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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an 13. 2024

'정신'의 정체를 고발합니다!

이기론(利己論) - Ch2. 나를 해체해보니 2

  [이기론]의 CH1. 나는 나를 해체하기로 했다. 가 2주전 끝나고 지난주부터 CH2. 나를 해체해보니가 시작됐습니다. 따라서, 지난 글들에 이어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 지담드림


'잘, 제대로' 살기 위해 '나'를 알고 싶어졌고 '나'를 알려니 '인간'을 먼저 알아야 했고 '인간'을 알려니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는데 '이성'이 뭔지 알아야 했고 '이성'을 알기 위해 인간의 몸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이성과 비스무리한 정신은, 지식은, 지성은, 지각은, 인식은, 지혜는, 의식은....


아...보이지 않지만 나를 지배하고 나를 움직이는 추동체들의 정체를 알아야만 했다. 하나씩 파고 들어보니 이 '정신'이란 녀석이 꽤 재미난 속성을 지니기에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해본다.     


고집불통이다.

이 녀석은 분간도 하기 전에 강하게 내리 박힌 것을 빼낼 줄을 모른다. 게다가 박힌 놈은 엄청난 속도로 스스로를 굳혀버려 고정관념으로까지 빠르게 진화해대니... 정신이라는 공간에는 이미 자리잡힌 잡것들이 수두룩할 듯. 그러니 이 잡것들이 자리잡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새로운 지식이 투입되지 않으면 큰일난다. 더 신속하게 더 촘촘하게 더 자극적으로 자리잡는 것을 방해하고 흩어놔야만 한다.


결코 머물게 해서는 안 될 2마리의 반려견.

편견과 선입견.

이 녀석들은 도대체 뭘 먹여 키우길래 이토록 힘이 센지 한번 자리를 틀어지간해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어디 훈련소에 보내 그 못된 성질을 고쳐야 하나.

아니면, 스스로 소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이도저도 아니면, 강한 가격으로라도 깨부숴야 하나.    

  


고마운 줄을 모른다.

정신은 신체가 이리 먹여주고 키워주는데도 늘 뛰쳐나간다. 그것도 허락없이.

세상이 그리 모든 것들을 다 알려주는데도 못 알아듣고 엄한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기 일쑤다. 그래서 ‘정신 빠진’이라 하나보다.


게다가 정신의 눈은 지금보다 더 좋은 것을 바라면서도 막상 그것이 손에 닿으면 자만에 빠져 곧장 다른 걸 찾아 자리를 이탈한다. 육체에도, 사물에도, 세상에도 고마운 줄 모르고 계속 바라기만 하는 자만한 녀석. 그래도 가끔 혼줄 나면 자기자리에 얌전하기도 한다. 정신 차리는 것이다. 정신 빠진 놈 소리 듣지 말고 정신 차리라는 소리도 듣지 않도록 혼줄나기 전에 알아서 갖춰주면 좋으련데 말이다.

     

인간 외의 모든 것들을 살펴보자.

발가벗고 태어나 누구의, 무엇의 도움 없이는 결코 생존할 수 없어 울어제치는 인간과는 달리 모든 생명있는 것들은 인간처럼 그 때만 유용한 유아어로 말을 배울 필요도, 먹을 것을 기다릴 필요도, 때에 따라 걸친 의복을 변화시킬 필요도, 재산을 축적하며 잃을까 전전긍긍할 필요도, 그 어떤 필요도 없이 그저 자연에게서 모든 것을 충당한다.      



그런데 인간의 정신은 스스로 필요한 것들을 이미 갖춰 충분한데도 더 많은 것들을 원하니 이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 것인가? 욕구? 그리 말한다면, 그것은 자연에게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 외엔 모든 것이 탐욕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우치지 못한 정신의 부실탓일테다. 제 몫에 맞게끔 자기 자리를 지켜내지 못한 채 과하게 앞서 나가는 것으로 인해


혀에는 아부와 아첨을 담고

가슴에는 불안과 조급을 담고

손에는 잡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잡히고

다리끝엔 닿않아야 할 곳의 흙이 묻으니

고마운 줄 몰라 겸손하지 못한 정신은 아마도 자체적으로 서서히 파괴의 길로 들어설지 모른다.


자연이 정해준 궤도가 있다.

정신이야말로 이 궤도에서 어긋나지 않게, 엇나가지 않게, 모든 것에 대한 ‘감사’가 먼저 채워져야 하겠다.


자기 신분을 망각한다.

서야 할 자리에 제대로 서 있어 줘야

제대로 명령을 내려 줘야

제대로 지휘해 줘야

명령받고 움직이는 혀도, 바삐 달리던 다리도 제 보폭을 조율할 텐데

잔잔하다 출렁이다 격하게 뛰는 가슴이 엉뚱한 데서 엉뚱한 박자로 뛰지 않을 텐데

세상이 주는 메세지에, 세상으로 내보내야 할 에너지에 맑은 길을 내어줄 텐데


조금만 타격이 와도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제발 자기 위치에 딱 서서 제대로 명을 내리도록 자주 세정(洗淨)시켜줄 수밖에.    

 

세정되지 않는 정신은 

분명히 영혼의 자극을 제대로 받았는데

분명히 신체도 준비 끝내고 대기 중인데

계속 삐딱선을 탄다.


도대체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걱정하는지...

도대체 무엇에 미련두고 원망하고 재단하고 재고하는지...

도대체 공기가 이 녀석에게 어떤 불치의 바이러스를 전염시켰는지...     


자기 신분을 망각한 정신은 

책임도 없고 의무도 망각한 채 주인의 삶을 그저 연명에 자족하도록 이끈다.



신뢰에 인색하다.

분명

귀가 그간 듣지 못한 것을 내 안에 들였고

가슴이 그간 느끼지 못한 것에 출렁였고

눈이 그간 담지 못한 것을 담았고

손이 그간 외면하던 것을 부여잡았음에도

정신이란 녀석은 그것을 신뢰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의심해댄다.


물론, 그 몹쓸 버릇이 위험으로부터 모든 신체를 보호할 때도 있지만 이 녀석이 수족으로 데리고 있는 오감들이 이성보다 더 본능으로 증명해낸 것이라면

정신안에 있는 관념, 이성이라는 정체를 외면하고

그저 감각으로부터의 신호를 신뢰해도 좋으련만....


어찌할까?

굳이 '현상'이라는 사태에 부딪혀야만 감각을 믿을 것인가?


분명 말하자면,

'현상'은

정신이 담고, 믿고 있는 이성을 파열시켜 파멸로 몰고가야만

정신이 자신을 버리고 순한 양이 되어 감각에 순종할 것을 알기에 


경고하건데,

정신이 신뢰하지 못하는 감각의 본능은 사태로서 신뢰에 이르리라.    

 

가끔 사기도 친다.

정신이 자신을 과신하는 것은 아마도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명제때문일테다. 이성적 사고는 정신의 수준과 깊이, 질서에 따라 좌우되는데도 불구하고 ‘생각’이 ‘이성적 사고’인 줄 착각하는 것이다.


‘이성’이 제대로 기능한다는 것은 사고의 양과 사유의 깊이에 따라 바보와 천재를 가릴만큼 그 범주가 우주만큼일텐데, 그러니까 이성적 사고에는 비이성적 사고도 함유된다는 것을, 합리에는 비합리도 충족시켜야만 합리인 것을 알아야만 할텐데 비이성을 배제한 이성, 비합리를 외면한 합리만이 ‘이성적 사고’라 간주하니 이러한 정신은 자신의 주인을 삶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고야 마는 고약한 정신인 것이다.


양이 부족하면 양을 채워야 할터인데 부족한 양을 채우기는커녕 부족한 양으로 절름거리며 바삐 움직이니

수렁에 빠지고 빠진 수렁에서 더 허우적대다 결국 삶이 늪에 빠지는 것을.....  


그러니 정신은 '줄'을 제대로 잡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것이다.

'정신줄'말이다.

놔야 할 곳에서는 놓고

잡아야 할 곳에서는 잡아야 한다.


이러한 정신이어야 지식, 이성, 지성이라 불리는 자신의 동료들이 범하는 오류에서 주인이 헤매지 않도록 의무를 다할 것이다. 이는 정신의 한쪽에 자리틀고 앉은 과거경험에만 또는 누구누구 학자들의 이론에만 근거해 주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지난 경험의 기억이 미래의 이윤으로 환원될 것이라는 과도한 사기행각은 이제 그만.

직접이든 간접이든 정신에 쌓인 이론이 작금의 현실을 나아지게 할 것이라는 사기도 그만.    

 

정신은 앞으로 모든 순간에서 잠깐 제자리에 서서 새로운 지식인지 낡은 지식인지, 이성이 함유하고 있는 인식과 관념에 도전해야 하는지 항복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결코 지나간 과거로, 남의 것으로 인간에게 지혜를 주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길이 있으니 정신은 잡고 있던 인식의 줄 대신 영혼의 줄로 옮겨타는 시도를 해야만 할 것이다.     

삶의 작은 부분을 바꾸면 우리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어린아이나 하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모두 희망하는 일을 이루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 안에 있는 영혼이 인도하는 길은 걷지 않으려고 한다(주1).


당부하건데

가끔, 아니 자주 정신의 속셈을 의심하고 결코 놀라지 않아야겠다.

눈과 귀가 정신을 이길 때가 종종 있다.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 할 것이고

들리는 것을 가려내지 못한 채 있는 그대로의 실체만을 쫒는 바보같은 짓을 할 때가 있다.

이 때 정신이 이들에게 패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의 인식을 파괴할 정신 속에 사는 위대한 전사는 지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알려준대로 ‘신체가 멀쩡한데 정신이 항복(주2)’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정신이 멀쩡하면 신체는 바로 백기를 든다.

의심하는 정신이 의심없는 정신을 지배하도록 제발 제대로 줄을 잡고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세상이 가끔 정신이 번쩍 들도록 놀래키기도 하겠지만 결코 그런 일에 흔들려서도 안될 것이다. 신체가 받는 수많은 위협적인 사태들로 가끔 정신이 혼미하기도 하겠지만 이는 결코 정신을 경멸하려거나 저 아래로 떨구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으로 새로운 세계가 진입하려는 시도라 여겨야 한다. 움찔 놀라서 주춤거리는 쫄보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감정에 조롱당하지 않는 정신,

사태에 쫄아버리지 않는 정신,

영혼에 이기려하지 않는 정신.

신체와 영혼의 매개체로 자기 자리를 지키는 정신이라면

충분히 세상의 위기와 위협으로부터 주인의 삶을 지켜줄 위력을 지닌 정신인 것이다.


그래도 고맙다.

휘청대는 것이야 바람이 강하니 어쩔 수 없다치고

삐딱하게 구는 것이야 '지랄총량의 법칙'을 준수했기 때문이라 치고

자리를 이탈하는 것이야 지체보다 더 큰 타격때문이라 치고

신뢰에 인색한 것도 사태를 겪어보지 않은 무지때문이라 치고

과한 것에도 보폭조절이 난감한 때가 있어서라고 치자.


휘청대다 삐딱하다 급기야 자리를 이탈해 의심병과 탐욕과 나태에 괴롭더라도

책임감있게 서야 할 그 자리로 다시 되돌아와 신체와 영혼의 연결과 연동, 연합에 사기치지 않고 지장주지 않으니 참 고맙다.     


끝까지 버텨야 할 명확한 이유를 알려주마

정신의 주인인 나는 오늘 나의 정신에게 명령하겠다.

나의 영혼이 내 숨결을 모두 세상에 뿌리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버텨야만 한다.

신체가 잠으로 쉴 때조차 수많은 상(像)들이 정신을 쉬지 못하게 하더라도 버텨야만 한다.

정신이 결코 망가지면 안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신이 굳어지면 영혼의 자극이 들어갈 틈이 없어 맑아야 할 영혼은 혼탁하다 곪고 썪어

혀는 몹쓸 말들을 뱉어낼 것이고

눈과 귀는 분별없는 흡입을 해댈 것이며

피와 살도 덩달아 자신들의 통로를 막아버리고

이성은 불구가 되어 삶을 제대로 안내하지 못하니

결국 뇌부터 손과 발, 혀를 비롯한 모든 신체가 주인의 삶을 농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지금까지 키워온 주인의 모든 이력의 결과들이 한 순간에 어딘가에서 탕진될 터이니

신체가 쓰러져도 정신은 살아있어야만 한다.

신체가 살아있는 동안 정신을 키워준 그 몫까지 해낼 정도로 정신은 강인하게 끝까지 버텨줘야만 한다.


그렇게 신체는 시간과 비례하여 노쇠의 길을 가더라도

정신만큼은 미동없이 자기 자리에 서서

끝까지 주인의 삶이 아름답도록 피워내야만 한다.

끝까지 주인의 인.간.다.움.을 흐트러뜨리지 않아야만 한다.

끝까지 주인의 쓰.임.이 세상에 유용하도록 지켜내야만 한다.


그러니,

정신 너는!

주인인 나의 허락이 떨어져야

나에게서 해방되는,

그런 존재여야만 하겠다.


주1>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레프톨스토이, 2007, 조화로운 삶

주2> 황제의 철학,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이명식역, 2004,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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