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5년 차ㅣ제조회사 관리부장 이야기
저는 60대 초반으로 제조회사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지 5년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회사를 떠날 줄은 알았지만, 너무 급작스러워서 당시에는 크게 당황했었지요. 여전히 가족들이 눈에 밟혔고 기력이 없으신 부모님까지 책임지려면 활동을 더 해야 했으니까요. 제 형편과는 다르게 그럴 수가 없게 되어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려니 잡념만 많아지더군요. 고민 끝에 제가 좋아했던 일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요리하는 것에 흥미가 있었습니다. 요리라고 말하면 거창하지만, 음식 만드는 것이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 중 하나였지요. 우선은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취미도 취미인데 하다못해 나중에 분식집이라도 차리려면 꼭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내일배움카드로 등록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자 큰돈 드리지 않더라도 다닐 수 있는 요리학원이 많았습니다. 그중 한 곳을 선택해서 실기시험에 필요한 30여 가지 요리를 열심히 배웠습니다. 한 달 동안 준비했으니 하루에 거의 한 개꼴로 익힌 셈이네요. 노트에 메모해 가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머리로 반복 학습을 하였습니다.
자격증을 땄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퇴직 후에 뭔가 하나를 이룬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내친김에 조리사 자격증을 사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포털을 검색해 보니 아쉽게도 처음인 저로서는 이력서를 낼 만한 곳이 거의 없더군요. 조리 부분에 취업하려면 경력이 필수였습니다. 당장은 그쪽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부터가 필요했습니다. 꼭 조리사를 원하는 것만 아니면 지원자격은 특별하지도 않았습니다.
한 곳을 골라 바로 연락을 했고 면접을 거쳐 출근하기로 하였습니다. 식당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보건증 하나면 충분했어요. 기껏 딴 저의 첫 자격증은 쓸모가 없었지만 별도리가 없었습니다. 누군가 어지간한 자격증은 경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썩 내키지는 않아도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 여기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모 회사 구내식당에서 3개월째 일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의 제 역할은 주방보조입니다. 하는 일은 조리를 제외한 모두 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무거운 것은 도맡아 날라야 합니다. 남자라고는 저를 포함해 주방에 단 두 명뿐이라 힘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불려 갑니다. 때문에 체력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워낙 식수가 많다 보니 식재료는 뭐든지 대용량입니다. 쌀은 물론 식용유, 양파, 마요네즈까지, 마트에서 보았던 크기와는 비교도 안 됩니다. 간혹 아주머니들이 먼발치에서 저를 부르면 또 뭘 시키려고 오라고 하나 싶어 움찔대기부터 합니다.
설거지도 어마어마합니다. 식기세척기가 있기는 해도 하나부터 열까지 기계가 다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양푼이나 프라이팬 같은 도구들은 일일이 손으로 닦아 줘야 합니다. 그릇에 붙은 찌꺼기를 떼어내려고 철 수세미라도 사용하게 되면 업무 난이도가 최고로 올라가지요. 제 판단에는 주방보조가 주방 내에서 단연코 육체적으로 가장 고된 위치가 아닐까 합니다. 특히 저 같은 경력 없는 남성 초보에게는 말입니다.
그렇게 종일토록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려면 몸은 천근만근 축 늘어져 있는데 그보다 더 고달픈 것은 제 몸에서 나는 냄새입니다. 주방에서 하루 10시간을 보내고 나면 쉰내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아무리 옷을 갈아입었다 해도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힐끗힐끗 저를 쳐다볼 때는 제 냄새 때문에 그런가 싶어 움츠러들기 일쑤입니다. 지하철 안에 사람이 많으면 일부러 다음 차편을 기다린 적도 많았지요.
저는 아직도 매일 새벽 출근하기 전에 고민합니다. 이번 주까지만 나온다고 말할까, 이번 달까지만 한다고 얘기할까, 허리통증이 심해지는 날에는 생각이 더욱 많아집니다. 이 일을 하면서부터는 몸이 남아나질 않네요. 이러다 저도 주방 아주머니 한 분처럼 손마디부터 발목까지 성한 데가 없게 될까 봐 걱정입니다.
무엇보다 평생 이렇게 살 자신이 없습니다. 애초에는 조리와 관련된 일을 위한 준비처럼 출발했지만, 막상 해보니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비단 주방보조뿐만 아니라 식당이라는 것 자체가 체력적으로 대단히 힘든 업종이었어요. 애초에 분식집이나 차려야겠다는 말은 상황판단이 되지 않아 그랬던 거였습니다. 저같이 회사만 다녔던 사람은 절대 만만히 볼 일이 못 되었습니다.
솔직히 구내식당은 매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잖아요. 밥 먹을 사람이야 늘 있는 거니 힘들어도 노동만 하면 그만이지요. 하지만 직접 운영하는 식당은 그와는 다를 것 같습니다. 요즘 문 닫는 자영업자가 많다던데 막상 오픈했다가 영업까지 안 되면, 아, 도저히 감당이 안 될 듯합니다. 차라리 몸이 아픈 게 낫지, 비어 가는 통장 잔고를 보려면 마음이 아프다 못해 미어질 테니까요.
대체 저는 언제까지 설거지를 하면서 지내야 할까요. 요즘 부지런히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입니다. 새로운 자리를 구한 후에 자연스럽게 옮기게 됐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모든 분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유튜브 '퇴직학교'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M3Vw4e9A6ZE?si=ilNhlyt6Q3viRD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