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9년차ㅣ중견기업 20년 사무직 이야기
저는 올해 육십 줄에 들어선 사람입니다. 지난 과거, 총 20여 년을 사무직에서 근무를 했지요. 솔직히 저는 그렇게 회사에서 잘 나가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남들보다 앞서 나간 적도, 박수를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언제나 중간 이하였던 제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세상에는 저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십 년을 버텼습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더 힘들어지더군요. 점차 촘촘해져 가는 회사의 평가 방식은 납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왠지 감시당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위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느껴지니 일하기도 싫어졌습니다. 때마침 회사에서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는데, 그 김에 저는 자연스럽게 회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제 나이가 정확히 50세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들어가게 될 회사도 최소 십 년 정도는 다닐 계획이었으니 심사숙고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들어갔다가 얼마 못 있어 나오게 된다면 괜히 시간만 축내는 셈이 될 테니까요. 가끔은 이력서를 넣고 최종 면접까지 올라가기도 했으니, 결국 원하는 직장을 얻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계획과는 다르게 점점 일정이 늘어지더군요. 느긋했던 제 마음도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팔팔한 나이에 돈도 못 벌면서 시간만 흘러 보내는 제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하루 세끼 밥 먹기도 눈치 보였고, 무엇보다 이러다 평생 무직으로 살게 될까 봐 염려가 되었지요.
그래서 우선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한참을 찾은 끝에 제가 선택한 일은 바로, 막노동이었습니다.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몸 쓰는 노동을 하는 거였어요. 그러려면 교육부터 받아야 했습니다. 성남에 있는 교육장에서 총 네 시간 동안, 안전에 관한 영상을 보려니 겁이 났습니다. 넘어지고, 실려가고. 화면에 나오는 사람이 마치 저인 것 같아 가슴이 철렁거렸습니다.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하려면 두렵기 마련이지만 말로만 듣던 그 일을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제가 정한 D-DAY,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집에서 가까운 인력사무소로 향했습니다.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무실 안에 있었습니다. 제 나이는 딱 중간 정도였는데, 저 빼고는 다들 이곳에서 잔뼈가 굵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접수를 하기 위해 소장에게 신분증과 이수증을 제출하자 노란 봉지 커피를 권하더군요. 춥고 피곤해서 그런지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잠시 후 저는 봉고차에 태워져서 모 사옥 신축 현장에 내려졌습니다. 크지는 않은 곳이었어요. 저의 역할은 자재운반이나 뒷정리 같은 잡일이었습니다. 와, 그런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저는 처음 하는 작업이라 허둥대기 바쁜데 다들 아랑곳하지 않고 저만 불러대서 진땀이 났습니다. 시간은 더디 가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습니다. 누군가 건넨 사탕이 아니었으면 더욱 힘들었을 겁니다. 회사 다닐 때는 그깟 사탕,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진짜 고마웠어요.
그날, 제가 처음으로 막노동을 한 그날, 그날은 어떻게 하루가 끝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멘트 포대 같은 몸을 이끌고 겨우 집으로 돌아왔는데 진짜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습니다. 도저히 몸이 쑤셔서 일어나지를 못 하겠더라고요. 장장 8시간 동안 안 썼던 근육을 썼으니 몸이 놀랄 만도 하겠지요. 몇 장 파스를 대충 붙이고 전날 갔던 인력사무소로 다시 가려는데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안 갈 수는 없었습니다. 전날에 인부들이랑 헤어지면서 내일 보자고 인사를 했거든요. 그 사람들은 그냥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한 말이라 꼭 지키고 싶었습니다. 겨우겨우 몸을 추스르고 인력사무소로 도착해서, 또 하루를 보냈습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저의 막노동일은 계속되었지요. 마치 저와의 사투처럼 느껴지는 고달픈 시간들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약 두 달가량을 일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현장의 공사가 마무리되는 바람에 더는 일할 수가 없게 되었거든요. 남들은 중간에 대기업 하청업체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지만 저는 같은 곳에서 계속 근무했습니다.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다니기에는 제 몸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요령 없이 힘으로만 하려니 허리부터 어깨까지 남아나는 데가 없었습니다. 새로운 작업장에서 처음부터 적응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지요.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일용직 근로자로서의 삶은 제겐 자양분 같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퇴직 후 계획한 바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점점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으니까요. 비록 몸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결국 어려운 과정을 견뎠다는 자신감 하나는 얻었으니 나름의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나 봅니다.
막노동을 업으로 삼으시는 분들, 그분들이야말로 팍팍한 세상과 정면으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대단한 분들이었습니다. 요즘 신문에서 건설 경기 안 좋다는 기사를 볼 때면, 그분들 생각이 나곤 합니다. 새벽같이 나왔다가 일감 없어 허탕치고 돌아가는 그 심정,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경제가 제발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아직까지도 잘 풀리는 신세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모든 분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유튜브 '퇴직학교'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_FrhkmkYseI?si=LSYey2irItkeh5Q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