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core '엄마의 유산' - 3번째 편지
꿈에 대한 얘기는 엄마가 너무 많이 거론해서 더 할말이 있을까 모르겠다만 어떤 경우, 어떤 순간에도 간과할 수 없고 줄이거나 약하게 또는 대충 말하고 싶지 않은 소중한 단어란다. 왜? 너는 창조해내야 할 자연의 숙제를 가지고 태어났으니까. 앞서 거론한 세 가지의 선물은 자연이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주었을 지 모르지만 꿈이라는 선물은 각자에게 모두 다르게 주었단다.
너에게는 너만의 꿈을 선물했지. 네 손에 쥐어준 선물은 오로지 너에게만 준 것이지. 하늘이 내려준 재주(천재, 天才)는 누구나 가지고 태어났어. 너도 당연히!. 그 천재성을 세상에 발현시키는 것이 네가 평생 해야 할 의무라고 강하게 말하고 싶어. 대다수의 사람들은 '꿈'을 허상이라 여기며 '욕구'를 욕심으로 착각하지. 아니야. 꿈이 없다면 세상은 진화하지 않아. 세상의 진화는 모두 누군가의 꿈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야.
인간은 ‘추구하는’ 동물이면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무형의 것을 유형으로 창조해내지. 창조 뒤에 일어나는 변화가 진화야. 인류가 진화한 것은 누군가가 꿈을 꾸고 그 무형의 것이 유형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거든. 조금 더 멀리 가고 싶고 빨리 가고 싶고 보이지 않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그런 욕구로 인해 인간의 100M달리기의 신기록도 깨고 미지의 섬도 발견하고 상상에만 그쳤던 달에도, 다른 행성에도 가는 것이지. 꿈이란 것은 지금은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그 너머까지도 널 데려가는 존재란다.
인간은 ‘추구하는’ 동물이야.
너도 추구해야 해.
어떻게?
간절하게!
무엇을?
너의 꿈을!
너의 간절한 욕구는, 그리고 그 욕구가 실체화된 결과는 자연이 준 선물이야. 그러니 자연이 이끄는대로 따라야 한다. 네 머리로, 이성으로, 지식으로 ‘될까 말까’를 계산해서 판단하지 말고 그저 꿈이 이끄는 길로 순순히 너를 맡기렴. 너의 계획과 판단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어. 왜냐면. 꿈이라는 것은 현실에 없는 것인데 네 머릿속의 판단은 현실에 근거하기 때문이지. 현실적 경험이 없는 미래의 것을 이루는 방법은 지금 네 안에 없어.
그래도 다행인 것은 꿈은 자기 길을 스스로 알아서 간다는거야. 세상에 발현되기 위해 너를 찾아온 것이니 네가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단다. 그저 그 꿈의 주인공으로서 어울리도록 너를 연마하기만 하면 돼. 자칫 너의 계획이 꿈이 하는 일을, 꿈이 가는 길을 망쳐놓을 수 있으니 개입하지 말고.
아마 지금 이 글로는 도대체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날, 어떤 곳에서 너는 분명히 느낄거야. 네 가슴에 간절한 그것이 네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어떤 계기로 인해 네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 때, 방법도, 이유도 모르지만 그저 그리 가고 있는 너 자신을 발견할 것이고 그리 가는 기쁨에 너는 감격해 하겠지.
널 강력하게 두드리는 그 심정이 이끄는 길을 가렴.
방법은 꿈이 알아서 다 찾아낼테니 말야.
어떤 편견도 계획도 의심도 갖지 마라.
꿈은 꿈이 가는 길이 있고,
꿈이 이뤄지도록 일은 꿈을 쫒을 것이고
너는 꿈과 일이 너를 선택하도록 늘 연마하며 자격을 갖춰가면 되는 것이야.
그러니, 자연이 너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 너에게 심어준 꿈을 결코 훼손시키면 안된다.
자연은 결코 세상에 해로운 일을 하지 않아.
이롭게 하기 위해 네게 꿈을 심었지.
네 꿈을 현실로 발현한다는 것은
곧 자연이 너를 통해 자신의 일을 하게 하고
너는 그 고마움의 대가로 그 일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도구가 되어주는거야.
네 꿈이지만 자연의 혜택을 누린 자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이란다.
네가 그저 원자에 지나지 않았을 때, 세포에서 두 다리가, 머리가 생기기 전부터 네게 심겨진 꿈. 네가 세상에서 펼쳐야 할 꿈. 이것이야말로 세상 누구에게나 허락한 것이 아니라 유일하게 너에게만 허락한 비밀스런 자연의 선물이지.
펼치든 말든 그건 오로지 네 선택이야. 원래 선물이라는 게 주는 사람의 마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이 다르지 않니? 소중히 간직하고 사용하든 쓰레기통에 쳐박든 그건 받은 사람의 자유야. 선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의 몫이지.
가치를 보는 눈은 사물을 보는 눈보다 더 깊은 눈이란다....
시력이 아니라
시선에서 지력(智力)과 심력(心力)으로
그렇게 전심력(專心力)이어야 볼 수 있단다.
사람이 살다보면 좋을 때도 안좋을 때도 있어. 당연한 말이지. 그런데 이 모든 사태는 지나간 사소한 원인들이 모여서 하나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어 네 인생에 진입한 것이란다. 때로는 이쁜 모양새로, 때로는 미운 모양새로 말야. 이 모든 사태를 그저 좋고 싫고 나쁘고와 같이 감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주 우둔한 자들의 반응이야. 물론, 감정은 소중하니까 좋을 땐 웃고 즐기고 그렇지 않을 때 떨기도 울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런 감정은 일시적일 뿐, 더 중요한 것은 사태에 대한 해석이란다.
사태가 어떤 모양새로 오든간에 이는 분명히 네게 선물이야. 왜냐면 하나하나의 작은 원인이 '사태'라는 결과로 드러나면서 긴 인생 잠깐 쉼표찍어 결론짓고 정리하려는 의도거든. 그 결론이 다시 그 다음 이뤄질 일의 작용원인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사소한 것들을 모아서 정리하는 마침표야. 물론 마침표는 다음을 위한 쉼표이기도 하고.
일상의 사소한 것이 모이면 분명 드러낼만한 덩어리가 되고 그렇게 네 앞에 느닷없이, 갑자기 그러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이 세상의 어떤 사소한 것도 함부로 상상해서는 안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숱한 작은 것들이 합쳐진 것이다. 사람들은 상상속에서만 그런 것들을 간파하고 서두르다 보니 그것이 빠져 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나 현실의 모든 것은 속도가 느리고 말할 수 없이 상세[1]'하단다.
엄마 역시 공포스러운 사태들을 수없이 겪었지. 하지만 이제 알아. 그 속에 진짜 보석같은 선물이 담겨 있다는 걸 말야. 제 아무리 무섭고 공포스러운 현실일지라도 널 도우러 온 것이야. 그런 모습이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 그런 모습으로 온 것이지.
이 선물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각' 내지 '경고'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무리 좋아도 경고로 해석될 때도 있었고 아무리 공포스러워도 자각시켜주는 사태들이 많았어.
나아가 '징조', '조짐'으로 여겨지기도 했어. 이렇게 좋은 일이 한꺼번에 터지다니. 하면서 마냥 좋은 감정이 들더라도 잠깐 내려놓고 어떠한 조짐으로 해석해 보기도 하고 왜 나한테만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하며 엉엉 울다가도 기가 막히게 그것이 징조로 느껴지는 쾌감을 얻기도 했거든.
그러니 사소한 사태 하나하나에서 의미를 찾고 만약 의미가 별 것 아니라면 제 아무리 이상한 모양새로 오더라도 돌맹이 쳐다보듯 그냥 흘깃거리고 무시하렴. 그러니 이 역시 자연이, 세상이 널 강하게 만들기 위해 테스트를 한 것이며 그 테스트를 겸허하게 통과함으로써 더 큰 사람으로 우뚝서는 것이야.
모든 문제는 네가 문제보다 작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야. 문제보다 네가 크면 문제가 아니겠지. 그러니 어떤 사태 앞에서도 당당해라. '나를 키우기 위한 세상의 테스트가 시작되었구나.', '나를 강하게 만들어서 어디 근사한 곳에 쓰이게 하려는 의도겠구나.' 라고 여기길 바래.
그렇게 당당한 인간을 세상은 원하지 않겠니?
사태에 감사하렴.
경고로 알려주고 징조와 조짐으로 대비하게 하고 자각시켜주니 얼마나 커다란 선물이니...
자연이, 세상이 네게 무상으로 무한정 자꾸만 선물을 해.
너의 몸, 네가 머무를 자연, 인연이 될 소중한 사람들, 너의 꿈, 그리고 널 키우기 위한 사태.
이 5가지의 위대한 선물은 항상 곁에서 널 키워주고 지켜주고 가끔 야단도 치고 시련도 줄 것이야.
그러니 감사하렴. 사랑하렴.
감사와 사랑이 넘친다면 자연이 네게 준 이 선물은 오로지 너의 것으로 스며들어 너를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할 거야. 네가 이 모든 것을 사랑하면 할수록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고 소중한 것은 결코 훼손시키지 않지.
이 글을 쓰며 조지 허버트[2]의 단시(短詩)가 생각나네...
네가 얼마나 위대한 자연인지
대자연이 얼마나 네게 위대한 친구인지...
네게 전해주고픈 시야...
사람의 몸은 완전히 균제를 이루러 조화를 이루고 있다.
팔은 팔과 그리고 전체는 세계의 전체와,
각 부분은 가장 멀리 떨어진 것도 동포라고 부를 수 있다.
그것은 머리와 발이 은밀한 친교를 맺고 있고,
그 머리와 발이 달과 조수(潮水)와 친교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멀리 있는 것도
사람이 이것을 잡아 그 먹이를 보존하지 않는 것은 없다.
사람의 눈은 가장 높은 별도 끄집어내린다.
사람의 몸은 작으나마 전세계이다.
사람의 육(肉) 속에 그 지기(知己)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풀은 기꺼이 우리의 육체를 치료한다.
우리를 위하여 바람은 불고,
대지는 휴식하고, 하늘은 움직이고, 샘은 흐른다.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이나 모두 우리에게 이롭다.
우리의 기쁨으로서, 아니면 우리의 보물로써,
전세계는 우리의 찬장이거나
아니면 우리의 오락실이다.
별은 우리를 침실로 유인하고,
밤은 커튼을 끌어닫고, 해는 그것을 열어 젖힌다.
음악과 빛은 우리의 머리를 시중들고
만물은 그것이 내려와 존재할 때엔
우리의 육체에 다정하고,
올라가 원인이 될때엔 우리의 마음에 다정하다.
사람은 많은 하인의 시중을 받으면서 이 많은 시중을 못 느낀다.
사람이 병들어 창백하고 야위어 터벅터벅 걸어갈 때엔
어느 길이나 그를 도와준다.
아 위대한 사랑이여.
사람은 한 세계이고
또한 자기를 섬기는 또 한 세계를 갖고 있다.
[1] 말테의 수기, 라이너마리아릴케, 2001, 민음사
[2] 조지허버트(George Herbert, 1593~1633) : 허버트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신선함을 잃지 않은 많은 시편들을 통해 깊은 신앙심에서 우러나온 지혜의 참된 목소리를 차분하게 들려주고 있다(허버트시선, 지식을 만드는 지식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