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멀 사남매맘 Feb 29. 2024

더 늦기 전에 부모님댁 정리하고 왔습니다.

두 분 사시는데 컵이 100개가 넘어요?

벼르고 벼르던 부모님의 집을 마음먹고 정리하러 갔다. 부모님 댁은 두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고 큰 아이들은 방학이고 작은 아이들은 등원을 시켜야 했다.

겨울이라 그런지 돌아가며 아프고 아이들이 괜찮으면 친정엄마가 편찮으셔서 이사 전에 가기가 어려웠다.

주말에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네 아이를 데리고 짐을 챙겨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두 분이 사시는데 이사견적이 2톤 넘게 나왔다고 트럭 2대 이상 필요하다고 했다. 이사비용 아끼시겠다며 손수 그 짐들을 며칠에 걸쳐 직접 SUV차량으로 옮기셨다고 한다. 무거운 접이식 침대며 책장을 어떻게 다 옮기셨는지 믿기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침대는 트럭 한 대 가지고 계신 지인이 도와주셔서 옮기셨다고 한다. 일흔 넘으신 부모님이신데 정말 대단하시다 싶었다.

이사 정리는 원래 천천히 해야 하는데 부모님의 묵은 짐을 비우고 정리하기 위해 단단히 마음먹고 갔기에 단기간에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고 나니 늘 마지막을 생각하게 되었다. 죄송스러운 마음이지만 나중에 부모님의 짐들이 유품으로 남겨졌을 때는 슬픔에 젖어 정리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건 엄마가 자주 입으시던 건데, 자주 사용하시던 컵인데..'

생각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러기 전에 그동안에 몇십 년씩 이고 지고 살던 짐들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부모님은 사업을 하셔서 사업터 옆에 있는 대형 평수의 집에 사셨다. 오랜 기간을 넓은 곳에서 사시다 보니 짐이 점점 불어났다. 불미스러운 원인 모를 화재 사고로 사업을 접으시면서 기숙사에 있던 짐들까지 함께 정리하셔야 했다. 

그중에서 추리고 추린다고 짐을 정리하시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짐들이 있었다.

그동안의 노고가 느껴져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나를 위해 이렇게 정리할 시간 없이 바쁘게 살아오신 것 같아 안타까웠다.


작은 집으로 3번 이사하시면서도 몇몇 가구와 복사기 등은 가지고 계셨다.

짐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보았더니 복도에도 박스들이 쌓여있고 거실과 방, 베란다까지 짐으로 꽉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저렴하다고 사놓은 휴지며, 세제, 건강식품 등등 상상이상으로 많은 물건들이 있었다.

왜 우리집에서 사용하던 빨래바구니가 부모님 댁에 있는 걸까?;


일단 거실에 있는 박스들을 하나씩 풀어갔다. 박스안도 물건으로 빼곡했다.

보자기로 묶어놓은 것이 있어 풀어보았더니 보자기가 7개 넘게 나왔다. 보자기가 보자기를 낳는 현장을 목격했다. 이사오실 때 이불을 보자기에 싸 오셨다고 한다. 컵은 100개 이상, 칼은 20개 이상, 그릇도 몇 박스가 있었는 데 사용할 컵은 20여 개 남겨드렸다. 두 분이 사시고 손님도 많이 오지 않는 집이기에 더 비워내고 싶었지만 귀한 분께 선물 받은 것이라며 비우길 어려워하시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릇은 몇십 년 된 것들이기에 자주 사용할 것들과 나와 아이들이 올 때 사용할 것만 남겨두기로 했다.

아까워하는 마음마저 비워내고 미련 없이 신문지에 싸여있는 채로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넣어 비웠다.

기부하기도 재사용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닳고 닳은 컵과 그릇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소에 물건을 비워낼 때는 나름 환경을 생각하며 비워내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내 선에서 끝내야 하는 물건들이었다. 쓰임을 다한 물건들이기에 과감히 비워냈다.

프라이팬과 냄비도 새 제품은 박스도 뜯지 않은 채 베란다에 놓아두시고 닳고 닳은 것을 사용하고 계셨다.

새 제품들을 다 꺼내고 오래된 것들은 비워냈다.

또 다른 박스에서 나의 어릴 적 생활통지표와 건강기록부 뭉치가 나왔다. 아이들과 함께 정리하고 있었기에 당황했다. '성적표야, 네가 왜 여기서 나와??'

공부의 이유와 목적을 알지 못하고 신나게 놀았던 학창 시절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창피를 당할 뻔했다. 얼른 사진 찍고 외장하드에 옮겨놓고 빠른 속도로 찢어서 버렸다. 

나중에 아이들이 "엄마도 공부 못 했는데 왜 우리한테 공부하래? " 라는 말을 들을까 봐 그 어떤 것보다 빨리 비워냈다.

추억의 물건이 치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학창 시절에 사용하던 다이어리와 편지 등은 나만 볼 수 있는 곳에 디지털화해 두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거실에서 한참 정리하고 있는데 잘 놀고 있던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파!!!!” ,“빨리 와요!!!”

놀라서 달려가봤더니 접이식 침대 밑에서 아이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꽤 무거운 접이식 침대를 있는 힘껏 들어 올려 접어두었다. 다행히 머리로 떨어지지 않고 아이들이 이불을 덮고 있어서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둘째 딸 손가락에 멍이 들었다. 호기심대장인 첫째가 접이식 침대의 손잡이를 잡아당긴 것이다. 할아버지는 접이식 침대를 우리가 오기 직전에 조립해 놓으셨는데 완성된 상태가 아니었다고 하셨다.

아이들과 나의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 상황을 통해 다시 한번 집에 무기가 될 만한 물건들을 들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하루 정도면 거실의 짐을 다 정리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네 아이들과 부모님과 때마다 챙겨 먹고 치우는 일도 해야 했기에 시간이 모자라 하루 더 묵기로 했다.

박스 중 두 박스에서 엄마의 옷이 나왔다. 이미 안방 헹거에 엄마 옷만으로 가득 차있는데 또 나온 것이다.

하나하나 집어 들고 보여드리며 ‘엄마, 이거 입어요?’ , ‘이거 맞아요?‘,’ 이거 입은 거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이건 보풀이 너무 심하다 ‘,' 이거 입어봐요~'라고 하며 하나둘 비워갔다.

맞는 옷이라며 입어보고 단추 잠그려다가 단추가 튀어나가는 걸 보시더니 "에이 몰라 버려! "라고 하셨다.

반 포기 상태셨다.

두 박스에서 한 박스도 안 될 정도로 남길 옷을 줄였다.

안방에 걸려있는 옷들 중에도 ' 입으면 행복해지는 옷, 자주 입는 옷, 맞는 옷, 좋아하는 옷'을 쇼핑하듯 골라 보자고 했다.

들어가시자마자 하나를 꺼내시더니 "이거 비우자! "라고 하시며 건네주셔서 감동 받았다.

이사 오셨는데 헹거가 무너지는 일을 경험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다.

머플러, 목도리 등도 비워내셨다.

살 빼면 입을 옷, 집에서 입을 옷, 언젠가 입을 옷들을 비워내니 헹거에 모두 걸렸다.

사계절용 45벌을 가지고 사는 내가 봤을 땐 많은 양이지만 용기 내어 비움에 동참해 주신 엄마께 감사했다.

“몰라, 나중에 아빠가 더 예쁜 거 사준다고 했으니까”라며 비우셨다.

정리하러 한 번 간다고 하면 오지 말라고 하시던 엄마의 변화가 놀랍다.

다음 날 아침, 막내는 할머니와 집에 있으라고 하고 큰 아이들과 할아버지와 함께 복도에 쌓아놓은 짐들을 옮겨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수레에 넣어 싣고 가는 동안 짐이 우르르 쏟아지기도 했다. 5번을 왔다 갔다 하며 비워냈다.

비워내며 그동안의 묵은 체증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남은 짐들도 분류해서 정리했다. 거실이 환하고 깨끗해졌다.


최근에 어떤 영상에서 봤는데 잘 비우지 못하는 부모님의 짐은 자녀인 내가 쓴다고 하고 가지고 오면 쉽게 내어주신다고 했다.

그래서 몇 개 가지고 와서 잘 사용하고 있다. 불효녀는 웁니다?

정리해 드리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한다고 하고 왔는데 잔소리만 늘어놓고 온 건 아닌지 죄송한 마음도 든다.

부모님의 사업 정리하는 과정에서 부모님 생에 가장 큰 어려움이 있었다. 그로 인해 무거운 마음의 짐을 가지고 계시는데 이번에 집을 비우고 정리하시며 마음의 짐까지 조금이나마 가벼워지셨길 바라본다.

이제는 이고 지고 있던 물건에 치여 답답한 마음으로 사시지 않고 가볍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행복하게 남은 생을 살아가시길 기대한다.


부모님댁 정리 전과 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