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청안 에세이작가 Aug 31. 2020

승진 시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인내가 아무리 써도 그 열매가 반드시 달지는 않다


열심히 해서 결과가 다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리되지 않음을 알고 있지 않은가. 최선을 다해 요리해도 망칠 확률은 늘 있고, 내 입에 맞아도 남의 입에 안맞을 수 있다.



"역대 최악의 승진 티오라고들 하던데, 사실이야?"


올해 승진 연한을 맞은 입사 동기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그 메시지를 받고 암담했다. 아! 승진 시즌이 되었구나. 누군가는 '승승장구'의 타이틀을 가지고 기쁨을 누리는 시즌. 또 누군가는 '조직에서 버려진 것이 아닌가?' 자문자답하며, 버틸 것인지 그만할 것인지(퇴사) 그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게 되는 악마의 시즌. 매년 돌아오는 때이지만 한 번도 모두가 해피한 적이 없었다.


어쨌거나 인사총무부에 있는지라 매년 승진 시즌이 되면 타 부서 직원들은 내게 동향을 묻곤 한다. "뭐 아는 것 없어? 누가 되는(승진) 거야?" 하는 질문들. 그렇지만 나는 알 수가 없고 또 알아도 아는 척하기가 힘들다. 이유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승진의 모든 절차와 결과는 기업의 인사권자, 즉 최종 결정권자의 결재에 따라야 한다. 그렇기에 공식적인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결과를 알 수 없다. 예상은 예상일 뿐이고, 결과가 나와야 비로소 명단이 확정되는 것이 승진이다.


승진과 연봉 상승. 직장인에게는 이 두 가지가 '직장생활의 전부'라는 이야기가 있다. 일부는 맞고, 또 아닌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정글 같은 직장생활에서 '승진'은, 근로자로 불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승진이 전부는 아니지만, 거의 전부일 수는 있다. 승진은 왜 우리들을 힘들게 하는가, 목매게 하는가, 중도 하차시키는가, 비참하게 만드는가. 대체 왜 그럴까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첫째, 승진하면 자동적으로 연봉이 상승하게 되어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대부분이 직급 혹은 직위의 상승에 따라 연봉 테이블을 정하고 이를 지급하니, 승진을 해야 월급이 오르는 구조임은 자명하다. 승진을 못하면 연봉은 그대로. 남들이 승진할 때 나만 제자리라면 연봉 하락과 유사한 효과를 경험하고, 상대적 박탈감이 심각하다.


둘째, 승진은 곧 인정이다. 업무에 있어 뛰어나게 역량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성실하게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해온 사람이라면 회사에서는 커다란 칭찬을 준다. '승진'이라는 이름의 인정. 승진 연한이 오기 전까지 일을 열심히 한 사람일수록 인정 욕구에 목말랐던 사람일수록 인정받고 싶기 마련이다. 가끔 연봉 상승은 미미하더라도 승진만 했으면 좋겠다는 명예욕에 불타는 사람들도 있다.

 

셋째, 승진은 상대적이다. 나와 나이가 비슷하고 입사 시기가 비슷하고 직무의 성격이 유사하고, 현재 직급이 비슷할수록 알게 모르게 승진 경쟁구도에 놓이게 된다. 올라가려는 사람은 많고 자리는 한정적이니 당연한 이치다. 누군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떨어져야 한다. 다들 백점을 맞는다고 해도(절대평가) 그중에 더 나은 사람을 고르고 골라야 하는 것(상대평가)이 승진이다.


그러니까 승진을 해야, 이 조직에 계속 남아있어도 된다는 허가를 얻는 셈이고(승진 누락되었다고 나가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누락되면 다들 그 비슷한 생각으로 본인을 괴롭힌다) 또 인정을 받는 것이며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것이고 연봉도 오르는 것이다. 직장인에게 승진은 그래서 고충을 안겨다 준다.


동기의 질문을 받고 그가 매년 되풀이되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기기를 빌었다. 그가 승진하기를 바라냐는 의미냐고 묻는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당연히 그가 이번 해에 승진하면 좋겠지만, 승진 시즌은 매년 돌아온다. 이번에 진급이 빨랐다가 다음 승진 연한에 누락된다면 그때는 절망이 없을 것 같은가. 그것도 아니다. 매 연한 때마다 칼 진급을 하고 쭉쭉 성장해 빨리 임원이 되면... 그것도 좋지만은 않다. 게임의 끝판왕을 만나 그를 무찔러버리면 게임은 그대로 끝이 난다. 더 즐기고 말고 할 것도 없고, 게임처럼 더 하고 싶다고 다시 처음부터 단계를 밟을 수도 없다. 일찍 승진해 임원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은퇴만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임원은 직원(근로자)과 다르게 전부 계약직이니까. 그러니 이 길고 긴 레이스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평정하려면, 평정심을 가져야 한다. 그게 단기적 성패만이 눈에 보이는 우리들의 어리석은 승진 싸움에서 이기는 길이 아닐까.


그도 나도 이 싸움에서 꼭 이겼으면 좋겠다. 매 승진 연한 첫 해에 누락의 고배를 마실지 모르겠지만 운이 나쁘거나 실력이 모자라 떨어지고 또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승진에 대해 다 내려놓은 것처럼, 뭔가 통달한 사람처럼 말해놓고, 내 승진 연한이 되면 손 닿으면 부서질 가루 인형처럼 노심초사하다가 폭삭 부서질지 모르지만...


승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아픈 기억이 있고, 또 그로 인해 큰 깨달음이 있었다. 일희일비했던 때였다. 글에다 밝히면 꽤나 재미있을 소재지만, 글의 성격에는 맞지 않으니 생략하겠다. 대신에 아팠던 그 기간 동안 내가 마법 주문을 외듯 계속해서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던 좋은 시가 있어 아래에 적어본다. 이 시의 핵심 메시지는 '인내가 아무리 써도 그 열매가 반드시 달지는 않다'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고 한 해동안 농사를 열심히 짓지 않았는가. 올 한 해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고, 당장 농부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가. 둘 다 아니다. 많은 분들이 아래 시 '장미와 가시'를 보며 위안을 얻으시길.




[장미와 가시]


김승희 詩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었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가 피겠구나라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시의 고통이 잊을 수가 있을까 해도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오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

그러니 그대 이제 말해주오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





*** 이 글은 에세이 베스트셀러 ‘너의 사회생활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에 수록된 초고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2238032?LINK=NVM&NaPm=ct%3Dlimwkl0g%7Cci%3D466f68f79374d4ec8075e3b14c4de6c6c8675b36%7Ctr%3Dboksl1%7Csn%3D5342564%7Chk%3Db8a88d2bb42f19cab6ebe7815e0732af4412657f








http://pf.kakao.com/_vjqLs​


*** 직장인에게 유용한 정보와 특별히 엄선하는 감성 문장을 살펴보시려면 구독해주세요. ^^



***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linkClass=&barcode=9791185257945





이전 05화 태도는 모든 것을 결정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