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산'
미트리다티즘(Mithridatism)이라는 용어가 있단다.
지금의 터키북부 지역인 고대 소아시아에 폰토스 왕국이 있었어.
그 나라의 왕인 미트리다토스 6세는
아주 강인하게 로마제국과 싸운 제왕이었고
'마트리다티즘'은 이 왕의 강인함을 비유해 만들어진 용어야.
이 왕이 얼마나 강하냐면.
'독약의 제왕'이라고 불릴 정도였지.
그는 어릴 때 자신의 아버지가 독살당한 것을 보고
자기도 언제든,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독살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자랐단다.
그래서 그는 아주 소량의 독약을 매일 조금씩 먹으면서 내성을 키웠어,
독약에 완전히 면역되도록 말이야.
그가 사용한 독은 비소(As), 납, 독버섯, 뱀독 등 다양했어.
시종들이 그가 절대 죽지 않도록 조절했기 때문에 그는
'독의 군주, 독약의 제왕'이라 불리게 되었고
'마트리다티즘'은 심리적으로 의존이 고착된 정도를 의미할 때 사용하는 용어가 됐어.
심리적으로 의존이 고착된 경우.
즉, 습관.이라고 할 수 있지.
아이야,
지금 엄마가 왜 이 얘기를 하는지 알아챘지?
우리는 너무 약하면서도 강한 것 같아.
아주 사소한 행위 하나, 음식 한숟가락, 말 한마디, 듣는 이야기들이 계속 축적되면 무서운 힘을 가지게 돼.
약하니까 그것들에 의지하면서도
강하니까 관성을 깨고 내성으로 고착시켜.
습관이란 이렇게 무서운 힘을 지녀.
양치질과 같아.
처음에 아가때는 안해도 그만이었잖아.
그런데 십수년간, 수십년간 양치질을 했더니 지금은 하루라도 안하면 못 견디지.
만약 네게 지금 소금으로 양치하라면 하겠니?
치약없으면 안되겠지?
비단 신체뿐만이 아니라
정신도, 감정도 이렇게 작은 것들이 매일 조금씩...
네게 중독성있게 쌓여서 무서운 힘을 발휘한단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야.
널 묶고 있는 정신과 감정, 신체의 작은 사슬 하나라도 바꾸고 싶다면
새로운 사슬 하나를 꿰어서 매일매일 반복해서 적.응.하는 수밖에 없어.
만약, 우리에게 치약이 다 없어져서 소금으로 양치하라고 하면 어떻게든 버텨서라도 해내겠지.
치약이 없으니까.
적.응.을 가장 잘 하는 방법은
기존에 하던 짓을 '절대 하지 않는 것'.
이 단순함밖에 없단다.
엄마는 남들이 엄마를 무시하면 화가 나.
소크라테스는 '당나귀가 자기 엉덩이를 걷어찬다고 내가 같이 걷어찰 필요가 있느냐(주1)' 라고 했는데 엄마는 같이 걷어차고 싶거든. 이 또한 감정의 습관이잖아. 내가 어떤 부분에 약한지 알았으니 누군가가 엄마를 오해하거나 혹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냥 당나귀가 내 엉덩이를 걷어찼구나.라고 해석하고 내 감정을 적.응.시키는거야. 순간 '화'라는 감정이 올라오면 '당나귀'하고 내 정신에 명령하는 아주 작은 새로운 사슬 하나를 만들어 엄마의 패턴을 바꿔보는 것이지. 마크리다티즘. 심리적으로 고착된 것을 끊어내는거야.
습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엄마가 지난 번 편지에도 적었으니 이 정도로만 말할께.
그런데 아이러니가 있다.
미트리다토스왕은 '폼페이(Pompey)'에서 패배한 뒤, 자결을 결심했어.
그런데, 이미 그는 ‘자기 독에 면역된 탓에 독으로 죽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단다.
아무리 독약을 마셔도 몸은 반응하지 않았지.
결국 그는 자신의 호위무사에게
'칼로 나를 죽이라'고 명령했어.
습관은 인간의 감각을 둔하게, 심지어 죽여버리지.
이쪽으로 관성화된 감각을 죽여버려야
저쪽으로 새롭게 네가 원하는 감각을 적응시킬 수 있으니까.
제 아무리 좋은 습관이라도 독약 한방울을 지속적으로 투입하면 그 쪽 감각은 죽어.
제 아무리 나쁜 습관이라도 해독제 계속 투입하면 독약에 적응된 감각도 죽지.
습관은 이렇게 네 삶을 마구 쥐고 흔들어댄단다.
우리가 말하는 '근성'이란 게 어쩌면 독약처럼 중독을 시키는
인간의 자세잖아.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는 태도니까.
해로운 것에 근성을 가지면 '해'가 습관이 되고
이로운 것에 근성을 가지면 '득'이 습관이 되지.
독약으로 한쪽은 면역이 키워지는 것과 동시에
반대편 한쪽은 마비되듯이
없던 기능을 살리면서 기존의 기능은 죽는거야.
네가 원하는 곳으로 '근성'을 부리면
한쪽은 죽고 한쪽은 적응으로 살고.
판단, 감정, 이로서 드러난 행동, 표정, 기타 너의 외적인 모든 것은
마트리다티즘의 결과야.
너의 실재.는 습관의 결과란다.
여기 실재.에 대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줄께.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 아주 유명한 '동굴의 우화'야.
어두운 동굴 안
태어날 때부터 목과 다리가 쇠사슬로 묶인 채 동굴벽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
그들 뒤에는 불빛이 있지만 불빛과 사람들 사이엔 벽이 있고
벽 위로 동굴 밖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그 결과,
동굴벽엔 동굴밖 사람들의 그림자가 늘 비쳐.
동굴안에 묶여 있는 사람들은 그 그림자들을 현실 그 자체, 즉 '실재'라고 믿고 산단다.
그러다가 어떤 한 사람이 쇠사슬이 풀리고 밖으로 나가게 돼.
처음에는 너무 눈이 부셔서 아무 것도 보지 못했지만 서서히 사물의 실.체.를 보게 되지.
그리고 마침내 '동굴밖 태양의 진리'를 보게 된단다.
그리고는 충격을 받고 이렇게 말해.
'지금까지 내가 본 것은 진짜가 아니었구나. 그저 그림자였어!'
그는 얼른 들어와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해주지만
어둠의 눈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를 조롱하면서 죽이려 들어.
습관이 얼마나 우리의 감각을 둔하게 만드는지,
습관이 얼마나 우리 정신과 신체에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지,
습관이 너의 판단과 너의 신념에까지 벌이지 못할 짓이 뭐가 있겠니?
습관은 우리의 판단력을 마비시킨단다.
습관이 얼마나 네 삶을 쥐고 흔드는지 알 수 있겠지?
인간을 지배한 환경과
환경에 지배된 인식과
인식에 지배된 행동과
행동에 지배된 결과에 대한 반응까지
우리의 경험속에 누적되어 벌써 판단을 마비시킨,
남들이 할 땐 경악스럽게 눈에 거슬리는 일이 자신에겐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게다가 스스로 '이성적'이라 판단한 것들이 또 얼마나 어리석은지
넌 살펴봐야 할거야.
가령,
너희들이 스트레스와 피로를 참아가며 강장제를 먹으면서까지 하는
'열심'인 행위가 마치 정상적인 근면과 성실이라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부모말을 따르는 것이 효도'라는 그릇된 인식으로
자율성을 상실하는 자기억압을 미덕이라 착각하지는 않는지,
'윗사람 말에는 복종해야 한다'는 규율을 따르느라
부당과 부정과 비겁이 조직의 갈등유발을 일으키지 않는 지혜로 둔갑하는 것에 시력을 잃은 건 아닌지,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는 허세가
자신의 가치와 자격이라 착각하고 타인위주의 가치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판단력이 마비된 것은 아닌지,
엄마가 얼마 전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어떤 남자에게서 아주 진한 향수향이 코를 찌를 정도였어.
너무 많이 뿌린 것이겠지.
그런데 그 남자는 자기가 고급향수를 매일 뿌리다 보니 그 향이 진한 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자신은 향에 둔감해지고 향수는 남들의 코만 자극하는,
우리의 감정과 감각, 정신과 이성의 판단들도 나를 둔감하게 하고 마비시킨 것들이 많을거야.
특히 집단적 무감각이 만연화되면 그 사회는 정상이라 할 수 없겠지.
마치 동굴 속의 사람들처럼 말이야...
공포영화를 자주 보면 더 이상 공포영화는 공포스럽지 않고
너무 잔인한 영화를 많이 봐도 잔인한 것에 무뎌지지.
게임 속에서 저지르는 만행들을 현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경우도 있고.
옛날에 크레테인들은 누구를 저주하려고 할 때에 그가 나쁜 버릇을 갖게 해달라고 신에게 축원(주2)했대. 실제 대영제국이 인디언들을 말살시킬 때 그들에게 문명화된 물질들로 생활을 편하고 풍족하게 해줬잖아. 그 편안함에 길들여진 인디언들은 결국 문화와 영토 모두를 빼았겼지. 이렇게 삶을 통째로 흔들어대는 '습관은 모든 사물들 가운데 최강의 상전(주2)'이란다.
아이야.
지금 너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한번 훑어보렴.
어떤 습관이 네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 말이야.
습관을 벗어나는 것은 이성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야.
또한 습관을 벗어나야만 이성이 제대로 된 기능을 갖추게 되는 것이지.
나의 이성과 감각 모두를 지배하는 습관.
그래서 그리스 서정시인 핀다로스는 이렇게 썼나 봐.
주1> 소크라테스변명, 플라톤, 문예
주2> 나는 무엇을 아는가, 몽테뉴, 동서문화사
주3> 핀다로스(Pindar, 그리스 서정시인) : Fragment 169 (Bergk numb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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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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