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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약방 Oct 24. 2022

감자전의 ‘초년의 맛’

-거북목에 김세희의 「가만한 나날」을 처방합니다

  1. ‘거북목’ 사회 초년생

  올해 작은딸은 ‘N포세대’, ‘자본이 낳은 세대’에 이어 ‘코로나세대’라는 별명을 하나 더 붙이고 사회 초년생이 되었다. 딸은 예술전문대 애니메이션학과 졸업생이다. 코로나의 여파로 졸업식도 하지 못했다. 코로나의 여파로 졸업작품 상영회도 취소되었다. 상영회때 전시 부스에서 나눠줄 생각으로 만들었던 딸의 명함은 인쇄소에서 온 박스 그대로 집에 보관되어 있다. 딸의 명함을 받은 몇몇 사람들은 필명 ‘감자전’의 느낌이 잘 드러난 명함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칭찬에 딸은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그러나 나는 그 조막만한 것을 만들려고 딸이 잠을 안자고 날밤을 샜다는 사실을 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딸이 하고 싶어하는 일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보상이 너무 없다. 경제적인 보상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인정도 박하다. ‘오타쿠’가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까지 벌려고 한다니 지나친 욕심이라고 세상은 생각하는 것 같다. 딸이 명함을 뿌릴 날이 올까?

  마지막 학기에 딸은 졸업작품 마무리와 함께 자소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만드느라 바빴다. 얼어붙은 채용시장에 원서를 넣을 데가 있을까 싶었는데, 딸의 전공과 관련 있는 웹툰과 게임시장은 언택트시대를 맞아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나는 딸이 취업을 한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자소서를 읽으며 웹툰을 편집하는 일이라면 딸이 잘해내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스물넷, 딸의 일생에서 만화는 인생의 반을 함께 해온 일이다. 그 긴 시간 그 애가 읽어댔던 만화책의 양과 SNS 친구들과 ‘덕질’하며 보낸 시간의 양은 실로 무지막지하다. 노는 건지, 공부하는 건지, 일하는 건지……알 수 없는 ‘무용한 시간’이 딸의 인생에서 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 긴 시간을 컴퓨터 모니터, 아이패드 화면, 핸드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지내느라 딸의 체형도 ‘오타쿠스러워’졌다. 어깨는 구부정하고 목은 거북목이다. 안구건조증을 호소하고 있고, 최근에는 블루라이트차단 안경을 찾아보고 있다. 극장에 가면, 딸은 팝콘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의 자세만 보고도 그 사람이 오타쿠인지 아닌지 감별해냈다. 그리고 이제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시절이 아니라, 태블렛에 전자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딸의 손목과 어깨도 신통치 않다. 종이와 달리 태블렛은 필압의 표현이 어려워 손목과 어깨에 더 힘이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딸은 종종 아령과 배드민턴채를 사와 운동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집콕생활’에 최적화된 오타쿠답게 운동을 하러 밖으로 나가는 날은 며칠 없었다. 

  딸의 면접은 자기 방에서 줌으로 면접관의 질문에 대답하는 비대면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방 밖으로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나는 히쭉 웃었다. “<격기3반>을 그리신 이학작가님과 <집이 없어>의 와난작가님의 웹툰을 좋아합니다.” 그 후로도 무슨무슨 작가님, 작가님, 작가님……의 향연이 이어졌지만, 나에겐 쌩뚱 맞고 낯선 이름들이었다. 이럴 때, 내가 모르는 딸의 세계가 있다 것이 실감 난다. 딸이 면접을 준비하며 가장 고민한 답변은 왜 작가가 되지 않고, 취직하려는 것인지 이유를 묻는 질문이었다. “뭐라고 말하지?” 우물쭈물하는 딸에게 나는 물었다. “왜 취업하려 하는데? 매일 출근할 자신 있어?” “큰돈을 벌고 싶어!” “웹툰회사 돈 많이 안 줄 텐데…….” “백만원은 벌 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백만원은 딸에게 큰돈이었다. 그간 알바로 번 돈들은 매달 4~50만원 안짝이었다. 

  그러나 면접에 이어 실무텍스트까지 거쳤지만 결국 딸은 채용되지 못했다. 한 동안 코가 쑥 빠져있던 딸에게 게임회사에서 외주 만화를 그려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다. 단가가 세서 잘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딸은 다시 의욕적이 되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딸은 졸업 후에도 무엇인가 자신이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2. ‘초년의 맛’      

  돌이켜 보면 20대 중에서도 가장 열정적이던 시기였다. 내가 채털리 부인에게 얼마나 정성을 쏟았던가. 그보다 더 열심히 일할 수는 없었다. 그것도 완전히 자발적으로, 20대 중반까지는 돈을 지불하고 뭔가를 학습하고 받아들이기만 했다. 그런데 이젠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받았고, 내 머리와 손끝을 써서 뭔가를 생산해 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쓸모 있는 존재라는 느낌. 조금만 더 시간을 할애해 정성을 기울이면 결과물이 더 좋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리뷰 업무를 하느라 하루를 다 보낸 날에는 저녁을 먹고 사무실에 남아 일상 게시글을 작성했다. 개인 불로그로 보이기 위해 일상적인 내용을 담은 글을 올려야 했고, 직원들은 가족과 친척들, 그 반려동물들 사진까지 활용했다. 이웃 수를 유지하려면 이웃을 맺은 블로그를 방문해 댓글도 남겨야 했다. 업체들 간에도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 유령들끼리 서로 이웃을 맺고, 훈훈한 댓글을 달고,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가만한 나날」, 『가만한 나날』, 민음사, 2019년, 108쪽)     


  김세희의 첫 작품집 『가만한 나날』(민음사, 2019년)의 주인공들은 사회 초년생들이다. 첫 직장에 입사를 하고, 첫 상사를 만나고, 처음으로 살림살이를 장만한다. ‘자본이 낳은 세대’의 청년들답게 이들의 형편은 팍팍하다. 저금리대출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고, 중고가게에서 살림살이를 사온다. 하고 싶은 영화일과 직장 사이에서 갈등하고,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는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영혼을 갈아 넣으며’ 일한다. 표제작 「가만한 나날」에서 주인공 경진은 블로그 후기 마케팅 홍보회사에 입사한다. 가짜 블로그 운영자가 되어 의뢰받은 기업의 물건에 대한 사용 후기를 쓰는 일을 하게 된다. 진경은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가족이나 지인의 개인 블로그에서 사진을 가져다쓰기도 하고, 너무 열심히 일한다고 동기들로부터 핀잔을 받기도 한다. 진경은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야근도 마다하지 않는데, 이건 단지 평판이나 성과 때문만은 아니다. 진경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내고 싶은 ‘의욕’과 처음 일을 배우는 사람의 ‘설렘’에 자발적으로 푹 빠져버렸다. 이런 게 ‘초년의 맛’또는 ‘언박싱의 매력’이다.

  자소서에 쓸 내용을 떠올리고, 메일로 온 채용공지문을 정독하는 딸의 모습에도 이런 ‘몰두’가 있었다. 무언가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간 비용을 지불하고 소비했던 상품의 생산자가 된다는 것, 이건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흥분과 설렘이다. 지금까지의 방만했던 생활을 청산하고,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된 웅녀처럼 되겠다고 매일매일 새롭게 다짐하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스케줄을 점검하고, 일과표를 만들고, 짜임새 있게 인생이 굴러간다는 느낌은 내가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기 확신과 암시를 준다. 


  내가 보기에 리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디테일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곧 깨달았다. 구체성이 리뷰의 생생함을 좌우했다. 직접 먹어 본 것처럼, 직접 사용해 본 것처럼, 업체에서 보내 준 정보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이메일을 보내 추가로 요청했다.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더 잘 해내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스스로 프로라고 여겼으니까. 이렇게 해도 괜찮나? 싶을 때도 있었다. 병원이 제시한 문구를 넣어 사각턱을 절제했다는 후기를 작성할 때였다. 치아 교정, 라식 수술 체험 후기를 쓸 때도 그랬다. 이래도 되는 건가? 그러나 곧 그 감각도 사라졌다.

  게다가 내가 지금껏 뭔가를 사고 찾을 때마다 검색해 참고했던 블로그 후기들도 죄다 업체를 통해 작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반인이 운영하는 블로그 글이 검색 결과 상위에 노출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맛집이나 병원처럼 사람들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일수록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자주 검색하고 참조하기 때문에 시장이 되는 것인데, 시장이 되면 사람들이 원하는 진짜 정보는 닿지 않는 곳으로 밀려난다.

  이것이 경제구나.

  나는 세상의 이치를 목도한 사람처럼 약간의 경이로움과 체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한 나날」, 같은 책, 106쪽)     


  진경은 ‘영혼을 갈아 넣으며’ 몰두했던 일의 내막을 알아가게 되면서, 자신이 쏟아 부었던 열정만큼 혐오와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소설은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살균제 피해자의 에피소드를 가져와 진경의 곤혹스러운 심경을 극대화하고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직업의 세계가 갖고 있는 궂은 측면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직업인이 되어 ‘경제’생활을 한다는 것은 떳떳하지 않은 일도 감수하는 인간이 되어가는 체념의 과정일 수도 있다. 비정규직으로 살아온 내 직업의 세계에도 그런 마뜩찮은 부분이 있고, 남의 돈을 받는 일에 따라오는 치사스러움을 나는 마다하지 않았다. 

  만화계 미투사건이나 게임산업에서 이슈가 되는 선정성, 폭력성, 혐오와 차별의 발언을 떠올리면, 나는 딸이 가고자 하는 직업의 세계에도 사회적 안전망이 거의 없어 걱정이 된다. 고용의 안정성도 없고, 복지제도도 없다. 그에 따른 사회적 대우도 딸의 받는 ‘페이’만큼 주어질 것이다. 딸이 겪게 될 시시콜콜한 불합리와 푸대접에 대해 나는 ‘쉴드’를 쳐주지 못할 것이다. 딸이 실망하고 ‘삐딱한’ 인간이 되어가는 걸 나는 안타까워하겠지만, 달리 내색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밥벌이의 세계에서 딸과 나는 비슷한 입장이고, 버티는 것 말고 뾰족한 수는 없다. 버티는 것도 재능이라는 말이 딸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3. 마늘과 쑥이 아니라 스티커

  외주만화의 작업은 꽤 까다로웠다. 코믹스 원작이 있는 작품을 게임으로 출시하려 하는 게임회사에서는 딸의 테스트 그림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이후 자잘한 수정사항들이 있는 피드백이 계속 날아왔다. 장당 단가가 센 이유는 그만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딸은 자기 방에서 작업을 하다 지치면 밖으로 나왔다. 소파에 발랑 드러누워 “망했어!” “글렀어!” 푸념을 늘어놓을 때, 딸의 모습은 ‘뒤집힌 풍뎅이’ 같다. 다리를 버둥거리는 벌레 옆에 말풍선이 만들어지고, 딸의 짜증나는 말들이 공중에 둥둥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인생을 배운 건 일본만화 『바쿠만』이라고 말하는 딸의 로망은 만화 속으로 들어가서 2차원의 세계를 사는 것이다. 2차원의 평면 속에서는 날마다 다이내믹하고 스릴 넘치는 일들이 펼쳐지는데, 3차원의 현실 세계는 ‘입체적으로’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일에 관해서도, 딸은 닌텐도 ‘동물의 숲’ 게임 속으로 들어가 화석을 캐고, 낚시를 하며 살고 싶어한다. ‘동물의 숲’에서 딸은 근면 성실한 사람이다. 쉬지 않고 체리를 줍고, 화석을 캐고, 낚시를 해서 벽지를 새로 사고 가구를 바꾼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네 개의 계정에 포진해 있는 SNS 친구들이 가족보다 자신을 더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건 맞는 말이다. 가족이라고 더 상대에 대한 이해가 깊은 건 아니니까. 

  게임, 만화, SNS의 가상 현실을 사랑하는 딸이 리얼 현실 세계와 접속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건 택배가 오는 날이다. 자신이 구입한 굿즈나 공연티켓이 택배로 오는 순간만큼은 딸도 리얼 현실 세계를 사랑한다. 며칠 전에는 택배로 달력이 하나 배달되었다. 날짜가 큼지막하게 써있고, 날짜별로 음력과 함께 ‘손 없는 날’이 표시되어 있는 옛날 달력이다. 달력이 도착하자, 딸은 문방구로 달려가 스티커를 사왔다. 직장인이 아니라 프리랜서 작가로서 자신의 생활을 점검하기 위해 필요한 물건들이란다. 보통은 ‘다이어리 꾸미기’를 하는데, 자신은 ‘달력 꾸미기’를 선택했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달력을 벽에 붙이고 일주일, 딸의 생활에 변화가 있다. 오타쿠답게 밤낮의 구별 없이 내키는 대로 먹고 자던 습관을 바꿔 되도록이면 일정한 시간에 먹고 자는 ‘바른생활 어린이’가 되었다. 저질체력을 개선하겠다고 인스턴트와 배달음식도 대폭 줄였다. 새우깡, 감자깡, 알새우칩, 꼬깔콘……등등 나트륨 가득한 과자들과도 이별했다. 하루에 1시간 산책은 과도한 미션이었는지, 아직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 MSG와 나트륨이 빠진 딸의 생활은 그 부작용으로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고 살맛이 없어 보이지만, 딸은 달력에 표정이 다양한 스마일 스티커를 한 장씩 떼어 붙이며 근근이 버텨가고 있다.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마늘과 쑥이 필요했다면, 딸에게는 스티커가 약이다.

  글을 쓰는 나와 만화를 그리는 딸은 가끔 공동작업실에 대한 수다를 떨었다. 작업공간과 생활공간이 붙어 있으면, 작업에 능률이 오르지 않고 일과 휴식의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작업실의 임대료를 감당할 만한 능력이 없다. 일이 꾸준히 들어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프리랜서의 자유란 이런 허허벌판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같은 것이다. 시원하다기보다는 춥다. 현재 우리 집은 유사 작업실 모드다. 딸의 생활의 리듬이 규칙적으로 되면서, 일정한 시간에 같이 식사를 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작업을 한다. 쉬는 시간엔 같이 넷플릭스 드라마 ‘베터 콜 사울’을 보며 배우들의 연기력에 감탄한다. 나름대로 한 공간을 공유하며 작업을 하는 데 큰 불편은 없다. 이렇게 딸은 졸업과 동시에 공동작업실 동료가 되었다. 

  딸은 거북목과 손목의 터널증후군을 치료해보겠다고 ‘홈트’를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아직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홈트를 하려면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거나 음악파일이라도 다운받아야 하는데, 하루하루 스티커 붙이기도 힘든 딸이 작업을 하며 틈틈이 이런 준비를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에 비해 ‘걷기’는 너무 간편하다. 발에 운동화를 신고 그대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혼자 가기 멋쩍으면, 내가 걸을 때 쓰윽 팔짱을 끼고 따라 나서기만 된다. 딸아, 버티려면 무엇보다 체력이 재능이다! 같이 걷자! “아자아자 홧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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