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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인 Hye in Choi Sep 09. 2022

물개를 닮은 가지

다양한 변신

물개를 닮은 가지. 식물이지만 동물의 느낌이 있다.


쑥이나 토마토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음식이었고 가지는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맛을 알게 된 식재료다. 결혼 후 약 6년간 시부모님과 살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시어머니의 가지찜 요리를 먹고 물컹한 가지가 맛있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가지는 생김새도, ‘eggplant’라는 영문 이름도 참 묘하다. 개량되기 전 가지는 달걀 모양이어서 이름이 그렇게 되었다 하던데… 표면은 물개 같이 번들거리고 질감은 물컹하면서도 탄탄하다. 색도 빨강과 파랑의 혼합인 보라색이고 식물인데 동물 같은, 이중적 느낌이 있다.


대학교 때 본인이 좋아하는 동물을 선택해 그리는 수업이 있었는데 나는 당시 물개를 그렸다. 과천 동물원에서 사진도 찍고 스케치했던 기억 때문인지 가지를 볼 때마다 통통한 볼륨감으로 물개가 연상이 된다. 상상은 자유니까..^^ 푹 익히면 익힌 대로, 말려 먹으면 무 말랭이처럼 쫄깃한 질감이 있어 내가 애정 하는 말린 채소 중 하나이다.
 
가지의 다양함과 친화력에 요리할 때마다 감탄하곤 한다. 먼저 오이처럼 기다란 가지도 있고 노지 호박처럼 둥그런 가지, 아기 엉덩이 같은 통통한 가지 등등 유머러스한 형태에서 눈이 즐겁다. 예전에 일본 동경의 한 시장에서 엄청 다양한 가지를 보고 플라스틱 음식 모형으로 착각했던 기억도 있다.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보이기도 한다. 야행성 식재료인 가지는 성질이 차서 꼭 익혀 먹어야 한다.


두 개의 통통한 가지는 닮은 듯하면서도 닮지 않은, 부부 관계 같기도 하다.


장지에 백토, 안료를 사용해 완숙과 미완숙 상태로 엉겨있는 가지 덩어리를 표현하였다. 


기존 무배경에 그린 가지와 달리 풍경 속에 놓인 두 개의 가지 그림. 작업실에서 현재 진행 중이다.


가지는 야행성 음식으로 수분보다 공기가 많아 폭신폭신하다.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기름을 만나 영양의 시너지를 일으키는, 익혀 먹는 이 채소는 들기름을 써서 된장, 들깨 가루를 넣으면 사찰 음식 같은 정갈한 반찬으로, 올리브유와 토마토, 레몬과 만나면 지중해식 메인 요리로, 치즈를 살짝 뿌려 오븐에 구우면 애피타이저로, 바삭 튀기면 중국 음식으로 다양한 맛을 선사한다. 백반처럼 소박하기도 하고 와인 안주로 우아하기도 하고 본능에 충실한 원초적 느낌도 있고…수더분함과 세련됨이 공존하는, 뭔가 시도해보고 싶은, 동•서양에서 사랑받는 재미있는 채소다.
 
요즘 제철을 맞아 가지가 냉장고에 그득한데, 트랜스포머처럼 무궁무진 변신하는 이 재료로 초여름 주말 식탁을 어떻게 장식해 볼까나.


레몬 올리유를 흡수한 지중해식 버전의 가지 요리. 붉은 토마토 버전과 초록 파, 귀리밥 버전이다.


http://hyeincho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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