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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Oct 14. 2024

13화. Energetic과 Sensitive의 공존


바벨에 핀을 하나씩 끼운다. 심박수를 체크한다. 쨍하게 넓은 전신거울에서 자세를 확인한 뒤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움직인다.

땀이 송글하다. 머리에 수건을 묶는다. 마지막 코스는 러닝머신이다.


글이 도통 써지지 않은지 4개월째다.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은 지도 4개월째다. 그동안 (지금도) 운동에 푹 빠져있었다. 조금씩 달라지는 체형과 체력의 변화에 기뻐했다. 마치 운동은 행복한 일들만 남겨두는 지우개 같다. 그 지우개가 좋았다. 땀을 닦는 시간에, 달리는 시간에, 힌지를 하고 바벨을 들어 올리는 시간에 지우개를 열심히 사용했다. 운동을 마치고 운동가방을 빙빙 돌리며 집에가며 마시는 가을바람이란.


그런데 하필이면,

나의 글은 당신들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다.

지우개로 그리움과 고립감이 옅어질수록, 나는 유약한 감수성에서 멀어졌다. 그래. 글에서 멀어졌다.

글을 쓰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지고, 섬세하고 예리한 감수성 대신 비교적 긍정적이고 단순한 회로가 움직였다.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어쩌면 이게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실제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한동안은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의 울렁거림 대신 후들거리는 두 다리의 고통이 훨씬 나았으며, 당신들을 위해 흘리는 눈물보다 끈적하고 냄새나는 땀이 더 좋았다. 내일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섬세하게 고민하는 것보다는, 어떤 무게를 들어 올릴까 고민하는 시간이 좋았다.


이 고백을 하기 위해 마음의 정리가 필요했다. 브런치에 접속해서 몇 가지 글들을 발행 취소했다. 너무 감정적이라 부끄러운 글들이었다. 그렇게 발행취소한 글들 사이를 헤매다가. 그렇게 헤매다 헤매다가. 당신들과 나의 이야기가 가득 담긴 글들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나와 그곳의 이야기. 나와 당신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곳을 한참을 여행했다. 그리고 아주 잠깐 울었다.


지나간 시간이 그리워 울었으며, 지금의 당신들이 있음에 감사해 눈물이 났고, 이러한 파편들이 모여 나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네가 그리웠다. 텍스트로 남아있는 당신들을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아마 다시는 조우하지 못할 순간이겠지.


아직도 딜레마다. 지우개를 계속 과도하게 사용하는 게 맞는지.

어떤 게 진짜 나의 모습인지. 아니 어쩌면 이 순간 고민하고 있는 나도 진정한 내 모습일지.

열심히 운동을 하고 와서 텍스트 몇 자에 울고 있는 엉뚱하고 바보 같은 나도, 이대로 괜찮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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