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로망인 주택에 살아보니
19평 구축 아파트에서 6인 가족의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했다. 집은 작지만 베란다가 3개나 있고 넓어 여름엔 물놀이도 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장난감을 모두 베란다에 놓고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해두었다. 작은 방 베란다에는 트램폴린을 놓아두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게 해뒀다. 아파트 길 건너편에는 큰 공원도 있었다. 코로나가 한참일 때도 공원 덕에 나름 잘 버티며 살 수 있었다.
남편의 이직으로 이사를 해야 해서 SNS에 이벤트까지 하며 이사 갈 집을 고민했다.
한참 미니멀라이프에 심취해 있던지라 20평 안 되는 평수의 아파트와 29평인 지금의 집을 고민했다.
작은 집에서 생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6인 가족이어도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면 작은 집에서도 살 수 있을 것 같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댓글들에는 노후주택이긴 해도 마당이 있고 1층이라 아이들이 층간 소음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지낼 것 같다는 반응이 많았다. 관리해야 할 영역이 많고 10평이나 넓어지면 힘들 것 같았다. 집 보러 올 때 들어서는 입구부터 돌계단이라 어린 아이들에게 위험할 것 같고 너무 낡아 이 곳은 아니라 생각하고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았다. 다른 집들을 알아봤는데 너무 비쌌다.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어 이 곳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가득 찬 가구와 짐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벽은 곰팡이로 도배되어 있었다. 습하고 결로현상이 심한 집이라 장판 밑도 흥건했다. 이사 오자마자 다음 날 급하게 도배를 하고 며칠동안 거실에서 생활했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했기에 큰 가구들이 적어서 가능한 이야기다.
9월이어도 늦더위로 엄청 더웠는데 락스칠하고 바닥 말리기 위해 보일러까지 가동시키고 곰팡이 제거에 힘썼다. 단열벽지도 붙였는데 며칠 뒤 곰팡이들이 또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시 방들의 짐을 다 거실로 빼고 곰팡이를 제거했다. 거의 한 달을 곰팡이들과의 전쟁을 치뤘다. 전세인데 계약 때 조금 낮춰 계약하게 되어 도배, 장판 비용을 우리가 지불하기로 했다. 싱크대에 물도 새고 여름이 되니 작은 방 천장과 벽, 거실 창쪽 천장에도 물이 샜다.
그래도 나와 가족이 사는 집이기에 '지금 이 곳에서 행복하기 위해' 매일 가꿔가며 살겠다고 노력했다.
봄에는 떨어진 벚꽃 잎 쓸기, 여름에는 잡초 뽑기, 가을엔 낙엽쓸기, 겨울엔 눈쓸기 등 관리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한참 더운 날에는 뒷동산에 나무가 많아서인지 모기가 많아 아이들 팔 다리가 성할 날이 없었다. 뱀도 두 번이 나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집안에서는 온갖 벌레들과 깜짝 놀라며 만나 인사한다. 이제는 웬만한 벌레들은 아이들이 알아서 처리한다.
겨울엔 창문이 얼어 고드름이 생겨 잘 열리지 않는다. 그나마 세탁기가 주방에 있어 배관이 얼지 않아 감사하다. 구축 아파트에서는 베란다에 세탁기가 있어 배관이 얼어 고생했던 적이 있더랬다.
엄마가 여러모로 애쓰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그 어느 집보다 이 집이 제일 좋다고 한다.
다음에 이사 갈 집도 주택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흙 놀이 하다가 물 틀어 뻘도 만들어 놀고 텃밭에 작물들을 심고 수확의 기쁨도 맛봤다. 여름에는 마당에 수영장, 미끄럼틀까지 놓아 두어 물놀이를 했다.
숲 체험을 따로 갈 필요가 없었다. 마당에서 개구리, 사마귀, 사슴벌레, 방아깨비 등 여러 곤충들과 만났다. 가을에는 함께 낙엽 쌓아 만든 낙엽이불에 누워보기도 했다. 솔방울, 밤, 도토리를 줍고 겨울엔 눈썰매 타고 눈싸움하고 눈사람을 만들어 놀았다.
아파트에서 살 때 누리지 못했던 마당 생활을 통해 자연 친화적으로 살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 놀이터 흙이 아닌 자연 흙을 만지고 가까이에서 관찰하며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친구네 식구가 1박 2일로 놀러 와서 함께 마당에서 고기도 구워먹었다. 가장 큰 주택 생활의 로망이었다. 주말에 독점 육아를 해야 했고 아이들이 어리고 많아 캠핑을 한 번도 도전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터치 텐트도 치고 캠핑의자를 놓고 캠핑놀이도 원없이 했다.
아이들이 집에서도 층간소음 신경쓰지 않고 신나게 뛰어놀 수 있어서 감사했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기에는 마당에서 필요한 물건들도 많고 철마다 사용해야 할 물건들이 있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매일 불필요한 물건, 쓰임을 다한 물건들을 비워가며 더 쾌적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 키우면서 살면서 한 번쯤 주택에 살아보고 싶은 로망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경험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엄마는 힘들 수도 있지만 조금 젊고 힘 있을 때 살아보시면 좋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특별한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 보러 오신 분들이 계약하신다고 했는데 대출이 안 되어 취소가 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부여잡고 다른 부동산에 집 내놓을 때 빌라는 들어가지 말라고 구축이라도 아파트로 들어가시라는 조언을 들었다. 이 집은 전원주택 같은 빌라 형태이다.
어떻게 그런 집에 들어가셨냐는 말도 들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고 말하고 싶었지만 '저희는 재밌게 잘 지냈어요' 라고 말했다. 정말이다. 재밌게 잘 지냈다.
이 집에서 정리 멘토로 삼고 있는 tvN ‘신박한 정리’의 이지영 대표님의 유튜브 채널 <정리왕>에도 출연했으니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고 기쁜 생활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https://youtu.be/49seBflrZSE?si=c0ienk-KY88Vryww
아직도 결로 현상으로 곰팡이와 싸워야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