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을 정의하고 싶다면, 네 곁의 다섯 사람을 꼽아라"
네 주변의 다섯 사람이 '너'를 반증한다는 현자의 말 한마디에 너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너는 한참을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래. 너는 요즘 통 글을 쓰지 않는다. 그저 녹슨 쇠 냄새가 날 뿐이다. 비릿한 산화철의 냄새 속에서 너는 구르고 굴러 살고 있다.
네 미간이 주름이 졌다 펴졌다 했다. 아마도 너는 네 주변의 다섯 사람을 생각하고 있겠지. 그렇게 너는 생각에 잠긴다. 그런 널 보며 나 또한 내 주변인을 다섯으로 추리기 위해 골몰해졌다.
네가 펜을 들었다. 주변인들을 그룹화하려는 모양이다. 무례한 이, 불평이 많은 이, 아주 약간의 도덕성만 가지지고 사는 이들을 한데 묶어 '나쁜 사람'으로 분류할지, 개개인의 머릿수를 세어야 할지 고민한다. 아니, 당장 너는 주변인에게 어떻게 분류될지 자책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글에 손을 떼고, 자판을 붙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비단 너뿐이 아니다. 나 또한 주먹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내가 글을 쓸 재목이 되는지를 매일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주변인 다섯을 꼽아 이유를 찾는 너를 난 이해 한다.
1. 성실한 이
2. 유쾌한 이
3. 감수성이 풍부한 이
4. 매사에 솔직한 이
5. 알 수 없는 이
다섯의 사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 너는 문득 펜으로 박박 엑스자를 치더니
1. 알 수 없는 이
2. 알 수 없는 이
3. 알 수 없는 이
4. 알 수 없는 이
5. 알 수 없는 이
로 수정한다. 마치 그것은 자서전과도 같은 이야기이다.
알 수 없는 이들 속의 알 수 없는 너. 알 수 없는 이들 속에 알 수 없는 나.
알 수 없는 것들에 둘러싸인 알 수 없는 너는 과연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을 명시할 수 있을 뿐이다. 너는 그 생각에 또다시 냉소적인 표정을 짓는다. 가만히 펜을 내려놓더니 한숨을 쉰다. 그럼 그렇지. 네가 옆에서 비소를 날리는 듯하다.
한때 난 너에게 알 수 있는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네가 마음 편히 '알고 있는'그런 존재이길 바랐다. 어떠한 외압에도, 어떠한 변형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보다 더한 '알 수 있음'이 되고 싶었다. 내 고백을 들으며 가만히 울음을 참던 네가 기억난다. 우린 많은 것을 창조했지.
무쓸모의 쓸모를 찾는 것처럼, 알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야. 그러니 그대여. 이제 그만 늪에서 걸어 나와 네 앞의 펜을 잡길.
어쩔 줄 몰라 아직도 반지만 만지작거리는 너에게, 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