, 후속 작업, 배송까지의 스케쥴을 짜야 한다. 우리 같은 B2B(Business To Business) 업무용 차량인 경우 대부분 장기 렌털이다. 각 기업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의 차량 또한 장기 렌털을 이용해 비용처리와 관리효율 면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기에 더더욱 프로세스나 절차가 많아진다. 고객은 내가 주문한 차량이 제조사에서 생산해서 렌트사에 넘어가서 차량 등록하고 액세서리 작업을 하고 출고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 과정에서 영업사원들은 애지중지 최선을 다하고 아무 문제 없기를 바란다는 걸 알지 못한다. 차량 결함이나 배송사고, 보관 중 문제 등 과정상에 도사리고 있는 변수는 참으로 많기  때문이다. 나머지 20일 안에 완벽한 배차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해당 렌트사 담당과 배송, 후속 작업 업체 모두에게 소집을 요청했다. 해당 렌트사 사무소에 제조사인 우리(담당인 나와 AS팀장)와 렌트사 담당, 배차업체 소장, 후속 작업 업체(선팅업체, 특장업체, 데칼업체,  등록업체)가 다 모이니 20명이 훌쩍 넘었다. 렌트사나 여타 업체에서도 907대를 일괄 처리해 보기는 처음이라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내가 먼저 서두를 꺼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20일입니다. 20일 안에 전국 30여 지사로 배송해야 합니다. 한 치도 실수나 오차가 있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베테랑입니다. 완벽하게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저희가 무엇을 도와 드려야 하는지, 필요한 사항이 무엇인지를 허심 탄회하게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석자들의 얼굴에서는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싶은 표정이 역력했다. 베테랑 배송업체 사장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뭐 못 할 거  뭐 있습니까, 한번 해 보입시다.” 정말 힘이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날씨였다. 7월 이후라 작업자들은 무더위와 싸워야 하고 혹여나 태풍이라도 온다면 더더욱 낭패였다. “자, 그러면 저희가 생산하는 24일 동안 각자 업체에서 무엇을 준비해 주셔야 하는지 말씀해 보시죠.” 배송업체는 907대를  배송하기 위한 캐리어(보통 7~8대를 한 차에 싣고 이동하는 차량)를 최대한 확보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하루에 50대씩은 배송해야 20일 안에 처리한다. 그러려면 최소 하루에 캐리어 8대 이상이 하치장을 들어갔다 나왔다 해야 한다. 해당 지사의 지역별로 최소 2일 내 배차를 완료한다고 해도 16대가 기본으로 돌아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배송업체에서 최대한 확보하기로 약속했다. 특장업체는 907대 분의 특장장치(트렁크 부분에 장비를 패킹하 는 장치를 별도 장착)를 차량 완성 전에 만들어야 한다. 1일 최대로 만들 수 있는 생산능력이 3~4대 수준이니, 지금부터 꼬박 한 달  동안 만들어야 한다. 금형 뜨고 만들고 시작품 보고 최종 틀까지 만드는 데 7일이 소요된다. 어쩔 수 없이 배송하면서도 만들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특장업체 사장님의 손에 달렸으니 당부와 수고를 요청드렸다. 데칼(차량 외부에 붙이는 회사 또는 제품 CI 스티커)과 선팅은 차량이 완성되고 하치장에 오는 순간부터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데칼과 선팅이 완료되어야 배송할 수 있다는 말이다. 첩첩산중이었다. 1대당 2인 1조로 선팅하고, 데칼 작업에 최소 20분 잡고, 하루 10시간 작업하면 30대가 가능했다. 5개 조로 구성해서 작업한다면 150대가 가능하니 6~7일이면 된다는 물리적인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사람인지라 쉬어야 하고 폭염이라는 변수가 있다. 그들에게도 당부했다. “최대한 여러분이 잘해 주셔야 만 배송이 빨라집니다.” 모두가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등록업체는 차량 907대를 출고한 후 관련 서류를 챙겨서 관할 등록사업소에서 번호판을 인수받아 차량이 있는 하치장으로 번호판을 배송해서 부착하는 일을 담당하게 된다. 전체 번호판이 나오는 데만 최소 2일은 소요된다고 한다. 1대당 부착하는데 아무리 숙련된 작업자라도 15분 이상 소요된다. 작업자 총 10명을 투입해 마찬가지로 7일 이내에 마무리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드디어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차량이 생산되기까지 24일 동안 나는 하나라도 변수가 생기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업체별로 준비상황을 점검하면서 매일매일 스케줄을 수정하고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또 지면상으로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카운트다운을 하면서 그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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