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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Aug 13. 2023

약하니까 악한 거예요!

자신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심리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지인이 있다. 업무적으로 만나 가까워진 사이로 우리는 둘 다 이 지역의 타인이며 이방인이다. 서울 토박이 그녀는 남편의 고향이자 대한민국 최대 오지인 이 산골까지 내려오게 되었단다. 작은 지역일수록 정이 넘치는 반면 그것이 독이 되어 오히려 화살이 될 때가 많다. 정이라는 이름으로, 관심이라는 명목으로 지나치게 생활에 간섭하고 통제하려 드는 것은 말이다.   

   

카운슬러답게 그녀는 잘 듣는 훌륭한 청취자이자 근본적으로 마음으로 따뜻한 여인 같다. 서로 바빠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는 사이이지만 가끔 생각이 뇌의 과녁에 꽂히면 우리는 그저 전화를 집어 들고 서로 오랜 시간 수다를 떨기도 한다.      

     


양심이 마비된 그녀

지역사회이니만큼 한 다리 건너면 모두가 아는 사이이다. 특히나 7년 넘게 생활해 온 그녀로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녀도 나도 잘 아는 우리 회사 한 직원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문제의 직원은 일진처럼 활동 영역을 넓히며 강도를 높여 계약직 직원 또는 용역으로 단기 투입된 직원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있었다. 내부 직원들뿐만 아니라 민원인에게 폭언을 일삼는 것도 일상이 되어 민원이 제기되는 것도 다반사다. 나이에 상관없이 반말하고 함부로 대하고, 집단따돌림을 종용하는 그녀가 이번에도 역시나 큰 사고를 쳤다.      


적어도 3년을 같이 근무해 왔던, 그리고 적어도 그녀보다 스무 살가량은 더 많은 단기 직원에게 이제는 대놓고 아줌마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것도 회사에서 말이다. 그녀와 상처받은 그 직원을 같이 불러 사실관계를 물었다. 

     

“제가 전화받느라 바빠서 아줌마라고 부른 것이지 다른 의도는 없었어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미안함 조차도 느끼지 못한 데다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스무 살이 더 많은 그녀는 어린 직원에게 지난 3년 동안 쌓였던 설움과 고통을 쏟아부었고, 들어보니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역시나 그랬다. 아무도 직원들의 내부 갈등과 고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우리 회사를 노동청에 고발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한술 더 떠 필요하다면 민형사상의 모든 조치를 취하실 수 있다고도 말씀을 드렸다.     


     

현실은 설국열차인 것인가

안타까웠다. 내부 갈등과 문제가 있으면 회사는 외면을 한다. 이런 광경을 목도할 때마다 나는 설국열차가 생각난다. 각 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상위 칸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부요로운 삶을 살아간다. 태어나자마자 기관차 조종석에 앉혀 평생 바퀴벌레나 먹으면서 도구로서 살다 끝내지는 삶이 있고, 각종 식물을 키우며 우아하고 여유로운 삶을 사는 칸도 있다. 내 밥그릇만 문제없다면 다른 사람이야 죽든 말든 내 알바가 진정 아닌 것인가.      


여러모로 해결을 위해 노력해도 내가 인사권자가 아니기에 항상 도돌이표다. 언제나 도도리표 도루묵은 진리다. 그런 회사의 실정을 잘 알고 있는 영악한 그녀는 그래서 악의 근성을 더 깊이 더 넓게 키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양심이 굳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안타깝다.     


사람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구차하고 초라한 변명으로 뻔뻔하게 구는 그녀는 보며 저것이 인간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회사에 인사 조치를 요청했고, 아니나 다를까 부서장은 인사 조치를 하면 인력이 부족하니 어떻게든 티오를 사수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그가 문제를 외면하지만 않았다면 이렇게 곪아 터지지는 않았을 것인데 그는 설국열차 어느 칸에 타고 있을까? 그리고 더 앞칸으로 옮겨가기 위해 온갖 레이다망을 돌리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이벤트나 가시적 성과는 인사고과나 성과급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적어도 조직의 내면을 들여다볼 깊은 안목을 갖지 않고서야 기관운영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꿀 따러 왔으니 목적에만 충실하면 그만인 셈이다. 아프지만 현실이다.        


  

약하니까 악하다

그녀와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전화너머로 주고받았다.

출처:unsplash
"약하니까 악한 거예요. 문제를 직시할 용기도 풀어나갈 자신도 의지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악한 거예요. 대부분은 그래요..."

"그럼, 사람들은 선한 자가 약하다고 하는데, 선하기 때문에 같이 악을 행하지 않기 위해 참으니 약해 보이는 것인가요?"

"그렇다고도 할 수 있죠! 선한 자는 알기에 참고 견디는 것이지 약해서 맞고 있는 게 아니에요. 약하니까 존재하기 위해 악해지는 거예요.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요!”     


머리를 때리는 말이다. 약하니 악하다.... 그렇다. 그럴 수도 있겠다.      

직원들을 괴롭히고 그 위에서 군림하며 쾌감을 느껴왔던 그 직원은 그렇게 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일까? 스스로의 자존감이 없으니 존재감을 위해 못된 짓을 골라하며,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단계까지 이른 것일까?          



나 자신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진정한 강자와 약자는 누구일까? 결국 끝까지 가는 자가 강자이다. 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뜻이다. 결국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들판의 곡식을 보면 쭉정이와 잡초, 그리고 알곡들이 뒤엉켜 같이 자라지만 결국엔 알곡들만 남아진다. 왜냐고? 주인이 심지 않은 것을 농부는 뽑아내고 제거하기 때문이다. 종국에는 알맹이와 진실만이 남아지는 것 아닌가? 인고의 세월과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 있겠지만 그래도 흙탕물이 가라앉아 맑은 물이 되듯 온전한 것이 강한 것이고 선이 강자가 되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가 나를 바라보는 더 나아가서 신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나를 응시하며 살아간다면, 사람들의 괜한 시선과 자아도취에 흠뻑 젖어 자신의 양심과 인생을 온전하지 못한 것에 거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의 시선도 중하다지만 아무리 남이 인정해 주면 뭐 할 것인가? 그것은 거죽인데 말이다. 속은 타들어가고 있는데 겉이 멀쩡하다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영원히 갈 수 있는 것, 변하지 않는 것이 강한 것이다. 다이아몬드처럼 말이다. 약하니까 악해지기 쉽다. 약함을 가리기 위해 좀 더 쉽고 빠른 길을 선택하다 보니 그럴지도 모른다. 강약의 판단은 누가 하는가?      


권좌에서 내려오면 하루아침에 강자도 약자가 되고, 약자도 강자가 된다. 이것이 진정 강자와 약자를 나누는 기준일까?     


나의 시선으로부터 나는 자유롭고 싶다. 거칠 것 없는 저 구름처럼 태양처럼 말이다.      

태풍이 스치고 지난 이 자리, 하늘이 눈부시게 파랗고 아름답다. 태풍이 강하다지만, 태풍에 끄덕 없이 존재하는 그리고,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서 존재하고 있는 이 모든 만물들이 강한 것은 아닐까?          


운곡천 범람 때에도 살아남은 박주가리 
운곡천 범람 때에도 살아남아 결국 꽃을 튀어낸 메꽃


거칠 것 없는 맑고 푸른 하늘, 아릅답다


폭우를 견디고 유유히 흐르는 운곡천과 달리는 풀들

살아 존재하는 모든 것에 경의를 표하며, 진정한 선과 힘이 내게 함께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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