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3년차ㅣ중견기업 영업부장 이야기
저는 올해 50대 초반으로 회사를 떠난 지 3년 된 사람입니다. 아니, 퇴직한 지 3년 된 사람입니다. 제가 근무했던 곳은 규모가 꽤 큰 인력회사였습니다. 대기업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저희 회사 소속 직원을 파견하는 일이 주요 사업 영역이었지요. 내놓으라 하는 기업들이 모두 저희 파트너사였는데, 그곳에서 제가 맡은 업무는 인력 수주를 따오는 대외영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절대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인원 늘리고 줄이는 거는 기업들 마음이라 저희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막말로 파트너사에 대표가 신규로 임명되어 긴축 경영을 한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손대는 게 인력 감축이거든요. 그렇게 되면 저희도 덩달아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항상 긴장해야 했습니다. 늘 예의주시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지요.
게다가 언제부턴가 현타가 오더라고요. 파트너사의 담당 직원은 기껏해야 주임이나 대리인데 부장인 제가 상대하려니 여러모로 불편했습니다. 물론 저희 팀원들을 내세워도 되지만 제가 직접 나서야 할 경우도 꽤 많았습니다. 조카 같은 친구들한테 굽신거려야 할 때면 이 나이에 뭐 하나 싶어 스트레스가 쌓였습니다. 더 나이 들어서까지 같은 일을 할 수는 없겠다 싶어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두었지요.
처음엔 좋았습니다. 제주도에서 보름 살기도 하고 베트남에도 다녀오고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쉬다가 본격적으로 일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더러 퇴직자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분명 이직을 하기 위해서 제 발로 퇴사를 한 건데, 어디 가서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하면 측은한 표정으로 대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다른 뜻이 있어서 자발적으로 그만둔 거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믿지를 않더라고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회사 밖 분위기는 제 예상과는 다르게 돌아갔습니다. 일단 저 같은 경력을 원하는 기업이 없었습니다. 이쪽이 워낙 특수한 업종이기도 하고, 채용하는 회사가 있다 해도 저같이 나이 든 구직자는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상대편 회사가 머리 희끗한 사람과 인사 나누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걸까요. 과거에는 몰랐는데 어느 순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연한 사실조차 고려하지 못했던 제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하나 차렸습니다. 인력 공급하는 회사를요. 예전에 대기업 협력사들이 갑자기 일손이 필요할 경우 난감해하는 걸 본 적이 있었습니다. 택배회사를 예로 들면 명절같이 배송 물량이 일시적으로 늘어났을 시 어디 가서 사람 구해오리가 곤혹스럽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인력을 투입하는 회사를 운영하면 되겠더라고요. 다행히 아는 협력사 직원이 있어서 거래를 트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얘기가 된 회사는 온라인몰의 식품 가공 센터였어요. 주로 하는 일은 대파를 다듬는다던가 양파를 깐다든가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절차는 단순했습니다. 기업 담당자가 문자로 어느 날짜에 몇 명이라고 저에게 연락을 주면 제가 그 일정에 맞춰 구인 후 센터로 보내면 되는 거였어요. 일하는 분들 하루 임금은 10만 원 정도였고 저는 개개인당 1만 원 정도를 소개비로 받는 구조였습니다.
그 일 한 지 반년이 돼가는 지금, 솔직히 할지 말지 고민이 많습니다. 일단은 돈이 안 됩니다. 한 달에 제가 소개하는 인력이 열 명에서 스무 명 사이이니 저에게 돌아오는 돈은 고작 20만 원 안팎입니다. 그에 반해 사람한테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전화 면접 과정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기도 하고 일하기로 한 당일 아침에 연락이 두절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난감해집니다. 꼼짝없이 제가 대신해서 일하러 들어갈 수밖에 없지요. 어떨 땐 저뿐 아니라 아내도 같이 나가야 해서 저희 부부는 꼼작 없이 대기 상태로 지내야 했습니다.
그랬음에도 한 번은 담당자로부터 심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희 내외 모두 갔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거든요. 그날따라 펑크 낸 사람들이 많아 제가 보기에도 심하긴 했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최근에는 담당자로부터 연락을 거의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게 다 제가 믿음을 주지 못한 탓이겠지요. 지금은 서류상으로만 계약을 유지하고 있을 뿐 사실상 폐업 상태나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를 떠나는 순간, 동시에 떠나는 것이 사람과 조직이라던데 맞는 말 같습니다. 직장인 시절에는 워낙 직원들이 많아 별 무리가 없었습니다. 필요하면 여기저기 보직을 순환배치 하면서 조정하면 됐으니까요. 그런데 1인 기업이 되고 보니 잘할래야 잘할 수가 없네요. 몸으로 때우는 것도 한계가 있지, 기반 없이 맨땅에 삽질부터 하려니 쉽지가 않습니다.
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저는 퇴사를 한 걸까요, 퇴직을 한 걸까요. 요즘 들어 점점 더 제가 퇴직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치 앞을 못 보고 무작정 사직서를 냈던 그 시기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가능만 하다면 이번에는 퇴사에 대해 충분히 따져보고 최대한 많은 준비를 해 보려 합니다.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유튜브 '퇴직학교'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n8BO9XeKkBo?si=v5f5XSBZTvBXTig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