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산]은 엄마의 정신을 남깁니다.
지난 2024.12.5일 출간을 시작으로 7월 2,3권이 출간, 이번 11월에 4,5권의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엄마들의 고귀한 정신으로 이 시대를 살아갈 자녀에게 '사는 힘'이 되어줄 [엄마의 유산].
오늘 글은 지난 7월 출간된 [엄마의 유산-우주의 핵은 네 안에 있어]가운데
박지경작가의 [파테마타 마테마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소한 의무와 일들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더 차원 높은 일들에 몰두할 수 없다고 너나없이 불평하곤 합니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결심하고 그 모든 사소한 문제들에서 벗어난다면 그들은 즉각 차원 높은 일들에 생을 바칠 수 있을 것이고, 나머지 마치 숨 쉬는 일처럼 자연스럽게 잊어버릴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시간이 없어서 어떤 일을 못 한다고 말하진 않을 것입니다. 책임감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중요한 일을 제쳐두고 다른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주).’
아이야.
평소 평범해 보이는 글이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하는 경우가 있단다.
엄마는 위의 소로우의 글귀가 그랬어.
삶의 기준을 찾는 엄마의 고민이 깊었는데 소로우의 글에서 기준을 발견했거든.
글 속에 담긴 7개의 어휘들.
왜 그랬을까. 이 글을 읽는데 갑자기 이 어휘들이 자음과 모음으로 흩어져 엄마에게 다가오더니 하나씩 엄마 앞에 줄을 서더구나. 그렇게 가슴에 하나씩 들어왔어. 아마도 기준없는 모호한 삶에 답답하기만 했던 당시의 심정이 이 어휘들을 끌어당긴 것 같아. 아무튼 이 글자들로 인해 엄마는 좀 더 간단하고 명료한 삶을 살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지.
왜 이 문장들이 엄마 가슴을 뒤흔들었는지, 엄마 삶에 기준이 되었으면 했는지 네게 얘기하고 싶어.
그럼 엄마 가슴을 뛰게 한 7가지를 말해볼게.
우선,
엄마가 다다르고 싶은 그 길에서 절대 벗어나지 말자 다짐했어.
누구도 태어나길 원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지.
그렇다면 누구나 태어나야 할 이유가 있어서 태어난 것이겠지?
이 말은 ‘세상에 해야 할 어떤 의무가 있어서’를 의미하겠지?
엄마는 ‘더 차원 높은 일’이 바로 그것이라 여겨져.
거창하게 ‘사명’이라고 말하고 싶어. 각자가 이루어야 할 사명은 누구나 있다고 하더라. 엄마에게도 있겠지. 너에게도 있을 테고. 그것을 찾고, 알고 그 차원 높은 삶을 살아보려 해. 그것이 엄마의 첫 번째 기준이야. 이러한 기준으로 산다면 결코 그릇된 선택이나 행동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야. 혹시나 어떤 이유에서 궤도를 이탈하더라도 정해 놓은 기준을 보며 다시 방향을 다 잡고 자신의 ‘더 차원 높은 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으니까.
‘자기 인생에 확실한 목표를 세워 두지 않는 자는
특수한 행동을 처리해 갈 길이 없다.
낱낱으로 된 전부의 형태가 머릿속에 가다듬어지지 않는 자는
그 조각들을 정리할 수 없다.
무슨 그림을 그릴지 모르는 자에게
물감을 주어서는 아무 소용없다.
아무도 자기 인생에 확실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한 부분밖에 고찰하지 않는다.
활을 쏘는 자는 먼저 어디를 겨눌지 알아야 한다.
거기다가 손과 활, 시위, 화살, 그리고 동작을 맞춰야 한다.
우리 의도는 종잡지 못한다.
거기에는 아무런 방향도 목표도 없기 때문이다.
가야 할 항구가 없는 배는 어떠한 사람도 소용없다(주2).’
두 번째,
이 기준은 엄마에겐 좀 어려웠지만 도전해볼 만한, 아니 꼭 지녀야 할 기준이야.
‘ㅂ’으로 시작되는 단어는 별로 도움이 안 돼. ‘ㅂ’에 사는 동네는 바보 동네야.
왜냐하면 얘네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널 상실감에 빠뜨려.
상황이나 현상에 불안해지면 이에 대한 방어기제로 현상을 부정하게 되고 부정은 불쾌한 감정을 통해 불평이나 불만 섞인 언어와 행동으로 드러나며 이는 사실을 왜곡, 오류화시킬 가능성을 높여서 결국, 자신의 안전한 공간으로 비겁하지만 숨겨줄 수 있는 변명을 찾게 돼.
변명은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것이기에 옳게 포장되기 위해서 현상을 비난하도록 이끈단다. 왜냐하면, 관계란 정당성의 대립이니까 대상을 비난 내지 부정하면 자신의 정당이 상승하거든. 비교에 의한 일시적인 상승은 곧 추락을 예고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자신을 이끌지. 비난은 변명의 몸집을 더 강하게 키우고 수습이 안 될 정도의 비굴한 아첨꾼으로 자신을 내몰고 스스로가 비참해지는 꼴을 면치 못하게 되면서 결국 비웃음의 대상이 돼. 스스로 자신을 바보로 만든 것이지.
여기서 더 나아가 심연의 자아는 자신을 배신하여 바보로 만든 현실의 자아에 보복하기 위해 강인함을 버리고 불쌍한 자아를 자처한단다. 이렇게 불쌍하고 부실하고 부진해진 심연의 자아는 현실의 자아가 무너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자아를 부정하며 비애 속에 자신을 가둔 채 현실적 자아와 심연의 자아를 분리시켜 버리기도, 더 악하게는 분절시켜 버리기도 해. 무섭지...(주3)’
‘ㅂ’ 동네에 살지 않기. 한동안 아주 오래 ‘ㅂ’ 동네에 살았던 엄마는 매사에 남들과 비교하며 불만이 가득한 채 불평도 많았고 그래서 불안했지. 이제는 ‘불평’이 가득한 부정성이 강한 동네가 아니라 미래를 그리고 그것을 이루며 긍정적으로 살고 싶거든. 그래서 ‘ㅂ’동네에 살기는커녕 가지도 않겠다는 기준을 잡은 것이야. 이런 기준으로 살려면 말부터 바꿔야겠지? 말이 바뀌려면 머릿속의 마인드부터 바꿔야 하고. 들어있는 대로 나오는 것이니까. 말이 바뀌면 글도 바뀔 테고 말이야.
세 번째,
무슨 일을 시작할 때는 포기 먼저 하기로 했어.
엄마도 결심한 것들이 많았지. 하지만 엄마는 작심삼일이었어. 왜 그런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결심은 순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취해서, 그러니까 감정적으로 ‘이렇게 해야지’ 생각만 했더라고. 어떤 일을 해내겠다는 것은 감정보다 행동으로 쭉 연결돼야 하는데 말이야.
그래서 ‘결심’을 하는 순간 먼저 ‘결단’부터 하기로 기준을 세웠어. 하고 싶은 것을 양손에 쥐고 결단할 수는 없어. 같은 시간에 둘을 다 할 수 없지 않겠니? 양손에 사과를 들고 또 다른 과일을 손에 쥘 수 없잖아? 그래서 ‘안정된 삶의 질서란 안정을 추구하는 마음의 포기를 포함(주4)’하는 것이야. 엄마가 새벽잠과 사람들의 만남을 포기하고 새벽 독서를 선택한 것처럼 새벽에 책을 읽으려면 잠과 사람들의 만남을 포기해야 했지.
앞서 말했듯이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원해서 새벽독서를 시작했는데 친구도 만나고 놀기도 하면서 어떻게 높은 차원으로 살아질까? 새벽에 책을 읽고 글도 쓰려면 낮에 이리저리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들을 줄이거나 없애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번에 공저작업을 시작하면서도 더 디테일한 결단이 필요했지. 너희들 반찬수를 조금 줄였잖아.
바로 이것이 결단이야. 무언가를 결심한 순간 끊어낼(斷, 단) 것들을 먼저 행하는 것이지. 엄마가 이 기준을 세우고부터는 무의식적으로 포기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단다. 확실히 구체적으로 적어 보니 우선순위가 더 확실해지더라. ‘쓰는’ 행위의 힘이지.
결단을 내렸으면 이제 ‘끊어낸’ 그 자리를 차지한 ‘해야할’ 것에 무조건 집중해야 해. 처음부터 성공할 수는 없었어. 분명 한 번씩 빠뜨리기도 하지. 하지만 그래도 계속해 나가는 정신을 붙들고 있어야 해.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했음에도,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연습했음에도 성과가 지지부진하다고 해서 자꾸만 자세를 바꾸고, 생각을 고치고, 이것저것 다 해보려고 하기 보다는(주5)’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반복해서 하고자 하는 일을 해야 해. 그렇게 몸에 습관으로 배이게 만들고, 또 습관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단계까지 올려놔. 무의식적으로 그냥 하는 단계. 그냥 생각 없이 하는 단계까지 가야 안심할 수 있어. 안 그럼 결단한 것을 잘 실천하다가도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야.
네 번째,
엄마는 문제가 생겼을 때 엄마 자신을 키울 기회로 받아들이기로 했어.
아이야.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고 오해를 풀려는 노력이 때로는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단다. 그러다가 관계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가기도 해. 아마 엄마가 책을 읽게 된 계기도 관계에서 길을 잃었을 때였던 것 같아.
‘한 가지 목표에 전력을 다하는 사람들은
그날을 기다리며 대부분의 시간을 견뎌낸다.
이런 사람들은 삶의 자잘한 것들에 얽매이지 않는다.
카푸치노 커피가 너무 뜨겁든 혹은 차갑든,
웨이터가 미적거리든 아니면 이래라저래라 간섭이 많든,
음식에 양념이 너무 많이 들어갔든 아니면 너무 적게 들어갔든,
호텔 숙박비가 광고에 나온 것보다
비싸든 싸든 괘념하지 않는다.
더 원대하고 멋진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주6).’
나심 탈레브의 말처럼 문제보다 엄마가 더 커지니 이제는 그렇게 안달복달했던 것들이 다 부질없음을 느꼈어. 그냥 엄마가 문제보다 더 큰 사람이 되면 아무것도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느꼈지. 그래서 엄마만의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해서 엄마를 키우는 데 집중하기로 한거야. 이제 더 원대하고 멋진 것에 마음이 사로잡힌 것이겠지?
다섯 번째,
자연이 제 속도대로 가듯 엄마도 엄마의 속도로 가려고.
주말에 함께 텃밭에 가면 여러 채소를 보지. 오이는 정말 물을 많이 먹는 채소야. 여름에는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물을 듬뿍 줘야 곧고 바르게 큰다는 것도 이제는 알지. 엄마가 오이에 정성을 들인 만큼 오이도 엄마에게 먹음직스러운 오이로 보답하지. 그렇지 않으면 진딧물이 온 줄기를 뒤덮어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것을 보고 놀랐지. 오이를 키우기로 했지만, 물주기를 게을리하면 예쁜 오이를 받아내지 못하는 거야. 물만 잘 줘도 꽃이 피고, 꽃이 진 자리에 아주 작은 아기 오이가 달린 것을 보고 우리는 환호했었지.
‘말없이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확실히.
우리가 말하는 응보라는 것은
우주의 필연적 법칙이고,
그 법칙으로 부분이 나타나는 곳에는
반드시 전체가 나타난다(주7).’
처음에는 표가 나지 않겠지만 지금은 엄마보다 더 키가 커버린 너처럼. 뭐든 자기 속도가 있는 법이야. 빨리 가야 할 때는 빠르게, 천천히 늦춰야 할 때는 천천히. 그렇게 엄마는 성장할 거야. 남과 비교하지 않고 엄마의 속도를 지키되 하고 있는 일의 속도에 맞춰서 엄마를 키우는 것이지. 이 기준은 남들 보며 비교할 시간에 엄마 자신과 엄마가 하는 일에만 집중하는데 아주 효율적인 기준이 되었단다.
여섯 번째,
이제 시간 없다는 핑계는 버리려구. 엄마의 시간이 어디로 쏠리고 있는지 확인했거든.
그 유명한 아이젠하워의 ‘시간매트릭스’에 엄마의 일상을 대입해 봤거든. 그중에 긴급하지 않지만 소중한 일. 그러니까 책 읽기나 운동이 좋은 예가 될 텐데, 급하지 않지만 절대 쌓이지 않으면 인생에서 큰 탈을 낼 만한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이잖아. 이것들을 하나씩 채우면 분명 인생 전반이 원만해질 것이거든. 몰라서 헤매거나 아파서 시간을 잃어버릴 경우는 없겠지? 지금 엄마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시간이 그래서 새벽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수영이야.
‘요란스럽게 동요하는 마음은
거기에 잡힐 거리를 대어 주지 않으면
자기 자신 속에 사라져 버린다.
그러므로 항상 이 마음이
부딪혀 행동할 수 있도록
목표를 주어야 한다(주9).’
아무 생각 없이 중요한 일인지 아닌지 생각도 안 하고 남들이 하니까 그냥 따라 하는 것은 엄마에게 치명적인 약점이었지. 중요한 일부터 의무를 다하고 나머지를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참 어려웠어. 그래도 스스로 절제하고 상대방에게 거절하는 노력을 하니 이제는 제법 엄마의 중요한 것들이 확보되고 있어.
아이야, 살면서 ‘시간없어서’라는 표현을 숱하게 하게 된단다. 그 때엔 꼭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가장 소중한 것. 바쁘다는 핑계로 밀쳐뒀던 그것을 소환해보렴. 그리고 그 소중하지만 방치했던 그것부터 의식적으로 꼭 해 봐. 분명하게 너도 알 수 있을 거야. 그 몇가지 소중한 것을 해냄으로써 나머지 널 힘들게 하던 많은 것들이 해결된다는 것을 말이야.
일곱 번째,
책임이란 참 무겁고 무서운 단어란다.
책임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중요한 일을 두고 다른 일에 관심 두지 않아.
책임(responsibility)은 반응(response) + 능력(ability),
그러니까 ‘책임이란 반응하는 능력’이야.
사람에, 대상에, 사물에, 현상에, 사회에, 시대에 어떻게 엄마가 반응하는지,
얼마만큼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그것을 알고 행하는 것이 책임이야.
‘아픔을 통해 배운다’라는 고대 그리스어야.
책임을 지려면 이 마법의 주문에 걸려들어야 해.
제대로 책임지려면 고통은 분명히 거쳐 가야 할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고통이 신기하게도 고통스럽지 않게 된단다. 마땅히 치러야 할 다소 불편한 감정 정도가 되지. 그러니 책임진다는 것은 고통 속으로 스스로를 몰아가 오히려 고통을 즐기는 능력이기도 한 것이야. 엄마가 읽은 책 가운데 진정한 책임이 무엇인지, 그 범주가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알려준 문구가 있는데 잘 읽어보렴.
‘힘이 없는 근육,
신뢰가 없는 우정,
결론이 없는 의견,
미적 요소가 없는 변화,
가치가 없는 나이,
노력이 없는 인생,
갈증이 없는 물,
영양이 없는 음식,
희생이 없는 사랑,
공정함이 없는 권력,
엄격함이 없는 사실,
논리가 없는 통계치,
증명이 없는 수학,
경험이 없는 가르침,
따뜻함이 없는 예의,
구체성이 없는 가치관,
박식함이 없는 학위,
용기가 없는 군인 정신,
문화가 없는 진보,
투자가 없는 협업,
리스크가 없는 덕행,
에르고드 상태가 없는 확률,
손실 감수가 없는 부의 추구,
깊이가 없는 복잡함,
내용이 없는 연설,
불균형이 없는 의사결정,
의심이 없는 과학,
포용이 없는 종교,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임이 없는 모든 것(주10).’
책임이 없는 모든 것. 이렇게 책임 없는 성과는 시련 없이 맛있는 열매를 먹겠다는 심보이지. 위 글귀의 반대로 하면 책임 있는 삶을 살게 되겠지? 완전히 ‘책임감 있는 삶’의 집합체 아니겠니!!
엄마가 소로우의 한 문단에 빠져서 7가지 기준을 세우고 지낸지가 벌써 1년이 지났어. 이제 서서히 습관이 된 것도 있고 아직 많은 훈련이 필요한 것도 있지. 그 중 독서와 글쓰기를 매일 하는 기준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정말 몸에 배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단순한 행위를 통해서 엄마가 ‘기준’을 더 든든하게 지키게 해줄 5가지의 배움을 얻었는데 이것이 엄마를 멈추지 않게 해줄 엄청난 바탕, 본질, 기본이 되었단다.
역시 ‘기준은 기분이 아니라 기본으로 세우는 것이지(주11).’
‘가야 할 곳 먼저, 가고 싶은 곳 나중
먹어야 할 것 먼저, 먹고 싶은 것 나중
봐야 할 곳 먼저, 보고 싶은 곳 나중
해야 할 말 먼저, 하고 싶은 말 나중
들어야 할 말 먼저, 듣고 싶은 말 나중
읽어야 할 책 먼저, 읽고 싶은 책 나중
잡아야 할 것 먼저, 잡고 싶은 것 나중
배워야 할 것 먼저, 배우고 싶은 것 나중
써야 할 것 먼저, 쓰고 싶은 것 나중
줘야 할 것 먼저, 주고 싶은 것 나중
이해할 것 먼저, 이해시키고 싶은 것(주12)’
이것은 너도 알지?
엄마가 독서를 시작한 후부터 벽에 붙여놓았지.
매일 보고 매일 실천하는!
선 의무, 후 권리!
의무를 하지 않고 권리만 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이야, 대가를 치르면 반드시 보상이 온단다. 그러니 너희들도 숙제 먼저 하고 놀고, 밥 먼저 먹고 군것질하고, 읽어야 할 책읽고 게임하는 것이야. 단순하지? 이렇게 단 한 가지의 원리를 지키면 정말 많은 것이 해결된단다. 중심이 단단하면 당연히 주변이 정리되겠지?
한가지로서 만가지 변화에 대응한다.
‘현자는 한 가지 것을 행하여 온갖 일을 행한다.
또한, 현자는 그가 바르게 행하는 한 가지 것에 상대하듯이
바르게 행해지는 온갖 영상을 본다(주13).’
어떻게 동서양의 철학이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을까? 그만큼 동서양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할 명제인 것이지. 한 가지를 올바르고 똑바로 변화시킨다면 다른 모든 변화에 대응이 된다는 의미야.
엄마는 새벽독서 하나로 모든 것들이 정리가 되었어. 정리해야 될 관계, 쓸데없는 잡념, 너희들에게 퍼붓는 잔소리, 무지로 인한 결핍 등 많은 것들이, 하나에 집중하니 그 주변의 일들을 하니 마니 생각할 필요없이 저절로 없어졌어. ‘만사는 그 원인에 의해 하나의 중심으로 귀결(주14)’된단다.
느린 것을 두려워 말고 중도에 그만두는 것을 두려워 하라.
느린 것은 괜찮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나가면 된다는 뜻이야. 엄마의 노트북에 포스트잇으로 붙여져 있지. 앞서 말한 '결단’을 기준으로 세우고서 항상 불파만지파참을 되내었어. 그냥 하는 것. 그렇게 마음으로 되뇌고 입으로 말하면서 끝까지 해낼 거라는 다짐을 한단다. 스스로 내린 결심을 결정하고, 결정을 결단하고 끝까지 엄마만의 속도로 실천하면 원하는 결과를 손에 쥐게 될 것이거든.
‘왜 우리는 그렇게 성공하기 위해 조급히 굴며
또한 그렇게 사업적일까?
만일 어떤 이가 그의 동료들과 발을 맞추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는 그들과는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로 하여금 그가 듣는 북소리에 발 맞추게 하라.
그 박자가 고르거나 또는 늦거나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장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주15).’
스스로 혼자 있을 때도 지키기로 한 것은 지켜내는 자신만의 약속이지.
물론, 모든 것에서 신독하기에 엄마는 여전히 부족해. 하지만 엄마가 지켜야 할 ‘차원 높은 일’ 즉, 사명을 위해 오늘의 루틴만큼은 꼭 지키고 있지. 새벽 독서와 글 쓰는 시간 역시 절대 어기지 않고 말이야.
엄마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거야.
남들이 뭐라 하건. 엄마는 스스로에게 수치스러움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수치스러움을 일부러 느끼려 해. 무슨 말이냐면. 수치스러움을 아니까 수치스러운 짓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고 수치스러운 짓을 하지 않으려는 수고가 있다는 것은 여전히 모자라기 때문에 수치스럽다는 것이지. 자기 스스로가 한 약속을 지키는 것조차 애를 써야 할 정도로 모자란 엄마란다. 그래서 오늘 해야 할 일은 오늘 그냥 해버리려고.
‘혼자 있을 때가 자신의 교양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할 절호의 기회이고,
자기의 입장이 흔들림이 없는지를 알아볼 순간이며,
자신의 능력이 강력한지를 알 수 있는 때이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뭔가를 이뤄야 하지만
이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서여야 한다.
끊임없는 자기 단속만이
조금씩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이다(주16).’
자기(自己). 자신을 스스로 세우는 것.
자조(自助). 자기부터 먼저 돕는 것.
엄마는 ‘존재감(存在感)’이란 단어가 여전히 생소하단다. 존재감은 ‘나 스스로 나로서 존재하는 느낌’이야. 자기 내면에 자신이 단단하게 있어야 할 자리가 없다면 존재감은 없거나 부실한 것이야. 그런 사람이 내부의 빈약함을 오히려 외부의 강인함으로 감추려 하지. 그래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내면에 조용히, 하지만 단단하게 구축시키는 것이 자기(自己)와 자조(自助)를 실천하는 것이란다. 사실 어떨 때엔 ‘힘들어 죽을 지경’이어서 짜증도 나. 하지만, 중년의 엄마가 ‘차원높은 삶’을 살기로 결단했으니까 당분간은 불파만지파참하고 신독하면서 자기와 자조로서 존재감을 단단히 세우는 엄마가 되어 볼게. 그러지 않으면 엄마는 아래의 글처럼 너희들에게 천치가 될 지도 모르거든. 엄마는 망각하면서 ‘너희에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라고 말하는 천치는 싫거든.
‘자기가 착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을 망각하고
다른 자들을 그리로 지도하며 훈련시키는 것으로
자기 책임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자는 천치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기 일에 건전하고 유쾌하게 살아가기를 저버리고
그 힘으로 남에게 봉사하려고 하는 자는,
내 생각으로는 비뚤어지고 좋지 않은 길을 잡은 것이다(주17).’
지금까지 엄마가 7가지의 기준을 지키기 위한 스스로와의 약속을 너에게 공개하고 다짐했네. 민망하기도 하지만 이로써 엄마는 더 큰 걸음을 걸은 것이야.
사실 ‘우주의 중심이 나’라고 느낀 한순간이 있었단다. 그 순간 엄마의 심장은 터질 듯이 부풀었어. 롤러코스터를 타듯 저 하늘 꼭대기에서 꺄~~악 소리치며 내려오는 짜릿함도 느꼈어. 하지만 매번 하루하루가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 어느 순간부터 텅 빈 공허함과 내가 아닌 내 삶의 무료함에 엄마는 힘들었거든.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 존재감이라는 것이 엄마 내면에 아주 얇은 막처럼 존재했었기에 두텁게 만들어줄 필요가 있었지. 남의 인정이나 바라고 남의 눈치보며 남들부터 챙기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그리고 어떤 문제앞에서 쩔쩔매는 엄마가 아니라, 엄마 자체로서 단단한 사람이 되어 진정으로 이타가 되는 엄마가 되어 보려고.
자기(自己)가 되어야 이타(利他)가 되는 것이야. 자기 자신도 잘 못 챙기고 스스로와의 약속도 못 지키고 손에 쥔 것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챙기고 세상과의 약속을 지키고 누군가에게 뭔가를 내놓을 수 있겠니. 무엇보다 우선인 것은 자기 자신부터 세우는 것이야.
자기(自己)를 꼭 명심해 주길 바란다.
기준을 세우고 실천하기 위한 기준을 또 이렇게 네게 공개하는 엄마를 보니 어떠니? 일상을 살면서 기준을 지니고 사는 삶이랑 그냥저냥 사는 삶이랑은 분명 차이가 날 거야. 아니 차원이 다를 거야. 기준을 지닌 엄마와 그 이전의 엄마를 너는 다 봤으니 더 잘 알겠지? 어떠니?
너도 그래라. 기준을 지니고 살면 ‘격’이 다를 거야. ‘품’이 다를 것이고. 인격, 인품말이야. 책을 읽은 후부터 엄마는 기준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실행해 왔어. 그랬더니 복잡했던 것들이 단순해지고 걱정했던 것들이 오지 않더라고. 대응이 아니라 대비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이제는 남들이 세워놓은 기준,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이 아닌, 엄마만의 기준, 세상이 바라는 엄마로 기준을 지니고 살거야. 여전히 배우고 깨달아가는 중이지만 계속 공부하며 더 명철한 어른이 될 거야.
마지막으로 버섯 이야기를 하나 해줄게.
신영복의 ‘담론’에 나온 이야기야.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는데 버섯 군락지가 있었지. 아버지는 그 버섯 중 하나를 지목해서 “얘야, 이것은 독버섯이야!”하고 가르쳐줬어. 독버섯이라고 지목된 버섯은 충격으로 쓰러졌지. 옆에 있던 친구 버섯이 그를 위로해. 그가 베푼 친절과 우정을 들어 절대 독버섯이 아니라고 말하지. 그러나 정확하게 지목되었기에 위로가 되질 않았어. 그런데 친구가 하는 말이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라고 했어.
엄마는 이 글을 읽고 아버지에게 지목받은 버섯에서 엄마를 보는 것 같았어. 엄마의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말에 많이 흔들리기도 했었거든. 그래서 이 동화가 다른 사람의 무심한 말보다는 자신의 뚜렷한 방향이나 관점을 흔들림 없이 고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어. 흔들림 없이 고수하는 그것이 자신의 기준을 만드는 틀이 되는 것이야.
너에게도 책이나 경험, 네 일상의 모든 것들을 함축시켜
너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 보길 바란다.
네 삶의 방향에 올곧게 중심을 잡아줄 기준.
기준이 높으면 수준이 당연히 높아지겠지?
기준은 기분이 아니라 기본에 의해서 세워야 한단다.
이러한 기준은
너의 기세를 세워 기적을 불러올 것이야.
‘가장 마음에 드는 별을 골라서 가장 아름다운 가지 끝(주19)’에 너를 바로 살게 할 기준 몇가지를 튼튼하게 세우렴. 그럼 네 삶에서 네가 바라는 모든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릴 것이야.
주1,15>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핸리데이빗소로우, 오래된미래, 2005.
주2,9,17> 나는 무엇을 아는가, 몽테뉴, 동서문화사, 2005.
주3,11,12> 엄마의 유산, 김주원, 건율원, 2024.
주4> 깊은 마음의 생태학, 김우창, 김영사, 2014.
주5> 타이탄의 도구들, 팀페리스, 토네이도, 2024.
주6> 블랙스완, 나심탈레브, 동녘사이언스,2018.
주7> 에머슨 수상록, 랄프왈도에머슨, 서문당, 2014.
주8> 아이젠하우워의 시간관리 메트릭스에서 중요도와 긴급성으로 좌표 평면도에서 1사분면의 중요 및 긴급은 우선 처리 2사분면의 중요및 미긴급은 일정을 계획하고, 3사분면의 미중요및 긴급은 위임을 4사분면의 미중요및 미긴급은 시간을 나눌 때 제거한다.
주10> 스킨인더게임, 나심탈레브, 비즈니스북스, 2019.
주13,14> 자기 신뢰 철학, 랄프왈도에머슨, 동서문화사, 2020.
주16>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쑤린, 다연, 2021.
주18> 담론, 신영복, 돌베개, 2015. 네델란드 의사이며 작가인 반 에덴의 동화 ‘어린 요한’ 내용 발췌.
https://guhnyulwon.wixsite.com/my-site-2/motherslegacy
[지담연재]
월 5:00a.m. [짧은 깊이]
화 5:00a.m. [엄마의 유산]
수 5:00a.m. [필사 - 사유의 손끝에 철학을 품다]
목 5:00a.m. [영혼의 노래]
금 5:00a.m. [나는 시골이 좋습니다.]
토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일 5:00a.m. [조용한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