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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미로얄 Aug 01. 2024

난 14살에 운전한다

St. Paul soccer field

이민 생활을 시작하기 전, 영화를 보거나 미드를 볼 때 늘 궁금했다.

'외국 아이들은 왜 우리나라 아이들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걸까?'

노안이라는 의미보다는 말이나 행동, 머리스타일이나 패션스타일 심지어 정신연령까지 우리보다 현저히 성숙해 보이고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세 아이를 키워보니 이런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이곳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보다 일찍 어른이 된다.


큰 아이가 만 14세가 되었을 때 딸아이는 생애 첫 국가고시인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보았다. 그리고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든 그 순간부터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만 16세 까지는 법적으로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는 보호자 또는 성인이 동승을 해야 운전이 가능하다. 이제 겨우 필기시험만 합격했을 뿐인데 부모들은 간 크게 자동차를 아이들에게 맡긴다. 딸아이는 흥분과 긴장이 가득한 표정으로 운전자 석에 앉아 학교를 향했고, 옆자석에 앉은 난, 있지도 않은 브레이크를 밟기 위해 허공에 오른발을 허우적거리며 긴장 속에 진땀을 빼야 했다. 알버타에서 14살(중학교 3학년)이 되면 운전뿐만 아니라 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 다양한 기회가 있겠지만 우리 아이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언제든 엄마 찬스를 통해 이웃집 동생들을 돌보고 약간의 현금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베이비시터 코스를 듣고 수료증을 받으면, 마켓에 광고를 내고 캐나다 최저시급을 조건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베이비 시터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축구심판(mini referee) 과정을 이수하고 여름 축구시즌 동안 심판으로 일하며 최저시급보다 더 높은 시급을 받고 일을 할 수 있다.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에 스스로 노동해서 벌어들인 수입을 저금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만 16세가 되면 아이들은 날개가 달린 듯 커뮤니티 이곳저곳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자동차 도로주행 시험 통과 후 독립적으로 혼자 운전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중고차를 선물로 받는 아이들도 있고, 그동안 꾸준하게 모아 왔던 돈으로 본인의 자동차를 구입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자동차'라는 날개가 달렸으니 내가 관심 있는 곳, 내 경력과 능력을 인정해 주는 곳,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학교와 직장을 오가며 바쁜 생활을 시작한다. 더 넓은 커뮤니티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풍부한 사회경험을 쌓아가게 되는 것이다. 감탄이 나올 만큼 바람직하고 모범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문화는 다른 아이들을 통해 눈으로 보고 머리로만 이해 가능한 이야기였다. 정작 딸아이가 방과 후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하겠다고 이야기했을 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의 감정을 과장해서 이야기한다면 아이가 학교를 자퇴하겠다고 이야기한 것 같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며 어떻게 아이를 설득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너 이제 고1이야. 고등학생의 본업은 학생이고,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 일하면서 공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일이라니! 그냥 넌 공부만 하면 안 될까?"

"엄마, 다른 친구들도 다 일해! 다 일하면서 공부한다고! 왜 엄마 아빠만 안된다고 하는 건데?"

아이들이 어렸을 땐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이었다. 학교 성적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으름장을 놓으며 허락했지만, 공부만 하기에도 벅찼던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 걱정스럽기만 했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딸아이는 투잡, 아니 자원봉사까지 포함하면 쓰리잡을 잡아왔다. 헬스케어 쪽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딸은 대학교 진학을 위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며 일주일에 3일은 약국에서 약사보조로 일을 하고, 2일은 장애인 프로그램 시설에서 일을 했다. 게다가 주말에는 틈틈이 병원에 자원봉사를 나갔다(캐나다에서 대학입학은 성적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을 상대하는 모든 직업이 쉽지 않겠지만 특히 몸이 불편한 환자들을 대하는 것과 보호자를 상대하는 일은 생각보다 조심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 과의 관계 속에서 아이의 생각이 달라지고 타인을 대하는 모습이 성숙해지는 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조금씩 홀로서기를 연습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가 운전을 하기 시작한 후 내 일상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등하굣길 운전을 딸아이가 대신해 주니 아침시간과 오후시간이 여유로워진 것이다. 성난 마녀처럼 소리소리 지르며 늦장 부리는 아이들을 테우고 부랴부랴 등굣길에 오를 필요 없이 여유롭게 주차장에서 '바이바이' 손을 흔들고 들어와 커피 한잔과 함께 여유로운 아침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 또한 아이들로부터 벗어나 조금씩 혼자되기 연습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방과 후 아르바이트로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의 생각도 많이 변하는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충족할 수 있게 되면서 아이들로부터 용돈 달라는 말을 들어본 지가 오래되었다.

"엄마 버블티 드실래요? 제가 살게요."

"엄마 오늘 주말인데 점심은 제가 쏠게요."라고 뜻밖의 기분 좋은 대접도 종종 받게 된다.  

아들의 운전면허 실기시험을 접수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시험료를 지불하려고 지갑을 여는데 "엄마! 제 시험인데 왜 엄마가 돈을 내요? 당연히 제가 내야죠!" 하며 나를 가로막고 결제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 당연한 일들이 아이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일들이 되어갔다. 방과 후 인명구조원(Life Guard)으로 일하고 있는 아들은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해 휘파람을 불며 중고차 시장을 뒤적거리고 있다. 그동안 모아 왔던 금액으로 자동차를 사려면 간신히 굴러가는 오래된 골동품 차겠지만 그런 차를 바라보는 아들은 연신 감탄사를 내지르며 사랑의 하트를 보내고 있다.


만 18세가 되면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풀타임 취업전선에 뛰어들거나 대학교에 진학한다. 그동안 꾸준하게 모아 왔던 통장잔고를 보여주며 딸아이가 이야기했다. "장학금도 신청해서 받았으니까, 1학년 등록금과 기숙사 비용은 내가 낼 수 있어요." 14세부터 홀로서기를 천천히 준비해 온 이곳의 아이들은 18세 청년이 되었을 땐 참 당당하고 의젓하고 멋지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이들이 너무 빨리 커버리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제 고2인 아들은 페이체크(캐나다는 2주마다 통장으로 봉급이 들어온다)가 들어오는 날이면 막내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나간다. 돌아오는 막내의 손에는 엄마가 잘 사주지 않는 캔디와 초콜릿, 버블티, 칩스 등 달달구리 간식거리가 잔뜩 들려있다. 책임감 있게 성실하게 잘 성장하는 아이들의 속도에 맞춰 든든한 엄마가 되고 싶은데 항상 욕심만 앞선다. 고등학교 생활도, 대학교 생활도 캐나다에서의 경험이 전혀 없는 나는 모든 것이 처음인 초보엄마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는 실질적인 조언보다는 늘 '라떼~'를 읊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돈공부를 시켜줄 수 있을까?'늘 고민이 된다. 나조차도 40세가 넘도록 제대로 된 경제개념과 진지한 공부를 해본 적이 없으니 그동안의 경제생활이 본이 될 리가 없다.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중2병을 앓고 있는 막내는 언니 오빠와 비교하니 마냥 어려 보이기만 한다. 막내도 14살이 되는 순간, 자동차 핸들을 손에 잡는 순간 번개같이 성숙해 가겠지? 방학 동안 노는 데에 한이 맺힌 아이처럼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 바쁜 막내에게 "책이라도 읽어야 되지 않겠니?"라고 잔소리를 하려다가도 아이의 얼굴만 보면 그저 웃음만 나온다. 오늘도 남의 집 딸이 되어 그 집 식구들과 넉살 좋게 캠핑을 떠난 막내아이는 그냥 마음껏 자연을 즐기고 뛰어놀도록 두어야겠다. 시간이 지나면 공부하고 일하느라 바빠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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