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둔과 예지는
인생에서 재앙으로 생긴 불행을 참아내는 마음과 결단성에서 같은 점에 도달한다.
현자들은 악을 제하고 지배한다.
우둔한 자는 악을 모른다.
후자는 말하자면 사건에 못 미쳐 있고,
전자는 그 너머에 있다.
현자들은 사건들의 성질을 잘 저울질해 보고 고찰하고 나서
건강한 용기의 힘으로 그 위를 뛰어넘는다.
그들은 강력하고 견고한 심령을 가졌기 때문에 인생의 재앙들을 경멸하며, 발밑에 짓밟는다.
그들에게는 운명의 화살이 쏟아져 와도 도로 튀어서 끝만 뭉툭해지고,
그 신체에 아무런 자국도 남겨주지 않는다.
평범한 인간의 조건은
이 양 극단의 중간에 처해서 불행을 알아보고 느끼며 그것을 참아내지 못한다(주).
몽테뉴는
현자는 사건 너머에 두고
우둔한 자는 사건에 미치지도 못한다고 말한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고통이 오면 나는 고찰하는가, 흔들리는가.
감정에 빠지면 나는 빠져드는가, 해석하는가.
사건을 넘어서지 못하는
우둔한 자로 보낸 시간이 길다.
그 안에서 버티는 데에 급급했던 시간들.
재앙까지는 아니지만 예상치 못한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흔들렸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하루 앞에서 좌절도 많았었다.
늘 버텼고 견뎠다.
그냥 '해내는' 힘이 약했던 것이다.
넘어서긴 했지만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 많이 단단해진 나를 느낀다.
양극은 맞닿아 있고
이러한 양극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
즉, 중용의 덕을 지키는 것이 지혜다.
몽테뉴가 말한 인간의 3층위,
무지, 평범, 지혜.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 내가 쌓아야 할 것은
초연함을 위해 끝까지 사건을, 상황을 바라보는 힘이다.
피하지 않고,
견디거나 버티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있는 힘.
우둔과 예지 사이,
그 중간 어디쯤에서 머뭇거리는 나였지만
이제 아니다.
끝까지 바라보는 사실적 지혜로
내 발밑에 무지와 우둔을
이제는 짓밟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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