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를 가지고 싶어 우리 부부가 노력한 지 2년 6개월. 부부가 정상적인 생활을 했을 때 1년 안에 아이가 가져지지 않으면 난임이라고 한다. 우린 아직 30대 초반인데, 그리고 첫째도 쉽게 가지고 쉽게 낳았는데 우리가 난임부부라니..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노력하고 기다렸던 지난 2년 6개월 동안 임신이 한 번도 안 된 것은 아니다. 두 차례,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확인했었다. 그중 첫 번째는 두 줄을 확인 한 다음 날, 늦은 생리가 찾아왔다. 5주 차 화학적 유산이었다. 두 번째로 두 줄을 확인했을 때는 병원도 예약하고, 피검사까지 해서 임신 확인을 받았었다. 드디어 우리에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둘째가 찾아와 주었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8주 차에 접어들기 전 날, 피가 비치기 시작하더니 그 양이 점점 늘었고 심한 복통이 시작되었다. 초음파 예약 날짜를 급하게 당겨 초음파를 보러 갔다. 초음파로 확인한 내 자궁에는 텅 빈 아기집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다른 대처가 있지 않았을까? 임신 5주 차부터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하고, 혹시나 문제가 있는 것 같으면 언제든지 의사를 만나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있지 않았을까? 미국은 임신을 하더라도 8주 이후로 초음파 예약을 잡아준다. 의사와 만나는 건 10주는 되어야 한다. 피가 나오기 시작하고 유산이 진행되는 것 같은데도 병원에서는 당일 예약을 잡아주지 않았다. 복통이 혹시 많이 심하면 응급실에 가라는 것이 다였다. 나는 결국 아이를 완전히 잃고 나서야 의사를 만났고, 의사와의 첫 진료에서 ‘유산 확인’을 했다. 지난번 5주 차 화학적 유산과는 상실감이 매우 달랐다. 텅 비어있던 아기집을 초음파로 봐서였을까.. 조금 더 긴 시간을 함께 해서였을까.. 일찌감치 태명을 짓고 불러주어서였을까.. 딸 앞에서 애써 씩씩한 척하려 노력했지만, 그날 밤, 그리고 그다음 날 밤, 자려고 누웠을 때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조심하지 않고 며칠 전에 무거운 택배를 옮겨서 그런 건 아닐까? 잘 품어주지 못한 엄마를 찾아온 아기천사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눈물이 온 베개를 적셨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해 여름, 비자 발급을 위해 한국에 방문했다. 마침 남편과 아이의 여름방학이기도 해서 두 달 가까이 되는 긴 방문이었다. 그리고 친한 언니에게서 ‘인공 수정’을 권유받았다. 마침 딱 생리가 시작되었기에 바로 난임병원 예약을 잡았고, 미국에 돌아가기 전에 인공수정을 한 차례 시도하고 결과까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타이밍이었다. 철저히 금주하고, 몸에 좋다는 것들 위주로 먹으며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 호르몬제를 먹고, 배에 직접 주사도 놓고, 난포가 잘 크고 있는지 초음파를 보러 자주 병원에 방문했다. 인공수정 당일, 시술 자체는 아주 빠르게 끝이 났고 2주 간의 길고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배가 콕콕 쑤시는 증상이 이틀 정도 있어 이번에는 진짜 임신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되었다. 찾아보니 그 시기에 ‘착상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임신을 확인하는 피검사 날, 나는 집에서 임신테스트기를 하지 않고 병원에 갔다. 임신테스트기로 매번 한 줄을 보고 깊이 실망했기에, 또 그와 같은 실망을 느끼기 싫어서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병원에 가서 오전에 혈액 채취를 했고, 점심쯤에 전화로 결과를 알려주신다 했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백화점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난임 병원이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고, 만약 이렇게 둘째가 생긴다면 이렇게 힘들게 널 가졌다는 신화적인 이야기 중 한 장면이 되지 않을까 싶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00 병원 담당 의사 000입니다. 피검사 결과 비임신입니다.”
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나도 모르게 너무나도 큰 기대를 하고 있었나 보다. ’ 인공수정 한 번 만에 되는 건 로또래. 안될 수도 있어.‘라고 늘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사실은 정말, 정말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나 보다. 전화를 끊고 남은 밥을 무슨 맛으로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멍하고 슬펐다.
미국으로 돌아가서 난임병원을 다니며 임신을 준비하기엔 우리 가족의 경제적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당장 차를 한 대 더 사야 하고, 돈을 모아 집을 사야 한다. 남편이 벌어오는 수입으로 생활이 빠듯한데 거기에 미국의 비싼 병원비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다. 어쩌면 우리에게 둘째 아이는 영영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마음을 놓아야겠다. 몇 년 전 아주 이른 나이에, 쉽게 찾아와 준 우리 딸에게 고맙고, 그 딸 하나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키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