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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약방 Oct 24. 2022

우리는 ‘다정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화병에 김금희의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를 처방합니다

  1. 화병답답하고 섭섭하고 화가 난다

  우리 아파트 종이 배출일이 화요일임을 기억하는 일, 가족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외식 갈 맛집 리스트를 뒤져보는 일, 코로나에 걸린 친구에게 기프티콘을 보내는 일, 카페에서 장시간 있으려면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골라잡는 일, 식당 키오스크 앞에서 순두부와 비빔밥 사이에서 갈등하는 일 등 인생은 시시콜콜한 작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잘 쌓아올린 나무토막들 가운데 한두 개쯤 빼버려도 굳건하게 버티는 젠가게임처럼. 그러나 한두 개쯤 빼버려도 그만인 나무토막들이 수북해질 때 젠가는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그러니까 티끌같이 작은 일들을 얕잡아봐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는 티도 안 나는, 눈치도 못 채는 작은 틈과 균열이 있다. 그렇다고 강박증에 걸릴 필요는 없다. 약간의 주의력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S와 세 번 만나는 동안 흔히 ‘사소한 일상’이라고 말하는 ‘사소함’을 오래 생각했다. 

  S는 ‘화병’으로 문학처방전을 의뢰했다. 화병은 일이 잘 안 풀릴 때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가 치밀어 심장에 열이 오르고 온몸이 뜨거워지는 증상을 이른다. S에게는 어떤 답답한 일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봤다. S의 남편 회사는 몇 년 전에 지방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본사로 옮겨갔지만, S의 남편은 서울에 남았다. 이 결정이 그의 직장생활에 하나의 이정표가 되리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외부의 시선에 그는 승진이나 일의 성취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 결정에는 S가 전업주부가 아니라 자기 사무실을 갖고 있는 전문직 여성이라는 조건이 영향을 주었다. 아내의 사무실과 딸의 교육을 생각할 때 지방으로 이사를 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혼자 지방에 내려가는 것도 가족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맞벌이 부부이고, 회식이나 갑작스런 일정 변경이 있을 때 아내의 스케줄을 고려해야 하는 고충이 있다. 남편과 S 사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S는 남편과 좀 더 시간을 함께 보내고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남편은 일보다는 가족을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자기 방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을 더 즐기는 것 같다. S는 시원스럽게 말하지 않는 남편의 속을 잘 모르겠다. 

  가끔 만나는 친구모임도 S에게는 답답한 측면이 있다. 부동산, 주식, 사교육, 골프, 시댁식구에 대한 성토로 매번 비슷한 레퍼토리가 반복되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화제를 끌어오고 싶지만, 친구들에게 S의 의견은 ‘배부른 소리’처럼 들린다. 친구모임에서도 내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S와 그렇지 못해 남편과 시댁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친구들 간에는 분명한 입장과 태도의 차이가 있다.

  S는 막연한 불안과 기대로 속 끓이거나 문제 상황을 해결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주변사람들이 이해가 안 된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을 모색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가는 S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답답하다. 해결책을 들려줘도 그 말을 듣지 않고 고집부리는 모습을 볼 때면 심장이 뜨거워지면서 열이 올라온다. 그리고 S의 조언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아 섭섭하다. 불 보듯 뻔한 실패가 반복될 때는 화가 난다. S의 진심이 무시당하는 것 같은 억울함도 있다. 

  S와 가족, S와 친구들 사이에는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차이가 있다. S와 같이 명료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과 에둘려 말하거나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들은 어떻게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이걸 알면 S의 화병도 누그러질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자동차 엔진오일 교체시기를 까먹지 않거나, 베란다의 양파가 뭉그러지기 전에 먹어치우는 일처럼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중요함을 잘 잊어버리고 놓치게 되는.     


 

  2.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자정 무렵 헤어짐을 통보받았다면서 그날의 아침 전체 회의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회의 자리에서 이런저런 불운한 뉴스들을 들었는데 어쩌면 자정의 실연에 대한 일종의 복선이 아니었을까부터 시작해서 점심에 복국을 먹으러 갔는데 수조에 복어들이 불길하게 죽어 있었고 오후쯤에는 그녀가 자신의 SNS에 우리는 완전한 타인이다, 라는 말과 함께 셀피를 올렸으니 그러자 자기 마음이 얼마나 무참해지기 시작했는지. 그건 말 그대로 사족으로만 이루어진 길고 긴 사연이어서 나는 “그러니까 권태기를 못 이겨서 둘이 헤어졌다는 거지?”라고 정리하고 말았다. 선배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은데” 하며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헤이, 라고 부를 때」,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마음산책, 2018년, 71쪽)     


  김금희의 짧은 소설집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마음산책, 2018년)에서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웃음이 나오면서도 속으로는 뜨끔했다. 실연의 상실감을 주저리주저리 곱씹고 있는 선배에게 후배는 “권태기를 못 이겨서 둘이 헤어졌다는 거지?”라고 말을 싹둑 잘라버린다. 후배에게는 이미 선배가 하고 싶은 말의 견적이 나오기 때문에 구구절절한 선배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어주고 싶지 않다. 내가 바로 그 후배 같은 사람이다. 나는 자주 상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요점만 간단히 말해주기를 요청한다. 나의 요청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버린다. 뭔가를 이야기하려 할 때 ‘기승전결’ 없이 요점만 간단히 말해달라니 당황해서 입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내가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 싫거나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사족으로만 이루어진 길고 긴” 스토리텔링의 런닝타임을 견딜 수 있는 참을성이 없다. 이런 성질머리 때문에 나의 인간관계는 매우 좁다. 그리고 이런 성질머리 때문에 내가 놓쳐버린 것은 사족으로만 전달될 수 있는, 간단하지 않은 인생의 단면들이 들려주는 진심의 세계이다. 어느 순간부턴가 나는 거두절미하고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자신의 애로사항을 곧바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 채기 시작했다.

  S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S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란 것을 단박에 알아봤다. “맞아요. 왜들 그렇게 자기 속을 얘기 안하고 답답한지 모르겠어요.”라고 맞장구 칠 뻔 했다. 그러나 나는 ‘격한’ 공감을 자제하며 김금희의 소설을 읽어보자고 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라는 제목은 나와 S 같이 매몰차 보이는 사람들 들으라고 ‘표나게’ 정해놓은 것처럼 보였다. 출근길에 김밥포장마차에서 매일 마주치는 남녀의 아는 척 할 수도 모르는 척 할 수도 없는 애매한 친밀함, 마음이 떠난 연인을 붙잡기 위해 두 사람이 좋았던 파리여행을 떠올릴 수 있는 ‘파리풍’ 식당에서 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는 초조함, 장례식장에서 잘 모르는 사람끼리 주고받은 농담 때문에 누군가 상처받았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전전긍긍 등 초음파탐지기나 뇌파검사기 같은 특수 장비가 없으면 드러나지 않은 마음의 미세한 동요를 김금희의 소설들은 포착하고 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에 실린 짧은 소설들 모두 뚜렷한 사건은 없다. 일상적인 에피소드 모음이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우리의 인생이야말로 그날이 그날인 일상의 반복 아닌가? 김금희의 소설은 그 반복적 일상 가운데 사족처럼 느껴지는 사소한 다정함을 환기시킨다. 나와 S 같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다정함이다. 우리는 그 미지근한 온기가 바꿔주는 공기의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한다.     

 

나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문득문득 하는 생각, 대체 지하철의 이 빈 공간들이 어떻게 지상의 압력을 견디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빈 공간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지상이 빈 공간을 견디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견디고 있어야 이 도시라는 일상의 세계가 유지되는 것이고, 각별히 애정한, 마음을 준 누군가 우리 일상에서 빠져나갔을 때, 남은 고통이 상대와 유리된 오로지 내 것이 되면서 그 상실감을 견뎌내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상대 역시 견뎌야 완전한 이별이 가능한 것처럼. 

(「우리가 헤이라고 부를 때」,  같은 책,  79쪽)    

 

  누군가의 ‘찌질함’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하지 않고 그 감정을 옹호해주는 다정함이 김금희 소설의 강점이다. 「우리가 헤이라고 부를 때」에서 후배는 선배의 말을 싹둑 잘라먹기는 했지만, 그와 함께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선배의 상실감을 위로해준다. 누군가와의 헤어짐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런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의 배려이다. 김금희는 상실감과 위로를 도시의 일상과 그것을 견디는 지하의 공백으로 표현함으로써, 무표정하게 굴려가는 도시의 일상을 떠받치고 있는 익명의 사람들의 상실감과 공허감, 그리고 그것을 견뎌내는 안간힘과 애틋함을 동시에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무표정하고 냉담해 보이는 도시에는 사실 한숨 폭폭 나오는 일들과 마음대로 되지 않은 일들과 더불어 그것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의 다정함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라고 말하는 사람들 덕분에 도시는 마음 붙이고 살만한 곳이 된다.      



  3. 적절한 격려와 존중이 느껴지는 온난한 답변

  S는 오너 세무사이다. 한 번도 직장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S는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일을 쉴 수 없었다. 회사에 고용된 세무사였다면 출산과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었을 테지만, 자기 사무실을 운영하니 오히려 더 쉴 수가 없었다. S의 사정보다는 고객사의 요청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5월 종합소득세 신고를 마치고 나면 동료 세무사들은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긴장한다는데, S는 그런 마음은 들지 않았다고 했다. 충분히 자료를 검토해서 숫자를 맞추었고 숫자들이 보장해주는 확실함을 S는 신뢰했다. 그리고 혹시 실수가 있더라도, 그건 그때 가서 고치면 된다고 본다. 일에 있어서 S는 스트레스가 적은 편이다. 이런 자신감을 갖기까지 S는 업무의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책임감 있는 오너가 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개인생활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일은 S에게 만족스러운 경제적 보상을 돌려주었다. 직업의 세계에서 S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게 쉽게 주어진 것은 아닌데, 사람들은 S의 성취를 자격증에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S와 주변 사람들 사이에 소통의 잡음이 있다면, 이런 입장 차이에서 발생하는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생각대로 굴러 가지 않으면 얼굴에서부터 표시가 나요. 미간에 주름이 확 잡히면서 표정이 굳어져요. 엄청난 기억력으로 그간 쌓였던 안 좋았던 점들을 참지 않고 쏟아놓게 돼요.” 

  “기억력이 나빠져야겠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세 번째 만났을 때 S와 나는 다정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나는 대로 떠들었다. 얼굴에 보톡스를 맞아서라도 굳은 인상을 펴보겠다는 아주 현실적인 대책부터 화를 내거나 싸늘하게 냉담해지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온도를 미지근하게 낮추는 온도조절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듣기 좋은 소리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지적할 사항이 있으면 딱 그만큼의 감정을 담아서 말해보자, 거기에 감정을 증폭시켜 폭주하지 말고.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게 쉬우면 인간관계가 왜 어렵다고 하겠나? 그러나 그날 우리는 다정함과 온난함이 가져다주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예의에 좀 더 방점을 두고 노력하기로 했다.

  “S도 사람들에게 섭섭한 점이 있으면, 쌓아두지 말고 “이건 섭섭해, 나도 좀 위로해줘라.”라고 그때그때 말하는 습관을 들여 봐요. 그렇게 해봤는데도 사람들이 S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으면 그때 화내도 늦지 않으니까.”

  이때 S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많은 사람들에게 호통을 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그런 역할을 해왔던 사람이지만, S에게도 위로가 필요했다. 그간 S의 분노와 냉담함이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가져왔을지 모르지만, 인간관계는 상호적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S도 힘들고 외로웠을 것이다. 화병을 의뢰받은 나조차도 S에게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보자고 권유했지, 그의 서운함을 읽어주지는 못했다. 잘나가는 전문직 여성에게는 그런 것이 없을 거라는 나의 선입견 때문에 S의 속상함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적절한 격려와 존중처럼 느껴”(「온난한 답변」, 156쪽)지는 “온난한 답변”을 나는 S에게 들려주지 못했다. 

  이 글은 내가 S에게 보내는 사과편지이다. ‘S! 미안해요. S의 서운한 마음을 더 들어줬어야 했는데, 소설책 한 권 건네주고 끝냈네요. 또 봅시다.’ 이런 반성의 순간, S는 ‘헤이!’하고 내 마음에 들어왔다. 나는 내가 무심히 놓쳐버린 S의 서운함을 떠올리며, 또 놓치고 있는 사소한 일상은 무엇인가 두리번거려봤다. 베란다에 있는 감자가 싹을 틔우기 시작했고, 목욕탕 비누가 습기를 머금고 퉁퉁 불었으며, 교통범칙금 고지서의 납부기한을 넘겨 버렸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과는 더위를 핑계로 말을 하지 않고 있고, 틀니를 한 친정엄마가 이 더위에 뭘 드시나 살펴보지 않고 냉장고를 텅텅 비우고 있다. 다정함은 아직 내 몸을 겉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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