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패턴이 바뀐 지 보름이 넘어간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타의적, 혹은 자의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그것이 슬픈 일인지 좋은 일인지는 알 수 없다.
어제는 아이가 내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난 요즘같이 엄마랑 매일 붙어있는 게 참 행복해"
나는 조금 슬펐다.
요 근래 나는 온전히 '나'로 사는 것에 욕심내는 것을 조금 내려놓았다. 가족 구성원으로, 사회 구성원으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사실은 조금의 자포자기가 섞여있다.
내가 아무리 온전한 '나'로 살기를 원해 발버둥 쳐도 결국은 내가 맡은 역할을 전부 포기하지 않고서야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루가 분주해졌다. 엄마 역할, 아내 역할의 비중을 높이면서 조금 덜 앉아있기로 했다. 앉아서 사색을 좋아하는 나는 그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가사를 조금 더 떠맡았고, 때로는 맛있는 간식을 만들기도 한다.
나만의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혼자 카페에 가서 센티멘털을 만끽하는 시간조차 잘 나지 않는다. 안타까운 것은 나만 조금 답답하면,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한다는 사실이다.
가끔 숨이 막힌다. 조잘대는 식구들의 소리가 버겁다. 그들을 사랑하지만 나는 고독함과 슬픔 또한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알맞게 흘러가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여전히 그것들, 당신들의 자국이 내 마음속에 깊이 패여있는데도, 그것을 모른척하고 시치미 떼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당신들이 떠난 자리에는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다. 난 그곳을 더듬으며 때로는 눈물짓는다.
그리하여,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환경 속에서 나는 헤맨다.
나의 공허함은 애초에 나태함이 근본일까. 나는 배부른 투정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모두들 다 그렇게 살아가는데 말이다.
아니면, 고독한 나태함을 가지고 사는 이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있는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이 떠난 자리의 아지랑이를, 오늘도 붙잡으려 애쓰겟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