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10시 반에서 11시 사이. 집 안의 모든 불이 꺼지는 시간이다. 저녁을 늦게 먹는 편이라 아직 배가 가득 찬 느낌이라 안주는 생략한다. 아주 가끔 허기질 때는 매실장아찌나 누룽지, 부순 생라면을 곁들일 때도 있다. 최근 칵테일에 빠져 주종별로 술이 있지만 오늘은 새로 장만한 하이볼 스틱을 활용해 볼 생각이다.
얼음을 가득 넣은 큰 잔(중요!)에 보드카를 30ml 정도, 하이볼 시럽을 짜 넣고, 탄산수를 가득 채우면 끝. 오늘 읽을 책은 일본 작가가 쓴 책이니 하이볼 스틱은 ‘오사카’로 고른다. 침대 헤드에 내장된 주황빛 조명을 가장 환하게 켜 두고, 형광등을 끄면 준비는 끝난다. 하이볼 스틱은 각각 도시의 이름이 붙어 있는 하이볼 시럽이 하나씩 들어 있는 월드투어 팩을 사서, 하나씩 아껴 먹는 중인데 먹을 때마다 새로운 맛을 즐길 수 있어 좋다. 오사카 하이볼은 어떨까?
하이볼은 잘 섞어서 마셔야 하고 컵 째로 그냥 마시면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지니 꼭 빨대로 마신다. 먼저 빨대로 가라앉아 있는 하이볼 스틱을 꼼꼼히 녹여주며 얼음의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즐긴다. 그리고 한 모금. 달달한 체리향이 입 안을 감돌고 탄산의 짜릿함이 그 향을 감싼다. 맛있어! 그렇게 책의 한 장(章)을 마치기도 전에(길어봐야 3페이지!) 한 잔이 끝난다.
참, 독서를 시작하기 전에 유튜브로 좋은 음악을 틀어 두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독서를 할 때는 가능하면 가사가 없거나 나에겐 가사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팝송 플레이리스트를 튼다. 동영상의 화면이 감성 충만한 이미지라면 더할 나위 없다.
하루가 끝나는 시간, 생업도 학업도 잠시 잊고 오롯이 나 혼자서만 즐기는 한 시간 남짓의 시간.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창문 너머 곤색 하늘과 드문드문 불이 켜져 있는 이 동네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한다.