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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인 Hye in Choi Oct 03. 2022

자기 만의 방: 부엌과 작업실

노동의 세계, ‘살림’에서 작업의 영역, ‘그림’으로


‘자기 만의 방’에 관해 생각해본다. 집에서는 ‘부엌’과 책상이 있는 거실 한 켠, 집을 나서면 ‘작업실’이란 공간이 나만의 방이다. 무소유를 주장하셨던 법정 스님도 깨끗한 빈 방에 대한 공간에 대한 욕심은 버리기 어려웠다고 고백하셨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 만의 방』을 읽고 그림을 그렸다. 장지에 붉은 과슈, 세필로 선을 긋고 점을 찍었다. 점이 없는 텅 빈 방도 있고 터질 듯 꽉 찬 방 사이에 각각 다른 크기의 점들이 있다. 나의 방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면서 점을 찍었다. 마음의 상황에 따라 느끼는 공간의 크기도 달라지겠지.


<자기 만의 방>  장지에 과슈, 안료_43x33cm_2019


코로나 시기로 인해 무엇이 달라졌냐는 질문을 받았다. 자연의 놀라운 회복력, 삶과 죽음에 대한 공포 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두 가지가 생각났다. 첫 번째는 ‘공간’의 재인식이다. ‘작업실과 부엌’이라는 나의 생활공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공기처럼 소중함을 몰랐던 ‘작업실’은 지난 몇 년간 나에게 위안을 준 곳이다. ‘공간’이 곧 나다. 내 아이덴티티는 ‘공간’으로 확인된다. 그 공간에서 추구하는 고유의 콘텐츠가 있어야 공간이 유지된다. ‘작업실’이란 온전한 나만의 공간에서 의미와 내용이 담긴 것을 창출한다. 


작업실에 들어서면 일상의 번잡함에서 생기는 여러 ‘잡념’들이 비일상의 ‘무심함’ 상태로 사라진다. 예술가 이우환은 잡념은 ‘양(陽)’, 무심함을 ‘음(陰)’으로 표현했는데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념은 ‘+’의 성질로 자꾸 늘어나고 무심함은 ‘-’의 성질로 빼야 한다. 실생활에서 음식이나 체질에 많이 비유하는 음양 개념을 '일상과 비일상'에 적용했다는 점이 신선했다. 작업 외에 잡념을 버리고 무심한 상태를 추구하는 다른 방법으로 요가가 있다. 이는 자기 몸과 대화하는 혼자만의 수련이고 완성이다. 하지만 그림이 ‘자기만의’ 완성이 되면 이는 우아한 취미 생활로 전락할 위험이 있어 늘 경계해야 할 점이다. 어려운 일이다.


작업실에 들어서면 일상의 분주한 잡념에서 벗어나 무심함으로  <순간, 잠수> 한다. 장지에 소목 염색, 백토, 안료_30x30cm_2008


혼자 있을 때 끄적거리며 <자라나는 생각들>을 형상화하였다. 순지에 과슈, 목탄, 안료_30x30cm_2008


또 다른 나의 활동 공간은 ‘부엌’이다. 이곳은 혼자만의 작업실과 달리 온 가족이 북적이는 생활공간이다(개인적으로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식탁과 조지아 오키프의 부엌을 좋아한다. 오키프의 건강한 음식도 따라 해보고 싶다). 


부엌은 일상 속 노동의 세계라 벗어나고 싶었지만 돌이켜보면 평론가의 지적대로 역설적으로 나에게 작업의 영역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해주었다. 보편적 일상에서 씻고, 다듬고, 자르고, 데치고, 먹었던 채소 · 곡식 · 과일과의 대면의 순간들. 이는 익숙한 존재에서 빠져나오는 출구이자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었다. 부엌엔 날것과 익힌 식재료가 뒤섞여 있고 조리 기구의 진화, 도구와 음식 취향, 가족에 대한 사랑이 녹아 있는 곳이다. ‘식구(食口)’라는 한자는 생각하면 할수록 오묘한 단어다. 직역하면 ‘먹는 입’, 풀어쓰면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 먹거리를 만들면서 아이를 키우는, 다람쥐 쳇바귀처럼 돌고도는 삶 속의 ‘살림’이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저마다의 생존 방식> 장지에 아크릴, 안료_43x33cm_2019  부엌에서 강낭콩의 발아를 목격했다. 작업실에서 이를 그렸다.


두 번째 달라진 점은 ‘소통’의 확장이다. 2021년 7월 <양생(養生)> 개인전 때 갤러리 도올에서 인스타그램을 권유했다. 당시 대면을 꺼렸던 사회적 분위기로 전시장과 거리가 정말 한산했다(저녁식사가 2인으로 제한된 코로나 봉쇄의 정점 시기였다). 어렵게 계정을 만들어 전시 소식을 알렸고 결과적으로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관객과 컬렉터를 만날 수 있었다. 제약이 많은 물리적 고립 상태는 소셜 네트워크로 더 연결되었다. 새로운 형식의 만남이었다. 스스로 ‘쇄국정책’을 펴고 있었나… 라는 반성도 하면서 많이 배웠다. 인간은 개별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였다.


<동지(冬至)>는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어두움이 극에 이르면 빛이 다시 태동한다. 일상이, 작업이 힘들 때마다 이 문구를 되새긴다.


좋아하는 주역의 문구(궁즉변, 변즉통, 통즉가구)와 공자님 말씀이자 나의 이름에 들어가는 '인(仁)'을 수행하듯 써보았다.  나무 패널에 혼합재료_23x23cm_1997


부엌과 작업실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부엌에서는 인간의 ‘몸’에 양분을 주는 음식을, 작업실에서는 ‘마음’에 위안과 공감을 주는 작품을 만든다. 전혀 연관 없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부엌과 작업실'은 실은 연결되어 있었다. 부엌 속 ‘살림’이 작업실 속 ‘그림’ 속으로 들어왔다. 나만의, 『자기 만의 방』이 되었다.


<점으로부터> 순지에 먹_70x130cm_1997  결혼 후 모든 것들이 새로운 시작의 연속이었다. 하염없이 점만 찍었던, 낯선 도시 뉴욕에서 처음 그린 그림이다.


<시작점> 장지에 과슈_43x33cm_2019 하나의 점, 뿌리에서 시작되어 각자 원하는 방향대로,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세필로  혈류(血流)처럼 표현하였다.


http://www.hyeincho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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