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신부전에 권여선의 「재」를 처방합니다
1.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절편과 식혜, 누룽지와 순두부, 데친 브로콜리와 양배추에 연한 초고추장 또는 발사믹소스……’ 요즘 내 머릿속은 온통 먹는 생각뿐이다. 학교 개강을 앞두고 바뀐 정보처리시스템이나 학사일정을 확인하면서도, 틈만 나면 ‘뭐 먹지?’라는 생각에 꽂힌다. 머릿속으로 냉장고를 스캔하고, 언제 먹어도 좋은 도토리묵과 두유가 남아 있으면 안심이 된다. 냉장고 한켠에는 소금 간을 하지 않은 무생채가 한 통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옆에는 저염 간장과 저염 소스가 구비되어 있다. 책상 위에도 병원 진료 후 받은 영수증과 환자교육용책자가 아무렇게나 쌓여가고 있다. 이번 겨울 나는 만성신부전 3단계 진단을 받았고, 포털사이트에 있는 ‘신장병환우회카페’에 가입했다. 카페에 올라오는 내용 중에서도 무엇을 먹으면 좋은지, 이런 식재료는 어떻게 요리하면 신장병 환자가 먹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정보가 가장 유용하다. 이런 카페에는 광고도 환자가 되면 알아야 하는 환자 전용 식사 대용품이나 전문병원에 관한 것들이 주로 올라온다.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데 무언가 툭 떨어졌다. 국수집 보너스 푸른 용지였다. 열 개의 칸 중 마지막 칸만 비어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 빈칸은 그가 들어가 채워야 할 병실의 축도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홉 칸에 찍힌 붉은 무늬 스탬프는 작은 병실에서 저마다 몸을 꿈틀거리며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와 창을 향해 기어가는 벌레 존재의 궤적처럼도 보였다. 아무 기댈 곳도 없고 아무 쥘 것도 남지 않은 이제 와서야 그는 비로소 겉돌던 세상의 틀 속에 겨우 들어앉게 된 듯한 느낌이었다. 회오리치던 그의 가르마를 누군가 단정히 잡아준 것만 같았다.
(「재」, 『아직 멀었다는 말』, 문학동네, 2020년, 220쪽)
동네 내과에서 소변과 혈액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선생님은 TV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말씀하셨다. “큰 병원 가서 조직검사를 받아보세요.” 의사선생님은 긴 말을 하지 않겠다는 눈치였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랬다. “어느 병원에 가면 좋을까요?” 아무 데나 가셔도 된다는 하나마나한 대화를 나누고 내과를 나왔는데, 나는 검사결과지의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후 2박3일 입원해서 조직검사를 받고, 신장병 관련 책을 두 권 읽고, 자가면역계 질환인 IGA 신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나는 아직도 어리둥절하다. 혈액 투석과 신장 이식이라는 말이 나와 무관한 말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신장은 한 번 망가지면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이 공포로 다가오지만,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는 이제 무엇을 하지 못하고, 무엇을 해야 하지? 나는 두뇌회로가 고장 난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두 달 내내 잠만 잤다. 잘수록 잠이 늘었고, 자다보니 환자 비슷한 모습이 되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아침에 눈을 떠보니 ‘갑충’이 되어 있던 ‘그레고르’처럼, 나도 어느 날 갑자기 환자가 되었다. 이제 나의 정체성은 사구체여과율과 담백요 수치 등 ‘숫자’로 표시되게 되었다.
2. 마음의 롤러코스터
권여선은 내가 ‘애정’하는 소설가다. 권여선의 소설은 격조 있고 아름다운 문장과는 거리가 멀다. 평범해 보이는 우리의 속내에 들어있는 괴팍스런 성정이나 쓸데없는 고집을 자기공명영상법을 투과한 것처럼 보여준다. 벌레 물린 상처를 긁고 긁어 피가 났을 때 느껴지는 고통스런 쾌감처럼, 상처를 후벼 파는 권여선의 불편하고 이물스런 문장을 읽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최근에 발표된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문학동네, 2020년)에 수록된 작품들에도 이런 면모는 견지되고 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유일한 가족인 언니가 자신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도망간 소희(「손톱」), 계약 연장을 미끼로 쪼개기 계약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강사N(「너머」), 자식이 학폭 피해자지만 가해학생의 미래를 위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서류에 서명을 해야 하는 해옥(「친구」) 등 모두가 비극적인데, 누구 한 사람 ‘상투적’으로 비극적이지는 않다.
그는 커피를 받아 창가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의사는 곧바로 수술 일정을 잡으려 했지만 그는 생각을 좀 해보겠다고 말했다. 아, 생각을 좀 해보겠다고요, 라고 의사는 그의 말을 반복하더니, 그래도 뭐 어차피 안 할 수는 없는 수술이고 하니까, 하고 권태롭게 덧붙였다. 안 하면 안 하는 거지 안 할 수 없는 수술이 세상에 어디 있나 하는 반발심이 일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민지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돌연한 생기가 솟구쳤고 고대하는 여행을 준비할 때처럼 마음이 들떴다. 그는 전화로 얘기해야 할지, 중국에 있는 민지를 직접 찾아가야 할지, 찾아간다면 언제쯤 찾아가야 할지, 민지를 만나면 바로 얘기를 할지, 헤어질 때 공항에서 얘기를 할지, 민지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신은 또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지 등등에 대한 세밀한 망상이 빠져들었다. 그가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리고 커피잔을 들었을 때 잔은 이미 비어 있었다. 그는 결국 민지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라도 그 긴 시간을 들여 자신이 공상한 모든 것이 한낱 어리광을 부려보려는 고약한 심보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자 어이가 없었다. 그것도 신도 아니고 딸에게 말이다. (「재」, 같은 책, 199~200쪽)
단편소설 「재」의 주인공은 폐암선고를 받은 독신 중년 남성이다. 수술을 앞두고 주인공은 세상이 갑자기 ‘잿빛’으로 변해버린 듯하다. ‘그레고르’가 된 것처럼 병원 전광판에 뜨는 자신의 이름이 낯설고, 읽고 있는 책에서도 ‘병원’이라는 단어만 크게 확대되어 보인다. 같이 살지 않는 딸에게 자신의 수술을 알려야 하는 그가 머릿속으로 혼자 계획을 세우고 혼자 들뜨다 제 풀에 지쳐가는 모습은, 지난 두 달 동안의 내 모습과 너무 똑같다. 나는 내처 자다가 문득문득 망상에 빠졌다. 내 신장은 얼마나 망가진 것일까? 앞으로 일을 줄여야 할까? 친구들에게는 어떻게 알릴 것인가? 우리 집 가정 경제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여기에 담배를 35년째 피고 있는 남편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정말 답이 없다는 절망까지…… 나의 망상은 불안과 초조를 향해 달려갔다. 앞으로 나에게 남은 일은 늙거나, 아파서 늙는 일뿐이고, 이제 좋은 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 집 앞 전봇대 밑에 서 있었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전화도 하지 않고 그저 서 있기만 했다. 이십오 년이 지났지만 동네는 여전했다. 3층짜리 연립주택의 뒷벽은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 흉하고 투박한 잿빛 벽면에 층마다 아주 작은 창문이 네 개씩만 달려 있었다. 부엌 창문이었다. 그와 정희가 신혼살림을 차렸던 집은 2층 왼편 끝 집이었는데 그들은 그곳에서 육 년을 살았다. 그곳에서 민지가 태어났고 그곳에서 정희가 말없이 민지를 데리고 떠났다. 문득 그 집에 올라가 벨을 눌러볼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부질없는 짓이어서가 아니라 겁이 나서였다. 서너 살 된 민지가 아직도 거실에서 혼자 놀고 있을 것만 같아서, 치료를 포기한 정희가 아직도 방에 누워 앓고 있을 것만 같아서, 부엌 창문 앞에 아직도 짙은 갈색의 울퉁불퉁한 두꺼비 재떨이가 놓여 있을 것만 같아서, 등뒤에서 정희가 당신 빨리 논문 쓰라고,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나직나직 속삭이고 있을 것만 같아서. 그럴 리가 없는데도 꼭 그럴 것만 같아서 그는 겁이 났다.
(「재」, 같은 책, 209~212쪽)
망상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은 자책과 자괴감이었다. 나는 인스턴트 음식과 냉동식품을 거리낌 없이 먹었고 알코올과 카페인 또한 평균 이상으로 섭취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배달음식과 외식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나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나는 건강을 과신했고, 먹는 문제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표준적인 건강관리의 기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삐딱한 마음’이 있었다. ‘무농약’이나 ‘유기농’ 마크가 붙은 식재료를 골라 쇼핑하는 중산층 주부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남들과 아주 다르게 산 것도 아니다. 남들 결혼할 때 결혼해서, 4인 가족의 표준에 맞게 아이 둘 낳고, 큰 아파트와 큰 자동차를 목표로 살아왔다. 남들처럼 못살까봐 전전긍긍하면서도 남들처럼 평범해질까 두려워하는 속물근성이 내 인생을 이끌어온 동력이었다. 그간 살아온 날들을 이리저리 헤집어 봐도 남는 건 ‘만성 신부전’이라는 질병 하나밖에 없었다.
쓰지 못한 박사학위 논문에 이르면 자책과 자괴감의 쌍곡선은 더 큰 파장으로 요동쳤다. 10년 전 나는 ‘대학’에서 밥 벌어 먹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논문과 학위를 포기했다. 이때도 제도권 지식노동자가 되지 않겠다는 ‘삐딱한 마음’이 있었다. 그 후 10년 동안 나는 나를 둘러싼 상황이 안 좋을 때마다, 매번 논문과 학위를 포기했던 그 결정에 대해 후회한다. 나이도 먹고, 돈도 없고, 건강도 나빠졌는데, ‘자격증’처럼 학위가 있었으면 이 상황이 조금은 호전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학위가 있었으면 환자라도 지금의 상황이 덜 불행하게 느껴지고 위로가 될 것 같았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곱씹는 행동은 상투적으로 지리멸렬하다.
괴로웠던 것은 나의 이런 진부한 생각이었다. 나는 상투적이고 진부한 고정관념으로 나를 재단하고 평가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질병으로 괴로운데, 그 고통의 이유가 ‘돈과 인정욕망’이라는 사실이 너무 뻔하고 단순해서 무안했다. ‘나는 왜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할까?’ 이걸 깨달은 순간이야말로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질병이 속삭이는 순간이었고, ‘삐딱한 마음’이 필요한 때였다.
3. 결말을 알 수 없는 이야기
‘질병’이라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가장 난감했던 것은 계획을 세우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나의 상태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고, 어떻게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올해 하려던 몇 가지 계획을 취소했다. 이제까지 많은 사건이 있었고, 인생이 내 마음대로 굴러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싶었나 보다. 그러니까 내가 괴로운 진짜 이유는 아픈 몸이 아니라 정해진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못한 것에 대한 신경질과 화풀이였다. 아직 어른이 덜 됐다.
만성 신부전은 나에게 많은 것을 금지시켰다. 염분이 많이 들어있는 찌개와 국, 칼륨이 풍부한 채소와 과일, 인이 들어있는 견과류와 통곡물류, 그리고 동물성 단백질. 만성 신부전 환자는 혈압, 혈당, 체중, 스트레스를 잘 관리해야 하고, 밤늦게 자지 않고 깨어 있는 것도 나쁘다고 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덜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해야 하는 만성 신부전 환자의 일상은 나에게는 어색하고 낯선 방식이다. 내가 즐겼던 많은 것을 금지시킨 질병이 나에게 허용하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보는 것이다.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 찧고 까불던 미숙한 계산법을 버리고, 계산 없이 살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무언가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불안과 초조함을 버리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미 반쯤 망가진 신장과 예전처럼 전력질주할 수 없는 체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일. 어쩌면 이건 지리멸렬하게 느껴지는 내 인생이 다르게 ‘변신’할 수 있는 계기일지 모른다. 이 ‘결말을 알 수 없는’ 이야기에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지는 배짱이 나에게 필요하다. 질병은 당장 죽는 거 아니니까 쫄지 말고 배포를 키우라고 조언한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병명이 적힌 서류를 들여다보듯 조심스럽게 제발트의 다음 문장을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에 잔잔한 희열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비록 벌레의 눈으로나마 제발트는 부지불식간에 자신이 내려다본 황량한 풍경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려 애쓰고 있었고 마침내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역시 제발트의 건조한 잿빛 문장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려 애썼고 마침내 그렇게 했다. 제발트의 눈은 노리치 병원의 우중충한 풍경 속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을 포착하는데, 그것은 병원 진입로 앞쪽의 “잔디밭을 가로질러오는 간호사”와 모퉁이를 돌고 있는 “푸른 등이 달린 구급차”였다. 제발트 자신은 음울하게 그 가치를 폄하하지만 그는 그것이 명백히 제발트의 ‘파김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 그러니까 그와 제발트는 아직 벌레가 아니고 아무리 황량한 폐허 속에서도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고 찾아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아직은 잿빛 세상 속에 끼워 넣을 희미한 의미의 갈피를 지니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게 비록 초록빛 소주병이나 푸른 등을 단 구급차, 붉은 무생채 가닥이나 개미처럼 움직이는 간호사의 실루엣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재」, 같은 책, 214~215쪽)
만성 신부전 3단계이며 세부적으로 IGA 신증인 내 질병은 자가면역계 질환이다. 몸에 좋은 것과 해로운 것을 식별하는 면역계가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말이다. 그건 마치 삶에 대한 나의 인식의 오류를 ‘복붙’(ctrlC/ctrlV)해놓은 것 같다. 내가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을 잘못 판단하고 있거나, 그 과정을 제대로 밟고 있지 않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만성 신부전 환자가 된 다음부터 ‘비자발적 채식주의자’와 ‘비자발적 산책자’로 살아가니, 하루가 잘 간다. 뭐 먹을까 궁리하고 식구들 반찬과 따로 음식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안 걸으면 안 된다고 하니, 어떻게든 시간 내서 동네를 한 바퀴 걸어본다. 걷다 보면, 하늘도 쳐다보게 되고 바람도 느끼게 된다.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을 느끼며,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다. 잠깐이라도 긍정적이 된다. 걷다 보면, 무심히 시청과 극장과 마트와 은행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게 되고, 두꺼운 패딩과 모자로 표정을 알 수 없게 무장한 사람들에게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으리라 짐작해보게 된다. 그리고 정말 나에게는 이제 좋은 패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인가 골똘히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다보면 이 모든 생각의 우회들이 결국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내가 참 살고 싶어 하는구나!’하는 “단순한 진심”을 확인하게 된다. 「재」의 주인공이 바라보는 풍경은 비 오는 거리, 시멘트 담벼락, 병원의 기다란 건물 등 압도적으로 잿빛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두꺼운 잿빛을 뚫고 붉은 파김치, 초록빛 소주병, 연탄불 고추장불고기 같이 선명한 색깔이 문득문득 나타난다. 가족도 없고, 나이를 먹었고, 가망 없는 수술만을 남겨 두고 있는 ‘그’에게 이제 좋은 패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잿빛 풍경 속에서도 색깔 찾기 놀이를 계속하고 있다. 황량한 풍경 속에서도 무언가를 찾으려 애를 쓰는 사람에게 낯선 간병인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는 일쯤은 두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혈액 투석과 신장 이식에 대한 두려움도 덜어내려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시간을 보내고 있고, 언젠가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겨울 내내 마음의 롤러코스터를 탔던 사람의 판단으로는,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고 억울해하는 것은 미성숙한 투정일 뿐이다. 미리 결말을 짐작하지 말고, 하루하루 그냥 살자. 만성 신부전 환자가 된 다음부터 나의 하루는 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