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안돼요, 여기서는 차가 있어야 해요'
시골로 터를 옮긴 내게 만나는 분마다 꼭 이렇게 말씀하신다.
음... 그래도 아직 난 차가 없다.
이유는 '절실하지 않아서'겠지.
내 교통수단은 자전거다.
아들이 중학교때 타던 자전거지만 사이즈도 내게 딱 맞고 기능에는 전혀 문제없다.
93년도부터 운전을 하기 시작한 나는 '차없이는 아무데도 못가는' 그런 사람이었으나 어느 날, 그러니까 나를 변화시키기로,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는 '행동변화'의 시작을 차를 팔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으로 시동을 걸었던 것이다.
그렇게 '차없는' 생활이 아주 익숙해지고, '차없는'은 '꼭 가야할 곳만 가는', '꼭 사야할 것만 사는'으로 날 정리시켜줬기에 사실 굉장히 만족스러운 선택이라 여긴다. 부득이한 경우 택시타면 되지만 글쎄.. 수년간 차없이 살면서 택시도 탔고 어쩔 수 없는 경우 렌트도 했지만, 사실 '부득이한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여하튼, 자전거는 나의 두 다리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내리달릴 때 내 가슴은 다소 거칠다가 서서히 가라앉다가 한순간 가슴 속의 군더더기가 모두 제거되는 쾌감까지 느낀다. 여기저기 볼거리들도 너무 많고.. 이쯤 되니 이는 단순한 즐거움을 너머 나 자체를 정화시켜주는 하나의 도구가 된 듯도 하다. 난 자전거타고 다니는 내가 참 좋다.
물론 내가 사는 집에서 걸어 5분 거리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커다란 밤나무 아래의 아주 자그마한 정류장이다. 뒤로는 흑천이 시원~하게 흐르고 그 다리를 건너면 또 아담한 마을이 나오는 그림같은 곳이다. 늘 비어 있는 버스정류장에 가끔 할머니 1~2분이 앉아 도란도란 얘기나누고 계시면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의미이다. 정류장에는 명확한 숫자로 버스가 오는 시간이 프린트되어 붙여져 있지만 전후 2~30분정도를 감안해야 한다. 7시 40분에 읍내로 나가는 차가 있는데 이것을 타기 위해선 최소 20분 전에는 나가 있어야 하고 20분이 늦어도 기다려야 한다. 분명 차가 막히는 이유는 아닐텐데 여하튼 여기서의 시간은 '+,- 20분이 정확한 시간'이다.
하지만 이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는 것보다 자전거로 20여분 달려 읍내로 도착하면 버스가 좀 더 많다. 물론 대부분의 버스 배차간격이 최소 1시간~4시간이지만 여러 종류의 버스가 있어 1시간정도면 내가 원하는 목적지(여기서의 목적지라면 별 거 없다. 지하철역까지 가거나 장보러, 성당가는 게 다다.)로 제시간에 도착시켜줄 버스는 온다. 문제는 집으로 올 때인데 반드시 해지기 전에 와야 한다. 자전거가 있는 읍내까지 오는 버스가 거의 저녁 6시경이면 막차이기 때문이다.
아직 이사온지 두달이 채 안되서겠지만 덕분에 벌써 아주 익숙하게 해가 지기 전에 무조건 집으로 온다. (사실 저녁까지 나돌아다닐 일도 없다.)
집으로 오는 길...
읍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차가 다니는 도로로 쓩~~ 달리면 보다 빠르게 집에 도착하겠지만 나는 굳이 에둘러서 집으로 오는 길을 이번엔 이렇게, 저번엔 저렇게 만들어낸다. 네비게이션도 없고 다녔던 길도 아니지만 시야를 멀리 하면 집 뒤의 산이 저 만치서 보이고 그 산을 바라보며 이길 저길 돌고 돌아 집으로 온다. 멀리 시야를 두면 돌고 돌아도 그 곳에 당도한다. 아... 이게 뭐라고... 난 모험을 하는 듯 뭔가 새로운 신대륙을 발견한 듯 쏠쏠한 재미에 빠져 있다.
읍내에서 직진하지 않고 좌측으로 핸들을 꺾으면 바로 흑천이 흐른다. 흑천은 양평의 청운면에서 발원해서 양평의 중심을 따라 남서부로 흐르는 하천인데 내가 다니는 길목에서 흑천을 바라보면 저어기 멀리 1~5m폭으로 3~4개로 갈라진 하천이 폭500m는 족히 넘고도 남을 넓은 하천으로 모여 유유히, 그러나 아주 빠른 속도로 흐른다. 이 곳에 철새가 오는지 어떤지 나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 넓은 하천을 자기집으로 살고 있는 수십마리의 오리떼들이 자맥질에 여념없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항상 볼 때마다 귀여운 것은 아가오리들이 줄줄이 에미를 따라다니는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하면 이 녀석들은 날 놀리듯 자맥질한채 나오지도 않고 한참을 날 기다리게 하고선 앵글 밖 저~쪽에서 모습을 드러내 내 앵글에 담은 적이 없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여 다투지 않게 하고,水善利萬物而不爭
모두가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處衆人之所惡,
그래서 도에 가깝다.故幾於道
- 도덕경 8장 1절.
성현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듯 나에게 '물'과 같으라 일러주지만 사실 그게 뭔지 아직도 난 잘 모른다. 시인과 촌장의 노랫말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주)'서 난 물과 같이 모든 것을 포용하거나 갈라진 길로 들어선 무언가, 누군가와 다시 혼합되어 하나의 길로 가기는 버겁다. 그러면서도 물을 보면... 더군다나 여기가 이 하천의 발원지라서인지 발가벗은 채 맨살을 드러낸 맑고 넓은 물을 담는 나는 나의 '앎'을 다시 한번 되새기곤 한다.
물은 모든 것을 품는다. 물수면으로 구름이, 새가, 비행기가 지나가도 그냥 그대로 담았다가 가고자 하는대로 가게 내버려둔다. 물 속에 내가 돌맹이를 하나 던져도 그냥 작고 잔잔한 동심원만 그릴 뿐 나를 탓하지 않는다. 또 가끔 장화신은 아저씨가 물 속에서 망을 던지며 물고기를 해쳐도 물은 아저씨를 안고 가야할 길을 멈추지 않는다.
물은 물로 꽉 차있었던 적이 없다.
자기 속에 자기만으로 꽉 채운 적이 없다.
그 속에 얼마나 많은 공간을 지니고 있길래
그리 많은 것을 품는단 말인가...
바깥으로부터 비추이는 모든 것에 피부를 허락하고
안에서 노니는 많은 생명체에 심장을 허락하고
잠시도 멈추지 않고 휩쓸고 가는 모든 것에 다리를 허락하고...
그렇게 담고, 주고, 데리고, 품으면서 늘 맑은 자신을 유지한다.
생명체의 삶을 받고
자기를 내어줌으로써
스스로도 정화된다.
집으로 가는 길, 이 하천은 꼭 나를 자전거에서 내리게 한다.
그리고 한...참... 물과 나를 번갈아 보게 한다.
너 왜 날 세우니?라고 묻는다.
내게 보이는 것은 맑은 물, 그 속의 모래, 돌, 그리고 노니는 물고기, 오리들이지만
물은 나에게
대자연의 응집된 일침을,
이를 통해 나약한 내 정신을 비추라 명하며
나의 심상(心想)이 심상(心像)으로,
다시 심상(心像)이 심상(心像)으로 전이되도록 내 정신에 자신의 맑음을 투여한다.
내가 두 번째로 자전거에서 내리는 곳은 소나무길이다. 흑천에 미련두고 자전거에 올라 흑천을 오른쪽에 끼고 다시 우회전하여 조금만 달리면 소나무길이 나온다. 이 아래는 온통 맥문동꽃밭이다. 지금은 꽃이 지고 씨를 떨구는 중이다. 맥문동 씨앗을 봉지에 가득가득 담는다. 담아도 담아도 끝도 없다. 나의 빈 마당의 돌틈사이, 연못주변, 길과 마당의 경계에 맥문동이 피어날 것을 기대하면서.
봉지에 발아를 기대하는 씨앗을 가득 담고 다시 저~~어기 멀리를 바라보며 또 달린다. 시야가 탁 트이고 하늘아래 건물이 없는, 건물이 하늘을 가리지 않는, 바로 '내 눈앞에 있길 바라는' 그 풍경이다. 눈으로 보이는 오른쪽으로는 어딘가로 바쁘게 내달리는 사람실은 고속도로가, 내가 있는 중심앞으로는 조그맣게 마을로 이어지는 좁은 도로들이, 왼쪽으로는 추수를 막 끝낸 농부의 다리가 낸 길이 가지가지 뻗어 있다.
그렇게 조금 달려 작은 마을이 보인다.
내가 터를 잡은 곳.
조금 추워진 날씨에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도 피어오르는 작은 마을.
작지만 부유하고 부유하기에 뭐든 나누려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달은 것만 같은 이들이 모여 사는 곳.
저~어기 머~~얼리 내 마을, 내 집의 끄트머리까지 시야에 쏙 들어오면 이내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 가고 싶어서. 너무 좋아서. 신나서.
조금만 더 달리면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는 여전히 밭 한가운데서 허리굽혀 '없는 일도 찾아서' 하고 계시겠지. 고무줄바지를 배 위까지 걸친 주황지붕집에 사는 아저씨는 나와 계시려나, 돋보기를 쓰고 '어디가?'라고 매일 물으시는 할머니는 마을정자에 앉아 계시려나? 신기하다. 내가 (아무 관련도 없는) 남들을 궁금해하다니....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알든 모르든 마을 어르신만 보이면 난 큰 소리로 인사한다.
덕분에 (들은 정보에 의하면) 난 이 마을에서 아주 인기가 좋단다.
(실제 며칠 전에 김장김치, 김장무김치까지 아주 듬뿍듬뿍 담아주셔서 김치부자가 됐다.)
그렇게 5~6번 인사를 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자전거에서 내릴 차례가 온다.
나의 보금자리를 바로 코앞에 두고 다소 경사진 언덕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짧은 길이지만 두 다리 힘만으로는 오르기 버거운 경사길이다. 이 짧은 경사면을 살짝 오르면 흰색의 아담한데 굉장히 깔끔하고 늘 정돈된 정원을 자랑하는 노인회회장님의 댁이 첫집. 중국에서 사업을 크게 하시고 노년을 여기서 여유롭게 만끽하시는, 내가 이사와 가장 많이 뵙고 대화를 나눴던 분이 사신다. 두번째 집은 농막이다. 이 분들은 교사로 은퇴한 동생과 아직 현역에서 세무사로 일하시는 형이 주말마다 오셔서 하루밤 기거하고 가신다. 며칠 전 추수를 모두 끝내고 내년 봄에나 오신다 하여 함께 저녁을 먹기도 했다.
그리고 젤 위에 나의 보금자리.
아직도 손봐야 할 곳이 많지만 해와 내 시야를 가리던 나무를 모두 베어내어 이제 햇살도 잘 들고 훤히 트였다. 이 동네에선 약간 웅장하고 기이한(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집'이 지닌 보통의 형상이지만 내가 정한 보금자리는 이들에게 특이한 것을 너머 기이하기까지 한 모양이다.) 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읍내에서 집으로 가는 길....
난... 이 길이 참 좋다...
수만가지 잡념을 떨치게 하고
수만가지 배움을 갖게 하는 곳.
그렇게...
이 길을 따라 가면 내 꿈에도 당도하겠지.
내 꿈으로 한발짝... 날 더 당겨주는 곳, 이 길이
나는 참 좋다....
주> 시인과 촌장 '가시나무' 노랫말 첫소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