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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한 Dec 28. 2022

영업의 절반은 얼굴이 한다

차갑지만 치열했던 영업 이야기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영업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만 봐도 얼마만큼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관상가도 아니고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내 경험에 비춰 보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세상만사가 마음먹기에 달렸고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에 따라서 그 결과가 천지차이가 나는 것을 종종 본다. 특판팀에서 나의 첫 FLEET업체는 지금은 통합되어 사라진  KTF라는 이동통신사였다. 2005년 국내 이동통신을 양분해 왔던  SK텔레콤과 KTF는 자사의 업무용 차량을 직접 구매해서 사용하다가 비용 절감과 회계처리 편의성 때문에 장기 렌터카로 전환하고 있었다. 우리 팀은 그해에 새로운 시장진입 목표로 그 회사들에 우리 회사 차량을 넣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양사는 전국에 기지국을 확대 설치하면서 설치와 유지보수, 그리고 전국에 지역본부와 판매지점, 유지보수 계열사 등을 많이 확장할 때였다. 그런 업무를 하려면 차량이 많이 필요했고, 그런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렌터카로 전환하려는 것이었다. 지역 특성에 따라 광역시까지는 승용 차량, 산간이나 농어촌은 SUV 차량을 선정해 운영할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전국의 지역본부와 지역 유지보수업체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과 회사 홈페이지가 발달해서 정보를 찾아내는 것이 간편하지만 당시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팀 회의에서 나는 KTF를 담당하게 되었고(순전히 그 당시  KTF 이동전화번호를 사용한다는 이유였다) KTF 본사의 관리 담당을 무작정 찾아갔다. 몇 번 만나면서 KTF 지역본부 구매담당자의 인적사항을 어렵게 알게 되었고 곧바로 전국 출장 준비를 했다. 지금은 전국 어디든 KTX가 달려가고 내비게이션이 상세하고 정확하게 길을 찾아주는 시대이지만, 그때는 어디를 찾아가려면 두툼한 지도책을 펼쳐 놓고 어디부터 먼저 찾아갈지를 미리 계획해야 하는 시대였다. 지금 생각하면 전국 광역시를 다 돌고 오는 데 최소 3박 4일이 소요되었다. 혼자서 운전하고 지도도 보면서 다 찾아다녔는데, 아무리 체력이 지금보다 좋았다고 해도 참 용했던  것 같다. 당시 내 파트너를 대동하고 출장길에 오르면서 앞으로 어떤 힘든 여정이 내 앞을 펼쳐질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도시라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부산과 지금 살고 있는 서울밖에 몰랐다. 그런 내가 대전, 대구, 광주, 전주, 부산, 울산, 청주, 충주,  원주 등 수많은 도시를 다니면서 흥미진진하게 영업을 펼쳤으니  당시 그 일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이런 도시들을 분기별로 최소 한 번씩, 일 년에 네 번 이상 4년간을 돌아다녔다. 전국을 열여섯 번 넘게 다닌 셈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광주, 대구, 전주, 대전, 청주 등이 친근해졌고, 어디를 찾아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 내 머릿속에 지도가 다 입력되다시피 했다. 기억나는 것은 현지의 KTF 지역본부를 통해서 최소 두 곳 이상의 해당 지역 유지보수업체를 소개받아 찾아가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신규 업체를 뚫는 성취감과 재미를 만끽했다. 새로운 업체를 찾아다니면서도 내 얼굴에서 피로함이나 힘듦이 보이진 않았던 것 같다. 당시 만났던 업체 분들이 친해지고 난 뒤에 말해 주었는 데, 처음 사무실에 찾아왔던 내 모습이 무척 신나 보였고 왠지 자신감에 차 있었다고 했다. 보통 영업사원들처럼 찌들고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보석을 찾아낸 것 같이 눈이 반짝거리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KTF 유지보수업체를 알고 직접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거의 일 년여간에 걸친 출장을 다니면서 나는 KTF맵(전국 지역 본부와 1차·2차 유지보수업체까지 포함한 방대한 리스트)을 완 성할 수 있었다. 물론 전국의 그 업체에 우리 회사 차량을 넣기까지 도미노 현상처럼 2~3년이 소요됐지만 정말 보람찬 기억이었다. 30대 중반, 아마 인생에서 가장 자신감이 충만한 나이였던 그때의 나는 영업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업체의 담당자들이  나와 거래할 수 있었던 계기는 말투는 투박해도 열정이 담긴 인사, 호기심과 기대를 가득 담고 웃으며 찾아오던 내 얼굴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세월이 흘러서 그 회사들도 사라지고 당시의 담당자분들도 대부분 잊혔지만 나에겐 소중한 한 분 한 분이었고 고객이었다. 그들을 통해서 인간관계의 훈훈한 정과 고객을 넘어서는 좋은 친구와 선후배로서의 추억을 얻었다. KTF라는 거대 시장을 개척해 보았던 경험은 자산이 되어 이후 신규 시장 개척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 같다.

영업은 발로 뛰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발 못지않게 중요한 게 얼굴이다. 새로운 일은 두렵고 힘들지만 얼굴에서 나오는 열정과 기대가 이미 그 일의 반을 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호기심과 자신감이 서려 있는 얼굴, 어쩌면 고객은 그런 영업맨에게 더 비싸고 더 부족한 제품일지라도 왠지 사고 싶거나 팔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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