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론(利己論) - Ch3. 해체, 그리고 脈!
감정정복. 이라는 단어는 왜 사용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감정을 이겨내면 정복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감정이 정화되는 것 아니냐고.
맞다.
그런데....
감정은....
내가 정복할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그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감정없는 동물은 없으며 특히 인간에게 감정은 참으로 유익하기만 할뿐이다. 감정은 24시간 매순간 데리고 살아야만 하기에 감정과 친교를 맺는 것이 중요하지 정복해서 얘를 짓눌러 없애고 싶은 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되고 그럴 수도 없는 존재다.
가령, 인간의 감정을 긍정정서와 부정정서로 이등분해볼 때, 긍정정서를 기쁨이라 부정정서를 공포라 일축하고 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상반된 둘은 결국 각자의 그림자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왜 기쁜가?
기쁘지 않았기 때문에 기쁜 것이다.
왜 공포인가?
공포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공포스러운 것이다.
그러니까
저쪽에 있었기 때문에
이쪽이 내게 온 것이란 말이다.
긍정정서가 부정정서를, 또 부정정서가 긍정정서를. 그렇게 서로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며 길어졌다 짧아졌다 사라졌다 나타났다 짙어졌다 흐려지는 것이다. 낮에는 얘가 쟤를, 밤에는 쟤가 얘를 끌고 다니고 어떤 상황에선 얘가 전경이 쟤가 배경이, 또 다른 상황에선 쟤가 전경이, 얘가 배경이 되는. 그런 관계가 나와 감정의 관계, 그리고 감정의 상반된 양면의 관계다.
다시 말해, 감정은 어떤 감정이라도 그 이면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기에 부정감정을 없애면 긍정감정도 없어진다. 슬픔을 모르고는 기쁨을 느낄 수 없고 공포를 모르면 해갈의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감정은 그 어떤 것도 없애지도, 정복하지도, 정화시키지도 못하는 그저 내가 잘 교제하여 날 가격하지만 않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감정이 사막처럼 폐허상태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그 이면의 그림자는 뭐지? 내가 뭔가 소망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어그러져서 폐허가 되었다면 기대때문에 폐허가 된 것이니 다시 기대로 이동시키려는 해석과 행동이 뒤따르면 되고
그렇게 폐허가 이해가 되어 행동이 보태어져 감정이 재건설되면 그제서야 감정이 날 찾아온 이유를 알게 된다. 아! 그 때 그 폐허상태가 없었다면 나는 딱 거기까지만 이뤘을텐데 폐허상태에서 재건하는 과정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구나. 그 폐허상태에 놓였던 시간과 감정 모두에게 감사하는 거대한 감정의 진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감정은 자기의 존재를 사태를 통해 증명한다. 이것이 감정이 내게서 몸집을 부풀려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이유다.
이기론을 집필하면서 무수히 주장한 바이지만
먹이를 주는 놈이 살이 찌고 힘이 세진다.
관심갖는 녀석이 더 달라붙고
집중하는 곳이 더 선명해진다.
어떤 감정이든 감정에 먹이를 주고 관심을 갖고 집중하면 그 감정은 자기 몸집을 더 불려서 내 상투를 잡고 흔들어댈 것이다. 그러니
감정이 찾아오면 해석하라.
나와 사태, 시간 모두를 통합한 일체된 시선으로 해석하고 행동하라.
감정은 나와 교제중이니 아무데도 가지않고 좀 떨떠름한 관계로 옆에 놔두고 말이다.
그렇게 그 녀석이 내 인생에서 하려는 짓, 자각이 내 두뇌에서 일어나면
나는 다시 평온한 관계로 감정과 교제할 수 있다.
그것이
감정의 진가이자
감정이 내게 온 이유이며
감정이 내게서 증명하려는 결과다.
오늘의 글을 끝으로
까지의 집필을 마무리지었다.
나는 철저히 변하고 싶었다. 소유했지만 공허했던 삶. 가졌지만 뭔가 놓친 듯한 삶. 알지만 너무 몰라서 괴로웠던 삶. 삶의 방향이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해야겠다는, 그러니까 바라보는 방향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내면이 황폐했던 숱한 시간들을 통해 2019년 2월 매일 새벽 4시경부터 태양마중과 함께 독서를 시작하고 자발적 고립과 의도적 단절을 통해 의식적 각성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5년이 흐르고 지난 2년간 매일 이 공간에 글을 쓰면서 나를 해체했고 해체한 나를 들여다보고 분석했고 그렇게 15가지의 명제가 내 삶의 맥으로 자리잡히면서 삶의 궤도를 수정해 나갔던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진정 나 하나 바꾸는 것이 이리도 어렵구나...
이런 부족한 내가 자식을, 상대를, 그렇게 뭐라도 바꾸려 자만했구나...
그저, 나 하나 바꾸면 마치 풀잎에 떨어진 한방울의 이슬이 풀잎에 초록을 보태듯이
우주의 점같은 나 하나만이라도 바꾸는, 이 작은 행동의 의미와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고
나아가 이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려 숱한 의뢰와 제안에도 불구하고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고..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
그래, 쓰자!
제목은
이기론이다!
나를 이롭게 하다!
그렇게 시작하여 매일 조금씩... 작성한 글이 이렇게 장문의 글이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이 글이 다시 재구성되어 책으로 탄생될 지 모르나 아마도 지금까지의 글을 가치편으로,
그래서 그런 논리로 무엇을 얻었는데? 어. 관점. 삶을 바라보는 관점.
그 관점으로 어떻게 했는데? 어. 날 하나씩 바꿨지.
그렇게 관점편, 실천편으로 이어나가볼까 싶다.
나를 이롭게 하다! - 이기론(利己論)
지금까지 가치편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다음주부터는 관점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감정폐허부터 감정이해, 재건, 진가, 증명까지를 한번에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전자책으로 구성해봤습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클릭!!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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