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제주의 맛
요새 제주 물가가 비싸다는 얘기가 많다. 물가가 전국적으로 오르기도 했고, 제주는 관광지라 바가지를 씌우는 곳도 많은 모양이다. 나도 제주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외지인 티가 나니 바가지를 쓴 적도 있고,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 그리고 기대 이하의 맛에 실망했던 적도 많지만 제주에 살다 보니 맛있고 가격도 적절한 현지인 맛집을 알게 되었다. 현지인 맛집은 다음에 알아보고 이번에는 제주 재료를 이용한 집밥을 알아보겠다.
외식 대신 집밥을 먹는 것은 비용절감도 되며,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건강하고 귀한 재료들을 접할 수 있어 맛있는 음식들을 맛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조리사 자격증이 없으시지만 요리를 즐겨하시는데 어머니도 제주에 살면서 신선하고 귀한 재료들을 접할 수 있어 좋아하셨다.
제주음식이 귤 하고 흑돼지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제주는 4면이 바다인 섬이라 생선(옥돔, 벵에돔, 갈치, 다금바리, 방어 등)과 해산물(딱새우, 성게, 톳, 보말, 뿔소라)이 많으며 제주에서만 잡히는 생선들도 많다. 귤 중에서도 타 지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청귤도 있다. 그리고 어디에든 있지만 특히 제주의 구황작물(구좌당근, 무, 토란 등)과 시금치, 우도 땅콩과 같은 재료들은 품질이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보통 부모님이 장 보러 가면 따라다니고 요리하는 것도 어깨너머로 보기만 했지만 어디서 장을 보는지, 어떻게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하는지를 배웠고, 제주음식을 피부로 맛보며 제주와 더 가까워졌다.
제주는 바닷가다 보니 생선이 많이 난다. 서울에서도 생선은 먹을 수 있지만 잡은 지 얼마 안 된 생선은 더 신선하달까. 부모님은 보통 동문시장, 민속오일장시장을 다니며 생선을 사셨는데 제주에서 지인을 사귀게 되면 운이 좋은 날엔 직접 잡으신 생선을 받게 되기도 한다. 제주엔 취미로 낚시를 하는 사람도 많고 배가 있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제주사람들은 옥돔만을 생선으로 칠 정도로 옥돔은 제주를 대표하는 생선이다. 옥돔은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랐고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한 귀한 생선이라고 한다. 식당에서도 가끔 먹곤 했는데 집에서도 어머니가 집에서 해주셨다. 사진은 옥돔에 직접 만드신 바질페스토와 각종 야채들을 오븐에 구운 요리이다.
흰살생선인 가자미, 동태 같은 생선들과는 다른 맛이었고 살이 두껍고 좋았다. 옥돔은 살이 하얗고 부드러우며 가시를 발라내기도 쉽고 무엇보다 맛이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생선 중 하나이다.
사실 나는 갈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시가 너무 많고 갈치조림은 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가다 맛있는 갈치가 있으면 먹는다. 예전에 부산여행 갔을 때 먹었던 갈치도 맛있었는데 이 제주갈치도 맛있었다. 여느 생선과 같이 갈치에는 단백질, 필수아미노산, 비타민, 무기질 등 영양분이 풍부하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다.
1-3). 겨울철 대방어회
이 생선 또한 제주에서 만난 인연으로 받은 생선이다. 겨울 대방어철에 방어를 많이 잡았다며 한 분이 한 마리를 주셨는데 덕분에 바로바로 잡은 싱싱한 회를 먹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어설프게 집에서 회를 뜨셨고 무채를 깔았는데 갑자기 잔칫날이 된 것만 같았다. 당시 대방어 축제 기간이었는데 축제를 가지 못해 아쉬웠는데 뜻밖에 횡재를 얻게 되어 좋았다.
성게알은 저칼로리 고단백에 비타민 A, B가 풍부하며 철분이 많아 건강에도 좋다. 맛도 달달하고 부드럽다.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신 성게알 요리에는 식당에서보다 성게알이 많이 들어가 더 맛있었다. 두 번째 사진은 성게알을 넣은 비빔밥, 오른쪽은 성게알이 들어간 미역국이다. 성게알이 고소하니 밥과 어우러져 더 맛있었고, 미역국에도 들어가니 바다를 먹는 것 같았다.
가장 왼쪽 사진은 해풍 맞은 시금치와 성게알을 넣어 만든 시금치 된장국이다. 금치는 비타민 A가 들어가 눈에 좋고 철분, 식이섬유가 풍부해 몸에도 좋은데 제주 시금치는 품질이 더 뛰어나다. 해풍 맞은 시금치가 뭐 그리 특별하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남해지방에서 나는 시금치는 겨울 해풍을 맞으며 추운 기운에 살아남기 위해 체내의 전분을 당으로 변환시켜 단맛이 난다. 직접 먹어본 사람으로서 시금치를 원래 좋아하기도 하지만 '해풍 맞은 시금치'는 정말 더 맛있었다. 어머니는 시금치가 늦은 여름철까지 시금치를 먹기 위해 늦겨울이 되면 시금치를 얼려 저장해 놓으셨다. 이 해풍 맞은 시금치와 된장, 그리고 성게알을 듬뿍 넣으면 시금치 성게알 된장국이 된다.
제주 대부분의 카페에 가면 시그니처 메뉴로 청귤이 들어간 청귤에이드나 청귤차, 청귤스무디를 접할 수 있다. 청귤은 덜 익은 귤이 아니라 초록색 귤인데 맛은 시큼하다. 나도 제주에서 청귤을 처음 먹어봤다.
제주에 지인을 사귀면 운 좋은 날엔 귤과 생선을 받기도 한다. 생각지 못하게 너무 많은 청귤을 받아오신 어머니는 청귤로 청귤청을 담그셨다. 비율은 청귤:설탕:올리고당=1:0.5:0.5로 만드셨다고 한다. 몇 개의 청귤은 동결건조 시켜 차를 마실 때 살짝 띄워 카페에서 즐기는 듯한 느낌을 냈다.
제주에 여행으로만 왔을 때는 보통 해산물이나 흑돼지를 먹지 구황작물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주 구황작물은 '구좌당근', '초당옥수수', '우도 땅콩' 등 지역 이름이 따로 붙을 만큼 유명하다. 실제로 맛도 좋았다. 그 이유는 제주 밭의 흙은 화산의 다양한 분출물이 섞여 화산회토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물 빠짐이 좋고 작물에 좋은 성분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주에서 유기농 재료를 구하기 위해 한살림을 들리곤 했는데 이곳 앞에는 '자연 그대로 농민장터'라고 해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이름 대로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 가득했고, 그림책에서나 봤던 허수아비도 있었다.
사진에서와 같이 신선한 재료를 팔았고, 유기농 차와 에코백도 팔고 있었다. 그럼 이곳에서 산 재료들로 만든 음식을 살펴보겠다.
우리나라 당근의 65%가 생산되는 곳이 제주고, 제주당근의 90%는 구좌읍에서 생산된다. 나는 대부분의 야채를 좋아하는데 당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구좌당근은 생으로 당근스틱만 해서도 먹을 정도로 맛있었고, 찾게 되었다.
왼쪽 사진은 당근이 들어간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다이어트 편에서도 요리로 다룬 적이 있다. 당근은 눈건강에 좋고 칼로리가 낮아 건강에도 좋은데 비빔밥에 넣으니 색깔도 보기 좋았다.
오른쪽은 당근라페인데 채 썬 후 올리브오일, 화이트발사믹, 머스터드에 버무린 프랑스식 샐러드이다. 이 당근라페를 빵이나 샐러드, 고기와 같이 먹어도 좋다.
제주 무는 더 아삭하고 달콤하다. 무는 제주 농작물 중 가장 넓은 면적에서 재배한다고 한다.
제주 무는 더 단단하여 무로 무밥을 지어먹거나 생선조림을 하여도 무르지 않아 무의 단맛이 입안에 느껴졌다.
어렸을 때부터 소화 안될 때 먹곤 했던 동치미를 어머니가 제주무로 담가 기대되고 있다.
제주도 고깃집에 가면 고사리와 같이 주는 곳이 종종 있는데 집에서도 따라 해 보았다. 제주도는 3월에 고사리 장마가 있는데 고사리 장마가 있기 전까지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이 많다. 제주 고사리는 육지고사리에 비해 더 부드러웠다.
육지에서의 땅콩보다 우도땅콩은 크기가 작고 고소하다. 우도땅콩우 단백질, 미네랄,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포함되어 콜레스테롤이 조절이 가능하다. 보통 땅콩은 볶아먹거나 삶아 먹었었는데 우도땅콩햇땅콩은 밥에 올려 먹었을 때 씹히는 맛도 있고 달아 좋았다.
지금까지 제주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음식을 살펴보았다. 밥상에 제주가 한가득 담긴 느낌이다. 독자분들 맛있는 식사 하기를 바라고 제주에 여행하거나 제주살이를 할 기회가 된다면 좋은 정보가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