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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미로얄 Aug 08. 2024

알버타인 되기

Alberta sunset

차로 20분 거리라면 주저 없이 운전대를 잡을 수 있을까? 30분 거리는? 1시간? 2시간 거리라면?

아니, 운전거리 30km는 가까운 까? 200km라면 조금 고민을 해봐야 하는 거리일까?

알버타 시골마을로 이사 온 후, 가깝다고 생각되는 이동거리 기준이 완전히 바뀌었다. 대학병원에 가기 위해 왕복 400km, 4시간 거리 고속도로 운전을 거뜬히 해내고, 고추장, 된장 등 필수 식재료가 떨어지면 "장 보러 갈까?" 하며 4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 하는 고속도로에 몸을 실는다. 그뿐인가? 날씨 좋은 날이면 주일예배 후 "우리 패들보드 타러 호수에 갈까?"라며 컵라면 몇 개 챙겨 들고 왕복 328km 떨어진 제스퍼로 고민 없이 차를 몬다. 물론 처음부터 장거리 운전이 쉬웠던 건 아니다. 첫 몇 년간 밴쿠버에 놀러 갈 때는 19시간 운전에 눈이 쾽해져, 중간에 호텔을 잡고 1박 2일로 쉬었다 가야만 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마을 친구들은 자신들은 10시간이면 충분히 밴쿠버까지 갈  있다며 우리에게 "알유 크레이지???" 외쳤다. 우리의 입장에선 10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운전하는 그들이 크레이지 하기만 했. 신호등에 맞추어 브레이크를 밟았다 땠다 하며 20분, 30분 길어야 40분 운전해야 하는 이동거리는 알버타인들에게는 너무나 같잖은 운전이 아닐 수 없다.


캐나다의 고속도로는 참 심심하다. 한국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휴게소도, 사진 한 장 기념으로 남기고 싶은 멋진 휴게공간도, 기름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채워 넣을 수 있는 주유소도 잘 찾아볼 수 다. 특히 토론토, 밴쿠버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큰 도시가 아닌, 알버타부터 사스카추원을 향하는 hyw16 고속도로는 마음 단단히 먹고 들어서야 한다. 달려도 달려도 끝없이 이어지는 아스팔트 도로와 양옆으로 펼쳐진 푸른 들판, 그리고 그곳에서 여유롭게 풀을 띁는, 소, 말, 버펄로 때로는 귀여운 라마들을 보는 게 전부다. 출발하기 전 기름은 꽉 채워 넣었는지 체크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요, 어느 지점에 주유소가 있는지까지 알아둔다면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다.


알버타로 이사 오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예배를 드리러 교회를 갔다. 당연히 한인이 없는 우리 마을에는 한인교회가 없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두려움과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에 예배만큼은 꼭 한인교회에서 드려야겠다고 신랑에게 똥고집을 부렸다. 사실 얼마나 오랫동안 운전을 해야 교회에 갈 수 있는지, 장거리 운전이 얼마나 힘든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4시간 왕복 운전! 우리 둘이 교대로 운전하면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지 않겠어?"라며 겁 없이 어린 세 아이를 새벽부터 흔들어 깨워 카시트에 앉혔다. 가는 길은 그럭저럭 소풍 가는 마음으로 나설 수 있었다. 잠에 취한 아이들이 카시트에서 조용히 잠을 자준 것도 한몫 크게 했다. 예배를 드리고, 한국 장을 보고, 한국식당에서 배부르게 짜장면을 먹을 때까지는 행복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려니 그때부터 슬슬 걱정이 밀려왔다. '오후 7시가 넘은 시간, 간식을 먹으며 가족들과 티브이 앞에 앉아 있어도 스멀스멀 잠이 오는 시간인데, 2시간 고속도로 운전을 어떻게 한다?' 차에 타자마자 좁은 카시트에 붙들린 아이들이 짜증을 내며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운전내내 소리소리 지르는 아이들 때문에 이명현상이 생길 것 같다며 신랑도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주일예배를 드리며 마음속에 담았던 성경말씀, 목사님의 설교, 그때의 감동, 감사함은 신랑의 혈압 상승속도에 맞추어 부글부글 끓어올라 아이들의 비명과 함께 산산이 부서져 사라져 버렸다. 그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해야 했고, 누군가에게 원망이라도 쏱아부어야 속이 후련해질 것 같았다. 정말 열심히 말다툼을 했다. 그때 싸움을 멈추게 했던 건 누군가의 사과도 아니고 아이들의 울음도 아니었다. 갑자기 켜진 자동차 경고등이었다.

'딩딩딩' 오일 등이었다. 아뿔싸! 출발하기 전 주유를 해야 했는데 정신없이 아이들을 태우느라 서로 깜빡했던 것이다. 뭔가 잘못됨을 감지했는지 아이들도 조용해졌다. 우리는 말없이 기억을 더듬었다. '어디쯤 에서 주유소를 봤더라?', '우리가 얼마나 달린 거지?'. 고속도로에서 두 개 정도의 주유소를 본 것도 같은데 주유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차가 서버릴 것 같아 겁이 났다. 신랑은 속도를 줄이고 최대 연비속도를 유지하며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30분은 달린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바닥에 있는 기름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 엔진을 움직이고 있는 중일 것이다. 차가 서버린다면?


바다같이 넓은 초록색 대지,

하얀색으로 곧게 뻗은 길,

그 길 어딘가 보일 듯, 말 듯, 아주 쬐금한 점,

움직이지 않는 점하나!


하늘에서 바라본 나의 위치였다. 캐나다라는 커다란 나라에 난 보일 듯, 말 듯, 아주 작은 점 하나에 불과했다. 차가 푸들거리기 시작할 때쯤 저 멀리 노란색 간판의 오래된 주유소가 보였다.

"주유소다!!!"

동시에 환호를 지르며 겨우 주유소에 주차를 했다. 그리고는 긴장하며 참아냈던 울음을 터트렸다. 아마도 세 아이가 함께 울어댔던 것보다 크고, 서럽게 울었던 것 같다. 어디를 둘러봐도 익숙한 곳 하나 없는 이곳, 혼자서 운전하고는 어디도 없을 것만 같은 거대한 이 땅떵이. 나라는 존재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우리가족은 알버타인들의 고속도로 운전에, 알버타인의 거리개념에 익숙해지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학 기숙사에 큰아이를 들여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제는 멋지게 레노베이션을 하고, 눈에 띄는 큰 간판을 건 추억의 주유소를 지나며 그때의 악몽이 생각났다.

"우리 버타인 다됐네! 이제 4시간 에드먼턴 왕복은 어렵지 않게 운전하네?"

"서울에서 대전 왕복하는 것보다 더 먼 거리 아니야? 익숙해진다는 게 이렇게 무섭다."

"우리 차가 효자다 효자!"


주유소 사건 이후 다시는 장거리 운전을 하지 않겠노라 다심했지만,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장거리 운전은 필수였다. 물론 매주 교회를 가기 위해 4시간 왕복 거리를 오가미련한 짓은 하지 않는다. 또 고속도로 들어서기 전 오일 게이지를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난 알버타인이 되어가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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